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8. 09:06

기억 16회-이성민의 마지막 웃음에 담은 희망 메시지

기억을 잃어가는 동안에도 박태석은 법정에서 억울한 누명으로 15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희망슈퍼 살인사건'의 억울한 피해자 권명수는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드라마는 법을 집행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기억을 잃고 진실을 찾다;

진실을 찾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힘을 합하며 결국 언젠가 밝혀질 수밖에 없다

 

 

극적인 상황은 승호에 의해 이뤄졌다. 미국으로 도피를 시키려던 아버지 이찬무의 의지와 달리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더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는 경찰서를 찾았고 그렇게 자수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두 남자는 승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승호를 보호하려고만 하는 이찬무와 진실을 밝히려는 박태석의 충돌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집안의 문제로 확대해 모든 것을 은폐했던 이찬무의 어머니 태선이 이끌어왔던 은폐의 기록은 그렇게 아들에 의해 이어질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박태석은 달랐다. 그리고 이승호 역시 다른 선택을 했다.

 

박태석이 아니면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승호를 찾았다. 자신이 15년 전 뺑소니 사고만이 아니라 친구인 현욱이도 죽였다고 자백한다. 하지만 태석은 그런 승호에게 일갈한다. 제대로 반성하라며 자학하듯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비겁하게 도망치지 말라 한다.

 

용서할 수 없다며 자신이 지은 죄를 평생 후회하고 반성하며 살라고 태석은 외친다. 더는 비겁하게 도망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라는 말로 태석은 승호를 용서했다. 용서란 진정 반성할 줄 아는 이들에게 허용된 마지막 배려다. 무조건 용서를 한다고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후 로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 그들에 둘러싸여 순식간에 정신을 잃어버린 태석을 누군간 손을 잡고 이끈다. 하이에나처럼 변해버린 기자들에게서 태석을 구해낸 것은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평생 원망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던 아버지는 그렇게 말없이 기억을 잃어가는 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이끌려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 태석을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얼른 문 닫어"라는 아버지를 보고 마치 7살 어린 아이의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태석의 모습은 마음을 아리게 만들 정도였다. 태석의 가족은 기억을 잃은 그를 위해 똘똘 뭉친 것과 달리 찬무의 가족은 달랐다.

 

모든 것을 가진 그들에게는 그 거대한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붕괴와 파괴마저도 당연하게 여기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승호가 자수를 해버린 상황에서 태선이 아들 찬무에게 요구한 것은 손자를 잘라내라는 지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손자를 죽이겠다는 이 허망한 할머니의 제안은 오직 자신이 세운 성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을 할 뿐이다.

 

 

구치소에 있던 승호를 찾은 것은 할머니인 태선이 아니라 은선이었다. 은선을 보자마자 어쩔 줄 몰라 하는 승호에게 그녀는 나지막이 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를 한다. 아들을 죽인 자가 미워할 수도 없는 이라는 점이 분노하게 한다던 은선은 승호를 용서했다.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어. 무엇보다 우리 동우가 너한테 희망이 아니라 상처가 된다는 게 싫어"

 

"넌 우리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우리 동우는 너한테 희망이길 바라고 있어"

 

은선은 아들의 죽음이 상처가 아니라 희망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승호가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그가 자신의 아들을 상처로 기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은선이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태석과 같은 이유였다. 진심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과거 무조건 용서를 하며 사회 화합을 이끌고자 했던 시대를 알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모두 용서하고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겠다던 이야기는 동화처럼 아름답게 다가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반성할 마음이 없는 자들에게 용서는 결국 면죄부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그렇게 무의미한 용서로 악마를 더욱 잔인한 악마로 만들어놓았다.

 


15년 전 '희망슈퍼 살인사건'은 너무나 황당하게 벌어졌다. 그 길을 지나가던 신영진과 차원석은 슈퍼에 들어섰다. 담배와 물을 사기 위해 들른 그곳에서 영진이 분노한 것은 자신에게 반말을 했다는 이유였다. 감히 자신에게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영진은 잔인하게 할머니를 살해했다.

 

모든 것을 가졌다는 이유로 살인을 하고도 승승장구했던 신영진은 그렇게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진실을 밝히려는 태석 앞에서 내동댕이쳐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태석에게 거액을 제시하는 신 회장의 행동까지 모두 담아 언론에 공개된 상황에서 이들은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졌다.

 

기억을 잃어가는 동안에도 태석은 법정에서 사력을 다했다. 그렇게 태석은 불가능에 가까웠던 재심 청구를 이끌어냈고, 법정에서 억울한 피해자인 권명수에게 무죄를 받아냈다.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를 구해냈다. 자신만이 아니라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범이라고 외치던 태석의 발언은 우리 시대 법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강렬함으로 다가왔다.

 

법정에서 사투를 벌이던 태석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집 안에서 화장실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태석. 그런 태석을 안내하고 숨죽인 채 오열하던 영주의 모습은 그래서 너무 아프다. 그런 태석을 위해 그의 집에는 수많은 표시들이 만들어졌다.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태석을 위해 배려는 그렇게 가족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영주를 서럽게 울게 만든 것은 태석이 남긴 유산이었다. 친구에게 맡기며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기억하지 못하면 건네 달라던 그 상자에는 녹음기와 열쇠가 있었다. 그 녹음기에는 "서영주씨..."라는 말로 시작된 태석의 유언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병세가 심해진 자신을 이제는 놔달라며,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부인에게 양도하는 내용들이 은행 금고에 있다는 태석은 그렇게 남겨진 가족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으로 인해 아파할 가족을 생각하는 태석의 마음. 그런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영주는 구두를 들고 그의 사무실로 향한다.

 

이제는 구두의 색깔로 착각하는 태석에게 구두를 건네는 영주는 그렇게 남편을 안아 준다. 동우가 묻힌 곳에 태석의 가족들은 함께 했다. 여전히 행복한 그들의 가족. 하지만 그 햇살 좋은 날 아름다운 그곳에서 태석은 기억을 잃고 있었다.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을 기억하지 못한 채 남이라 생각하는 태석에게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을 건네는 영주.

 

태석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지만 가족들은 그와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그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을 위해 따뜻한 웃음으로 그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부인의 모습은 가족이기에 가능한 사랑이었다.

 

태석의 가족이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복을 이어가는 것과 달리 이찬무의 가족은 완전하게 붕괴되었다. 아들 승호는 태석과 은선의 말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오지로 떠났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워진 삶을 포기한 채 자신이 했던 잘못을 반성하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승호에게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존재했다.

 

이찬무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독한 존재로 변하고 있었다. 승호도 떠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로펌과 가족을 위해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과거 태선이 아들 찬무에게 했던 행동을 이제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이찬무는 자신이 부정했던 어머니처럼 변하고 있었다.

 

은선과 강 검사는 함께 동우를 찾고, 먼저 와 있던 태석의 가족들은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기억을 잃어버렸던 태석은 영주를 통해 다시 기억을 찾고, 환하게 웃으며 아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태석의 알츠하이머 증세가 사라질 수는 없지만 그렇게 가족의 따뜻한 사랑으로 태석은 행복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석의 마지막 웃음에는 희망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드라마 <기억>은 강렬하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기억을 잃어가면서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설정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는 그렇게 16번의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언론도 법도 모두가 권력을 가진 소수를 위한 도구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기억>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정의와 진실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단 단순한 진리 말이다. 지금은 권력의 힘으로 진실을 감추고 있는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잘못마저 외면한 채 호위호식하고 있지만, 영원히 그 진실을 감출 수는 없다. 정의는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구현되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김지우 작가와 박찬홍 피디는 다시 한 번 걸작을 만들어냈다. 탄탄한 원작의 힘과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연출. 웰 메이드 드라마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억>은 가장 위대한 드라마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사회적 메시지만이 아니라 드라마만으로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았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로 높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신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였던 이성민의 연기만이 아니라 김지수, 박진희, 이준호, 윤소희, 이기우, 여현회, 전노민, 송선미, 반효정, 장광 등 주조연들 모두가 신의 연기력으로 드라마 <기억>을 완성해주었다. 드라마 속에서 박태석 변호사가 로펌을 나오며 자신을 배웅하던 동료들에게 "에브리데이 굿데이"를 외치듯,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게 된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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