하나의 취중고백이 몰고 온 파장은 의외로 크게 다가왔습니다. 까칠하고 강력한 방어막을 치고 살아왔던 구서진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자웅동체와 유사한 한 몸에 거주하는 두명의 인격인 서진과 로빈이 한 여자인 하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하이드 지킬, 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모든 사건의 시작인 납치;
여전히 안개처럼 자욱한 재미의 실체, 자연스럽지 못한 형식을 위한 형식
정선에서 함께 술을 마신 하나와 서진은 우연처럼 다가온 상황에서 취중고백을 하고 듣게 됩니다. 로빈의 몸으로 정선을 따라가다 사고로 인해 서진이 되어버린 상황에 울며 겨자 먹기로 로빈 생활체험을 하게 된 그의 하루는 힘들기만 했습니다. 단 한 번도 상상도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자아인 로빈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금욕 생활을 하며 살아왔던 소심하고 집요한 서진은 로빈이 되어 자신이 이렇게 술을 잘 마시는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술을 잘 마시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의외의 상황으로 다가왔습니다. 술에 취한 하나가 자신 곁으로 다가와 좋아한다는 고백을 했으니 말입니다. 물론 자신이 아닌 로빈을 향한 고백이었지만 서진마저 떨리게 만든 하나의 취중고백은 본격적인 삼각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한 번 마음속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조금씩 상대를 무너트릴 수밖에는 없습니다. 감기와 사랑을 감출 수가 없다고,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감정은 엇갈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외면하고 멀리하고 오직 자신의 성공과 목적을 위해서만 살아왔던 구서진은 이 취중고백 하나로 하나라는 인물을 그저 귀찮은 존재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고치는 것에만 집착해왔던 서진에게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인격장애를 고치지 않으면 원더랜드를 물려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지난 5년 동안 온갖 방법들을 동원해왔습니다.
자신을 치료해주던 강 박사가 완벽한 치료 방법을 알아냈다는 말은 서진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장 중요한 순간 강 박사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강 박사만 있다면 그 오랜 시간 자신을 지배해왔던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잇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에 의해 멀어진 소망은 그래서 서진을 더욱 두렵고 고통스럽게 만들기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가 사건에 끼어들게 되었고, 운명처럼 이들은 그녀의 이름처럼 하나가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만남이 운명일 수밖에 없는 것은 서진이 두 개의 인격이 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바로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자살을 시도하던 서진을 막다 자신이 강으로 빠진 하나. 그런 하나를 보며 두려움에 뒷걸음치는 서진를 뒤로 하고 로빈은 강으로 뛰어들어 그녀를 구해냈습니다.
하나로 인해 서진은 두 개의 인격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그의 인생은 두 개의 인격과 싸우는 삶이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자책, 그리고 고통 속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 하던 서진과 달리, 로빈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천성인 인물입니다. 항상 웃으며 누구에게나 친절한 180도 다른 로빈은 서진이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던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낮에는 서진으로 밤에는 로빈으로 살아가는 와중에 하나에 대한 그들의 감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분노하는 단계로까지 확장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서로를 경쟁상대로 생각한 것은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가 등장하면서부터 그들이 다투는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그 둘이 만들어진 계기 역시 하나였다는 점에서 서진과 로빈의 시작과 끝은 하나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강 박사를 납치하고 하나를 위기에 몰아넣었던 범인은 CT기사였고,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렇게 강 박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겨졌습니다. 이 과정이 어쩌면 <하이드 지킬, 나>가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게 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달한 로맨스는 현빈과 한지민이 잘 만들어가고 있지만, 적대적 관계에 있는 상대가 너무 무기력하고 미미한 존재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드라마의 재미를 반감시키기 때문입니다. 분명 강 박사가 납치된 사건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왜 강 박사를 납치해야만 했는지, 그녀를 납치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결국 서진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서진을 경계하고 그렇게 두 개의 인격들 속에서 망가지기를 원하는 자는 원더랜드가 서진에게 돌아가지 않기 바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서진을 막고 누군가 원더랜드를 차지하고 싶은 존재가 누구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서진의 부모가 그럴 가능성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왜? 라는 단서가 다양하게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서진의 자리를 노리는 사촌형 승연은 그런 지독한 짓을 할 위인이 되지 못합니다. 납치범인 안성근에게 사주를 한 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직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합니다.
6회까지 이어지는 동안 미지의 공격을 받으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이런 상황을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강한 상대가 있을 수록 드라마의 극적 재미는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 이상하게도 <하이드 지킬, 나>는 그런 강한 존재가 없습니다. 물론 존재는 하지만 과연 그 악역이라는 것이 그렇게 두렵게 다가오는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일 것입니다.
하나가 범인을 지목하며 두려워하는 장면에서도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게 하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보호해줘야겠다는 마음이 든 서진의 모습 역시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자연스럽게 상황들이 이어져야 하지만 마치 다음 단계를 위해 억지로 블록을 맞춰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는 헐겁기만 합니다.
현변과 한지민이 펼치는 달달한 로맨스 자체는 무난하게 다가오지만, 긴장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상대가 그저 병풍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이상의 재미를 얻기는 어려워 보일 뿐입니다. 언뜻 <별에서 온 그대>의 흐름을 느끼게도 하는 <하이드 지킬, 나>는 형식적인 틀은 취하고 있지만 흥미로운 실체마저 품지는 못했습니다. 달달한 로맨스와 코믹, 그리고 긴장감 등이 적절하게 버물려진 <별에서 온 그대>에 근접하기는 어렵게 보일 뿐입니다. 물론 유사성은 개개인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지난해를 뜨겁게 달궜던 <미생>을 패러디하며 "우리 애"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재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해왔던 패러디를 다시 비틀어 주는 센스는 재미있었습니다. 소소한 재미는 취하지만 커다란 틀의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하이드 지킬, 나>는 결국 하나의 역할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로 인해 두 개의 인격이 만들어졌고, 그렇게 잠자고 있던 인격이 다시 등장한 것 역시 하나였다는 점에서 결론 역시 하나의 몫입니다. 과거 납치를 당했던 기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제는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과정과 결과에서는 '기승전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가 과연 반등이 계기를 마련할 수는 있을지 의문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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