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홍경래가 등장해 자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라온에 정조준 한 영의정의 칼을 막기 위해 나타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뜬금이 없다. 이영과 라온의 사랑을 상징하던 운명의 팔찌를 끊어버리고 국혼을 받아들인 세자를 흔드는 홍경래는 그렇게 두 사람의 큐피드로 전락한 듯하다.
끊어진 운명 팔찌;
홍경래는 왜 두 사람을 위한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야만 하는가?
거짓 서신으로 세자를 역모하려던 영의정 일파의 행동은 실패로 끝났다. 세자가 라온과 만나는 현장을 급습해 둘 모두를 처리하겠다는 그들의 전략은 이미 그들의 음모를 알고 대비한 이영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세자와 영의정의 두뇌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둘 중 하나가 무너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이 싸움은 그렇게 칼을 겨눈 채 누구도 거두려 하지 않았다. 밀리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함부로 거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영의정 일파의 공격을 막아낸 세자는 백운회의 조직원이자 영의정의 세작을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그 자를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보였지만 두 조직 모두를 알고 있는 그는 양측에서 모두 죽이고 싶은 존재일 뿐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세자는 그 자를 취조해 영의정 일파를 모두 잡아들이겠다고 생각했지만 백운회의 핵심인 병연은 그자를 막아야 했다.
언제든 자신에게 필요한 짓을 할 수 있는 그 자는 영의정의 비호를 받으며 백운회를 몰락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판과 호판이 직접 나서 갇힌 그 자를 죽이려는 순간 세자는 다시 한 번 등장해 그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 자가 세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순간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들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의정 일파보다 먼저 손을 쓴 백운회로 인해 세자는 중요한 증좌인 범인을 취조도 해보지 못하고 잃고 말았다. 조선을 망가트리는 이 한심한 존재들을 무너트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눈앞에서 무산되는 이 상황들이 세자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패를 쥐고도 써보지도 못하고 잃은 세자와 달리, 영의정은 더 강력하게 이영을 압박했다. 영의정은 관복까지 내밀며 파직을 요청했다. 영의정의 이 벼랑 끝 전술은 성공할 수밖에는 없는 전략이었다. 영의정 한 사람이 아닌 주요 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 빠져나가는 상황은 국정 운영이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영의정을 잡으려던 세자는 오히려 그의 공격에 말려 라온을 공개적으로 수배하는 상황만 지켜봐야 했다. 더는 함께 할 수 없는 라온을 만나러 간 세자는 칼을 들고 경계하는 라온과 마주해야 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라온의 칼로 자신 손목에 있던 운명 팔찌를 잘라버린 세자는 그렇게 이별을 선택했다.
세자를 위해서는 완벽한 끝이 필요했던 라온에게는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긋난 방식은 결국 새로운 불행을 만들 수밖에는 없다. 서글픈 이별은 세자의 국혼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불행해지는 이 엉킨 실타래는 그렇게 또 다시 엉망으로 얽히기 시작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세자를 홀로 흠모하는 조하연은 그렇게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한다. 세자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면서도 사랑이 아니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사랑은 그렇게 국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모두가 불행한 국혼이 열리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홍경래가 등장했다. 조선 사회를 뒤흔들었던 거대한 난을 일으켰던 홍경래가 죽지 않은 채 출포된 상황은 당혹스럽다. 딸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는 영의정에 맞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모든 죄를 안고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아비의 마지막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극적인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부당한 권력에 맞선 백성들의 난은 이렇게 드라마에서는 하나의 소품으로 활용된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만드는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홍경래는 그렇게 사랑의 큐피드까지 자처하고 나섰다. 조선 시대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하는 사극의 특성은 그래서 언제나 특별함으로 다가오고는 했다. 하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선택은 이 모든 사회 문제를 이영과 라온의 사랑을 위한 소도구화로 전락하고 있다. 처음부터 오직 둘의 사랑만을 외쳐왔던 만큼 크게 이상하지는 않지만 홍경래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씁쓸하기만 하다.
끊어진 운명의 팔찌는 결국 새로운 팔찌로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세상 모두가 인정하지 않아도 둘만 행복한 사랑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 역사 속 인물을 차용한 작가의 판타지는 그렇게 현실로 옮겨도 크게 이상할 것 없는 로맨스로 채워졌다.
박보검이라는 거대한 존재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품고 있는 근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한계마저도 품게 만들었다. 연기도 모자라 OST까지 참여한 박보검은 이 드라마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존재다. 박보검은 이제 사극과 현대극 모두를 할 수 있는 인물로 거듭났다. 이 드라마가 아니라 이후 박보검의 행보가 더 흥미롭게 다가올 정도로 <구르미 그린 달빛>은 시작 전부터 현재까지 오직 그를 향해 정조준 되어 있을 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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