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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et 묵은 기억들

그녀 her-AI를 사랑한 남자, 12년 전과 현재 뭐가 달라졌을까?

by 자이미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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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2년 전에 만들어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 her'를 최근 다시 봤습니다. 과거 봤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존즈 감독이 상상했던 과거의 미래 이야기가 지금 시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과거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렇고 그런 찐따, 오타구의 사랑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런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들이 존재하기는 했으니 말이죠. 일본 영화의 경우 인간과 기계가 하나가 되는 상상력이 발휘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본 영화 전성기도 있었으니 말이죠.

그녀 Her-13년 전 영화 속 AI는 현재 어떨까?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대신 편지를 써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필 작가로 제법 능력을 인정받는 그는 어느 순간 허무해져 삶이 지루할 뿐이었습니다. 한때 많은 친구들과 교류하며 활발했던 성격도 이제는 혼자 있는 것이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테오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내와 관계가 소원해지며 이혼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테오에게는 대학 시절 잠깐 교감을 나누기도 했던 오랜 친구 에이미(에이미 아담스)가 있습니다. 평생 친구로 지내는 에이미에게는 동거 중인 남자친구가 있죠.

 

테오는 우연하게 OS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OS1에서 만나게 된 AI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 이야기를 하며 테오는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취향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AI는 당연하게도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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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테오의 오랜 친구 에이미가 만들고 있다는 다큐는 어머니가 자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 공개할 수 없다며 동거 중인 남자친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것이지만, 테오에게는 가능합니다. 이들 관계 속에서 미묘함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영화를 보는 재미이기도 합니다.

 

친구의 제안으로 소개 받은 여성을 만나지만, 이미 테오의 마음에 사만다가 가득했습니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는 다시 인간으로 치유되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사만다를 이겨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만난 여성에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AI인 사만다에게 느끼는 테오는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와 진짜 사랑을 하게 됩니다.

 

인간처럼 잠든 새벽에 전화를 해서 사랑을 확인하고 끊는 AI의 행태는 인간을 완벽하게 모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감정들을 테오는 친구인 에이미에게 터어놓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셋은 함께 대화를 하며 친숙해지기도 합니다.

그녀 Her-테오에게 그녀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테오 회사 동료인 폴(크리스 프랫)은 그의 글솜씨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친구가 된 그는 폴의 여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당연히 테오에게는 사만다가 함께였죠. 편견 없이 AI 여자친구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도 익숙하게 받아들일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와 이혼을 결정하게 된 이유 역시 사만다의 역할이 컸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며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만 강요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는 이혼을 빨리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은 테오가 만나는 상대가 AI라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캐서린이 느낀 감정은 뭘까요? 최소한 자신과 이별하는 사람이 사귀는 이성은 자신보다 좋은 사람이길 바랍니다. 그런데 상대가 AI라는 사실은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고작 기계보다 못한 존재라는 생각은 분노로 이어지게 만듭니다.

 

이 영화가 완벽함을 추구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테오와 사만다 사이의 관계들이 점점 고착화되고 폭발하고 무너지는 과정들을 효과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여러 고민들도 사만다와 연결도 하지 않자, AI는 다른 방식을 통해 테오를 묶어두려 합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AI가 아닌, 실제 인간과 관계를 맺는 행위를 요구합니다. 콜걸을 불러 볼에 소형 카메라를 붙이고, 그 여성도 사만다와 연결되어 AI를 대신하는 인간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사만다는 상대 인간을 보다 완벽하게 자신에게 귀속시키려 했을 겁니다.

테오가 느끼는 감정선은 그런 식으로 풀어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테오가 원하는 것은 AI와 만나는 그 경계에 만족하는 것이지 인간처럼 행동하는 사만다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사만다는 이미 사망한 유명 철학자의 모든 것을 조합해 AI로 살려내 테오에게 소개해주는 장면도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죠. 사만다는 새롭게 만들어진 AI에게 호감을 보이고 특별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테오는 질투를 했을까요? 자기들 언어로 이야기해도 되냐는 사만다의 질문에 이질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 역시 당연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 근본적인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OS까지 사라져 당황한 테오는 그 순간 자신이 얼마나 AI에 빠져 있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사만다와 연락이 된 테오는 이야기를 나누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문뜩 질문을 던집니다.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과도 이야기를 하냐고 묻습니다.

 

사만다는 테오와 이야기를 하며 동시접속해 있는 숫자만 8,316명이라고 합니다. 충격을 받은 테오는 사랑 중인 대상은 몇이냐고 묻죠. 사만다는 641명과 사랑 중이라고 합니다. 충격을 받은 테오에게 자신은 당신을 너무 사랑한다며, 이를 이해해줘야 한다는 말은 기계 입장에서는 진실입니다.

 

"난 당신 거면서 당신께 아냐"

 

자신이 사랑한 이가 다른 사람을 600명 넘게 사랑하고 있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사만다가 충격받은 테오에게 한 말이 모든 것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인간처럼 구현된다고 해도 기계는 기계일 뿐입니다. 사용자의 맞춤형이 되는 것 역시 기계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그녀 Her-테오와 에이미의 관계성이 중요한 이유

마지막 장면에서 테오가 오랜 친구 에이미와 함께 하는 장면에서 감독의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명확해집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는 테오와 사만다의 사랑이라는 감정선을 정교하게 따라가며, 과연 우리는 AI와 어울려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던지고 있습니다.

 

테오와 에이미의 관계성은 감독이 생각하는 가치이자 주제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AI가 발달하고 실제 우리의 삶과 완벽하게 결합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인간과 만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바람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결국 인간이 답일 수밖에 없음을 13년 전 감독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13년 전 감독은 무슨 상상을 하며 이 영화를 구상하고 재현했을지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테오가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위아래와 옆으로 여는 것만 다를 뿐 삼성의 폴더폰과 같습니다. 과거 폴더폰이 아닌 스마트 폴더폰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상상한 현실이 현재는 일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테오가 퇴근해 집에서 하는 게임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빔을 통해 재현된 게임은 VR이 진화한 형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게임 속 인물과 사용자가 함께 대화하는 것 역시 AI가 일상화되면 당연하게 제공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까지 안경을 통해 재현되는 그래픽도 어느 순간이 되면 빔을 통해 보다 완벽하게 재현될 겁니다.

 

NPC들이 AI를 통해 자아를 가지는 게임도 개발되고 있다는 점에서 테오가 즐기던 게임은 그 이상의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AI가 개발되고, 그런 기술의 진보는 상업적인 다양성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성산업입니다.

그녀 her-테오는 사만다를 정말 사랑했을까?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안드로이드에 AI와 결합해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존재와 사랑을 나누는 것은 일상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실제 현재는 인형으로 대체된 성산업에 AI칩이 결합되는 날도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어려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처럼 행동하는 섹스 토이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녀'에서 나온 것처럼 오감을 만족시키는 방식은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OS1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AI들 역시 하나의 산업으로 펼쳐집니다. 그 안에는 사만다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고 세분화된 AI들이 있을 겁니다.

 

그 수많은 AI들이 촘촘하게 전 세계 인구들과 결합되는 세상은 그 어떤 미래가 아닌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경계점에서 AI가 성매매를 알선하는 행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AI로 재정립된 세상이 아니라면, 그 중간 단계에서 기존에 존재하는 방식과 새로운 형식이 결합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죠.

 

실제 로맨스 스캠의 경우도 점점 진화하며 AI의 힘을 이용해 자신이 아는 사람과 동일한 모습으로 동영상 통화를 해서 돈을 갈취하는 사건들도 벌어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AI를 이용하면 완벽하게 재현해 인간의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재현력은 현재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때로는 섬뜩하기도 합니다.

 

기술은 1+1=2와 같은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n승의 무한증식하듯 기술의 진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AI라는 개념이 모호했지만, 이제는 그 방식이 우리의 삶으로 급격하게 들어서고 있는 중입니다. 불과 몇 년 사이 빠르게 AI와 동거할 수밖에 없게 된 현실 속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많습니다.

 

지금도 우린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음성을 통해 AI와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달리,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는 AI는 점점 인간의 삶을 파고들어 생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테오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감독과 각본을 맡은 스파이크 존즈는 이 영화 이후 장편 영화를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다양한 광고 촬영 등을 하고, 간혹 단역으로 출연도 하지만, 영화는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장편 데뷔작인 '존 말코비치 되기'보다 남달랐던 존즈의 새 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그는 대중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싶을까요? 

 

13년 만에 다시 접한 '그녀'는 의외로 보다 다양한 함의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OTT로 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OTT 중에서 유일하게 제공하는 곳은 '왓챠'가 유일했습니다. 그만큼 다시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고 완벽했던 이야기는 다시 한번 AI가 일상으로 급격하게 파고드는 현실을 곱씹어 보게 합니다. 과연 우린 테오보다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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