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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영면, 위대한 한 시대가 저물었다

by 자이미 202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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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24일 고인이 되어버리 김민기의 발인이 이어졌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죠. 시대의 상징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시대가 되어버린 전설의 마지막을 많은 이들은 함께 슬퍼하고 추모하고 있습니다.

 

학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겨질까요? 비록 대중적인 큰 관심을 받거나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규모도 작지만 그 안에서 펼쳐진 세상은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태생하고 성장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김민기와 학전은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남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민기 그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전설이다

현재의 20대들에게는 낯선 음악이 되어버린 '아침이슬'은 우리의 현대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그 자체가 노래를 넘어선 역사입니다. 그의 삶은 당시 시대상을 그대로 담고 있고, 그의 흔적들은 우리가 현재 전 세계 한국 대중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군가 하나가 이끈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수많은 선지자와 혁명가들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독재자가 나라를 지배하던 시절 자유와 모든 것이 억압되던 세상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에 자유를 그리고 인간다움을 위해 싸운 수많은 이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자유로 억압당하기도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 모든 평범함마저 빼앗긴 삶을 살아야 하던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독재와 맞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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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상징이 되어버린 '아침이슬'은 세상을 바꿔보자며 만든 노래는 아니었습니다. 그 노래는 그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이들이 선택했습니다. 거리로 나선 수많은 이들은 독재와 맞서며 자연스럽게 '아침이슬'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원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침이슬'은 독재와 맞서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노래로 김민기는 지독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끌려가 모진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던 김민기의 삶은 일반적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가 노동자 부부의 결혼식을 위해 만든 '상록수'를 보면 가사에서 그가 세상과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엄청난 돈도 권력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김민기는 그런 삶은 택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그의 삶과 노래를 이어간 김민기의 삶에는 우리가 있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뒷것 김민기 그는 위대했다

'아침이슬'이 그랬듯 '상록수' 역시 의도와 달리, 수많은 이들에 의해 불려지며 김민기의 노래가 아닌 모두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 노래는 노동자들의 결혼식을 위해 만든 곡이었지만,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위한 곡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노래는 그렇게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왔습니다. 원곡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노래는 전국민의 사랑을 받고 다양한 의미와 의도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물론 좋은 의도로 말이죠. 위대한 노래는 그렇게 시대와 상관없이 사랑받고 의미로 연결되고 전달되고는 합니다.

 

'학전'은 김민기 꿈꾸는 모든 것을 담은 곳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뮤지컬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을 위한 뮤지컬과 공연을 꾸준하게 이어갔던 그곳에서는 돈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를 향유하기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가 돈을 벌고 싶었다면 충분히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겁니다. 그에게 중요한 가치는 돈이 아닌 문화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김민기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고 합니다. 오직 관객의 입장료만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김민기의 고집스러운 원칙은 그의 삶을 그대로 닮은 듯합니다.

 

암 투병을 이어가던 김민기는 영면에 들었습니다. 24일 오전 8시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영길식에는 많은 이들이 함께 했습니다. 위대한 전설이지만 가장 소박하게 장례식을 치렀는데 이 역시 고인의 요청이었다고 합니다. 

학전 자리에 마지막으로 들린 고인이 된 김민기
고인을 떠나보내는 제자들

고인의 발인식이 끝난 후 장지인 천안공원묘원으로 향하기 전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꿈밭극장' 마당에 들렀습니다. 그곳은 고인이 33년 간 일궈온 '학전'이 폐관한 후 새롭게 연 극장이기 때문입니다. 김민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곳에서 모인 이들은 오열하기도 했습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찾은 '아르코꿈밭극장'에는 그곳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을 비롯해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이황의, 최덕문, 방은진, 배성우, 가수 박학기, 유리상자 박승화, 유홍준 교수 등 고인과 추억을 함께한 이들이 모여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습니다.

 

비까지 내린 그곳에서 이들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아침이슬'을 불렀습니다. 고인을 배웅하는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선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생 김민기가 만들어 전 국민의 노래가 되었던 '아침이슬'은 그렇게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1951년 생으로 향년 73세였던 고인은 위암 증세로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1일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별세했습니다. 그런 김민기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그의 삶을 잘 조망한 다큐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앞서기보다 뒷것을 자처했던 김민기
그는 갔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한 전설로 남겨진 김민기

김민기의 영면으로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의 한 부분도 잠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남긴 모든 것들은 영원히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게 될 겁니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고는 합니다. 그리고 김민기는 그 스스로 위대한 영웅이라 칭하지도 않았지만 위대한 전설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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