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왜 계상이 아닌 종석 곁에 남았을까?
분노조절 장애를 의심받는 유선과 (사랑)감정조절에 문제를 겪고 있는 종석과 지원. 모두 사랑을 기반으로 한 감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선이 느끼는 분노는 남편인 내상이 보여준 불신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유들 함이 지나쳐 타인을 빈정 상하게 하는 내상에게 폭력이 일상화된 유선에게 내려진 분노조절 장애 개선 프로그램은 과연 그녀에게 분노를 조절하는 힘으로 다가왔을까요?
길거리에서 임간호사의 짐을 들어주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상을 보고 분노한 유선은 장바구니에서 파를 꺼내 내상을 치기 시작합니다. 대로변에서 벌어진 이 참극은 마침 지나가던 계상의 도움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심각한 수준의 부부에게 계상이 할 수 있는 일은 유선의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내상의 이야기 속에 본질인 자신의 잘못은 숨긴 채 유선의 과격한 폭력만이 부각된 상황에서 유선에게 글러브를 끼워 분노조절을 시도하는 방법은 분명한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결 없이 그로 인해 표출되는 현상에만 집중하게 된다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내상의 잘못은 고쳐질 이유가 없고 유선의 경우 이런 억압은 더욱 강력한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계상의 치료는 한시적 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내상이 보여준 바람 끼와 함께 주민 센터에서 벌인 황당한 야동 사건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선에게 분노조절 장애에 대한 치료만 강요하는 것은 유선의 분노를 더욱 심화시키고 극단적으로 이어갈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그녀가 글러브를 끼고 자신을 때리니 이 정도는 충분히 맞을 수 있다는 내상에게는 반성이나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기에 그들의 관계는 또 다른 불씨를 강력하게 지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내상과 유선이 분노조절에 대한 힘겨운 시간을 보내듯 종석과 지원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절하는데 힘겨워합니다. 지원은 자신이 좋아하는 계상을 위해 과감하게 '르완다'를 가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분명 그녀의 말 속에는 진심이 존재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원하고 언니 하선이 즐거워하는 공부에 집중하고 이를 통해 전교 1등을 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자신이 원하거나 즐거워서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위한 일종의 보답이었습니다.
지원이 자신을 위한 행복을 찾기 위해 르완다를 가고 싶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만이 아니라 계상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배웠기 때문 일 것입니다. 계상이 최고 명문대 의대를 나와 최고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었음에도 보건소를 다니며 안 해도 되는 방문 진료에 열중하는 것은 일상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행복을 개인에게 맞추지 않고 공공의 행복에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 계상은 특별한 존재 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없이 철저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대단한 가치 그 이상이니 말입니다. 그런 계상에게 진희와 지원은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상이 가지고 있는 그 건강함은 단순히 그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그의 가치관에 대한 애정이고 사랑이었습니다.
지원이 더욱 계상의 삶에 경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와 비슷한 삶의 괘적을 그리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그들이 그들만의 트라우마에 갇혀 살아왔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특별한 감정들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지원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키워냈고 계상은 여전히 개인적인 사랑이 아닌 자신만의 신념의 길을 걸어가려고만 합니다.
지원이 계상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거두기 힘들어 하는 종석에게 지원은 어떤 존재일까요? 종석이 느끼는 지원에 대한 사랑은 지원이 가지는 계상에 대한 사랑과 유사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사랑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과감하게 손을 내밀어 구원해준 지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키웠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의 사랑이 거부당하고 지원의 마음이 여전히 계상에게만 다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종석은 지원을 잊지 못합니다. 아니 공개적으로 지원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겠다고 공헌 할 정도입니다. 그 첫 번째로 병뚜껑을 따는 일부터 쓰레기봉투를 대신 짊어지는 등 소소한 일상의 실천이었지만 그 모든 것은 엉망이 되고 맙니다. 꽉 막힌 병뚜껑은 꼼짝도 하지 않고 쓰레기봉투는 뜯어져 버리는 등 종석의 마음과는 달리, 힘겹기만 한 지원에 대한 사랑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램브란트 전을 보러가려는 지원에게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는 종석. 자신이 계상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는 말을 했음에도 상관없다며 자신은 오직 지원에게만 최선을 다하겠다며 지원을 태우고 미술관으로 향해 갑니다. 하지만 도중에 사고가 나고 쓰러진 지원을 업고 병원으로 뛰는 종석은 오직 한 가지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겨우 병원에 도착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에 안도하는 종석은 자신이 다친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발이 퉁퉁 부어 치료가 급한 것은 종석 자신이었는데 갑자기 잠이 들어버린 지원을 위해 아픈지도 모르고 병원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종석의 모습은 대단하기만 합니다. 의사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환자가 환자를 업고 뛰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기적 같은 상황은 종석과 지원 모두에게 미묘한 감정들을 만들어냅니다. 자신은 괜찮다며 더 늦지 않게 삼촌에게 가라는 종석과 가던 길을 멈추고 종석의 곁에 남게 된 지원. 그들의 그 미묘한 감정은 여전히 불안정할 뿐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조절에 능숙하지 못한 종석과 지원이 과연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종석이 보여준 진정한 사랑이 지원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원이 계상이 아닌 종석의 곁에 남게 되었다고 지원이 종석의 사랑을 받아들였다고 확신 할 수는 없습니다. 지원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감정 선들을 들어다본다면 그녀 역시 계상과 유사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석의 곁을 지킨 것은 아픈 다리로 자신을 위해 기적을 실현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들의 관계가 모호하기만 한 상황에서 어떤 결말을 만들어갈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일방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가 마주보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호하기만 합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랑을 선택하게 될까요? 종석의 옆 자리가 아닌 가장 먼 곳에 앉아 그저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원의 모습 속에 그들의 미묘한 감정의 한계만 남겨져 있었습니다. 램브란트의 젊은 시절 자화상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도 궁금해집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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