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증이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모작까지 하며 돈을 모아야 했던 천기는 뜻을 이루는 듯했지만, 언제나 속았다. 광증을 단박에 치료할 수 있는 약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모작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천기를 잡아두기 위한 월성당 정쇤내의 수작일 뿐이었다.
9년 가뭄과 기근이 끝나던 날, 마왕은 어용에서 빠져나왔다. 문제는 그 마왕이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타버린 어용을 다시 그리고 그 안에 마왕을 영원히 봉인하겠다는 성조의 다급함과 다르게 천기의 아버지 은오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화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1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홉살 아이였던 천기는 성장해 화공이 되었다. 아버지를 빼닮아 탁월한 실력을 가진 천기는 모두가 우러러볼 정도다. 단순히 그의 그림솜씨만이 아니라 탁월한 외모에도 다른 화공들의 마음마저 들뜨게 할 정도다.
천기가 법에 접촉되는 모작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버지의 광증을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을 찾았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중국인이 가져온 '만년 금구 신단'이라는 광증 치료약을 거액을 들여 샀다. 그렇게 모작도 끝내고, 아버지의 광증도 그쳐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약을 먹어도 아버지의 광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짜 약을 먹고 그 오랜 시간 광증을 앓아왔던 아버지의 병이 나을 수는 없었다. 마왕의 저주를 받은 아버지의 광증은 결국 마왕만이 치료가 가능한 일이었다.
저잣거리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삼신할망은 그렇게 천기를 보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기와 람의 운명적 만남은 그렇게 예고되어 있었다. 시점이 문제일 뿐 그들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삼신할망이 왜 저자거리에 남아 있는지 흥미롭게 다가온다.
마지막 모작을 넘기고 나서는 천기는 람과 문 하나 사이로 마주하고 있었다. 서로를 보지 못했지만, 그들은 운명과 같은 끌림을 느꼈다. 더욱 시각을 잃은 후 청각과 후각이 더욱 발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람은 묘한 기시감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짜 약 사기 사건은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재회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 자신을 속인 것인 쇤내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천기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려는 의도였다. 이 사실을 알고 천기는 오히려 그를 속여 보내버렸다.
모작을 그려 다른 친구에게 위탁을 시키고, 바로 신고해 체포되도록 했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 정도 범죄를 저지르는 자가 아무런 대책도 없을 가능성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바로 풀려난 쇤내가 추적을 하기 시작하며 이들의 재회는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별을 관측하는 서문관 주부로 일하고 있는 하람은 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 성조 앞에서 죽었다 살아난 아이. 그렇게 세상에 비를 내리고 자신을 눈을 잃은 하람을 성조는 곁에 두고 있다. 하람의 아버지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도사였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아들 하람 역시 별을 통해 길흉화복을 알아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성조로서는 하람을 곁에 두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국무당 미수를 내보낸 상황에서 하람은 성조에게는 더욱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하람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당대 최고 부자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엄청난 돈을 번 얼굴도 드러내지 않은 일월성이란 존재가 바로 하람이기 때문이다. 하람이 이런 이중생활을 한 것은 자신의 아버지와 가문을 무너트리고, 자신의 눈까지 잃게 만든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이다.
눈을 잃은 후 아버지를 찾아와 살해한 자는 금부도사다. 왕이 보냈는지, 아니면 다른 이가 보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복수를 위해서는 금부도사를 찾아야 한다. 별자리를 보내 앞날을 내다보는 하람은 길한 사람이 자신을 찾아온다고 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천기가 등장했다.
두 사람의 운명적 재회를 하려는 상황에 다시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19년 전 기우제를 벌이던 날 마왕을 세상에 끄집어낸 주향은 다시 이들 사이에 등장했다. 의도적이지 않은 또 다른 운명과 같은 이 상황은 결과적으로 하람이 누구를 추격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탁월한 정보력을 가진 일월성과 만나려는 주향은 어렵게 만나지만, 쉽게 자신을 내보이지 않았다. 누구보다 주향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일월성이 자신을 드러낼 가능성은 제로이니 말이다. 적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바보는 아니다.
정쇤내 일당을 피해 도망치던 천기는 가마에 올라탔다. 궁 밖을 나가려 잠시 멈춘 가마에 올라탄 것은 여자가 타고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밖에는 정쇤내가 있고, 안에는 낯선 남자와 함께 있는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안이 더 안전했다.
가장 부자인 일월성의 밑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정쇤내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자를 단박에 제압할 능력을 가진 것은 하람이었다. 자신 밑에서 일하지만 일월성과 대면도 해본 적 없는 자에게 기싸움으로 제안하는 하람은 강하다.
우연과 같은 숙명은 그들을 가마 안에서 만나게 했다. 그렇게 가는 도중 하람은 이상한 기시감을 다시 느낀다. 복숭아 밭 냄새가 나는 여성은 왠지 모르게 어린 시절 그 아이를 생각나게 한다. 흔들리는 가마 속에서 의도하지 않은 접촉을 하게 되고, 감았던 눈을 뜰 수밖에 없는 하람은 걱정했다.
자신의 빨간 눈을 보며 모두가 이상하게 바라봤다. 자신을 물괴라고 지칭할 정도로 꺼리는 것을 19년 동안 경험해왔던 하람이다. 하지만 천기는 달랐다. 오히려 하람의 붉은 눈을 보고는 예쁘다고 했다. 19년 전 시력을 잃은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던 하람처럼 말이다.
또다시 흔들리는 가마로 인해 이번에는 천기가 하람의 얼굴을 만지게 되었다. 이 순간 하람의 목에 새겨진 나비 문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운명적 만남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다. 삼신할망이 이들의 운명이 뒤바뀌던 상황 건넸던 나비는 그렇게 사라졌다.
문제는 그렇게 사라진 나비는 하람 안에 갇혀있던 마왕을 끄집어냈다. 과거의 기억과 함께 봉인된 마왕이 되살아났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리고 마왕이 가진 힘의 원천이 눈을 천기가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 마왕의 행동과 이를 막으려는 하람의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왕과 하람이 양립하는 상황에서 과연 천기는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마왕을 간절하게 원했던 주향의 행보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의도적으로 허허실실 하는 세자 양명이 과연 언제까지 날카로운 발톱을 숨길지 알 수 없지만, 잔인한 마왕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삼각관계도 예고되었다.
<홍천기>는 그저 재미있는 드라마다. 그 안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유추하고 끄집어낼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그걸 염두에 두고 쓴 소설도 드라마도 아니니 말이다. 마왕을 가둔 채 살아가는 운명을 가진 하람과 그런 마왕의 저주를 풀어낼 유일한 존재인 홍천기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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