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접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한정되어 있다. 그나마 넷플릭스를 통해 다양한 국가의 영상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워졌지만, 이전까지는 한정된 영화와 드라마만 접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미국의 대중문화가 뿌리 깊게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이하 라이더스)>는 덴마크 영화다. 사실 북유럽에서는 영화가 자주 만들어지지 않는다. 1년에 몇 편이 제작되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이들 나라의 작품들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잘 사는 북유럽의 다수 국가가 도시국가 수준(인구 규모)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현역 군인인 마르쿠스(매즈 미켈슨)은 가족과 떨어져 전장에 나가 있는 상태다. 언제 복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가 급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내와 통화를 한 그날 문제는 발생했다. 전장을 좋아하는 군인인 마르쿠스는 집보다 군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좋았다.
3개월 뒤에나 집으로 온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아내는 딸 마틸드와 함께 시내 나들이를 나섰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중 갑작스럽게 충돌 사고가 일어나며 마르쿠스의 아내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당시 마르쿠스의 아내에게 자리를 양보한 오토는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 분석과 통계와 확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오토는 일자리를 잃었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도중 막 열차에 오른 마틸드의 어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 순간 차량 충돌이 있었고, 그렇게 모든 것은 벌어졌다.
오토는 자신이 탄 차량에 범죄집단인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조직원을 목격했다. 살인, 약탈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 대한 덴마크인들의 분노도 크다. 두목인 커트를 배신한 조직원이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보도를 보고 확신을 가졌다.
우선 경찰을 찾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테러라고 주장했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두목 커트가 자신을 고발한 조직원을 죽이기 위해 사고를 위장한 테러를 저질렀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경찰들은 그의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자신의 주장을 믿지 않자 오토는 친구인 레나트에게 부탁을 해 이들 조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너드들인 그들에게 추적하고 조사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들인지 확인한 오토와 레나트는 마르쿠스를 찾았다.
사고를 사망했다고 생각한 마르쿠스에게 오토가 건넨 발언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악랄한 범죄 집단이 자신들을 고발한 조직원을 죽이기 위해 사고를 위장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음모론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오토가 의심했던 마르쿠스 가족이 타던 시점 바로 내린 남성 사진이 바로 커트의 친동생이라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했다.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다루는 에멘탈러를 통해 처음 접한 인물은 이집트 카이로에 사는 치과 관련 일을 하는 사업가였다.
하지만 이들은 덴마크에서 벌어진 일에 왜 이집트 사람들이 나오냐며 에멘탈러에게 확률을 낮춰 덴마크 사람을 찾아보라고 요구했다. 원칙에 벗어난 제안에 거부하던 에멘탈러는 어쩔 수 없이 95%의 확률로 찾아낸 이가 바로 커트의 동생인 팔레 올슨이었다.
오토의 추리는 그렇게 짜맞춰지듯 이어지기 시작했다. 팔레 역시 온갖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던 인물이다. 더욱 열차 부품을 전문으로 하는 전기 기술자였다. 모든 것이 오토의 추리에 걸맞았다. 사고가 난 그 열차에 조직을 배신한 조직원이 있었고, 하필 사고 직전 팔레가 내렸다.
이 모든 것은 오토가 주장한대로 조직을 지키기 위해 벌인 범죄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팔레를 찾아간 이들은 현장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마주했다. 팔레가 자신들을 거칠게 대하자, 다시 돌아간 마르쿠스는 그 자리에서 제거해 버렸다.
마르쿠스에게 팔레 정도는 손쉽게 제거할 정도의 능숙함이 있었다. 총까지 들고 있는 팔레를 범인이라 확신한 마르쿠스는 당연한 복수라 확신했다. 사건 현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레나트는 그곳에서 한 인물을 발견한다. 침대에 묶여있던 보다시카였다.
동유럽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팔려간 보다시카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게 덴마크까지 오게 된 그는 그날도 침대에 묶인 채 팔레의 노리개 감이 되어 있었다. 결국 팔레가 흥분해 총까지 겨누며 분노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덴마크 최악의 범죄 집단 두목의 동생이 살해당했다. 당연히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존재인 보다시카는 목격한 이를 밝혀야 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에멘탈러라는 이름을 확인한 그들은 그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등장한 마르쿠스 일행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전장이 익숙한 마르쿠스에게 조폭들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총알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적들은 모두 사망했지만, 신기하게도 보다시카는 멀쩡했다. 그렇게 그 역시 마르쿠스의 집에 기거하는 신세가 되었다. 레나트가 적극적으로 보다시카를 챙긴 것은 자신 역시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 때문이었다.
마르쿠스와 언쟁이 붙은 상황에서 도망치던 레나트가 엉덩이를 내밀며 사과하는 장면은 익숙하지 않아 충격적이지만, 이는 레나트와 보다시카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정신적 충격으로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았던 레나트는 그런 경험을 토대로 마르쿠스의 딸을 상담해주기까지 한다.
비록 엉뚱하고 엉성한 조언과 상담이지만, 마틸드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르쿠스의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조직에 대한 복수는 점점 더 강력해져 가는 상황에서 이들이 오토의 정체를 알고, 그의 집에 들이닥치는 상황이 되었다.
완전 무장을 한 이들은 마르쿠스의 집에 총을 쏘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어진 총격전에서 부상을 입은 마르쿠스는 딸이 붙잡힌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릎을 꿇은 상황에서 마르쿠스를 도운 것은 너드들이었다.
실패자라고 불러도 좋을 그들이 모두 총을 들고 덴마크 최악의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과정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일 수밖에 없었다. 뚱뚱해서 놀림을 받고, 어린 시절 아픔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그리고 차 사고를 딸을 잃은 남자는 삶의 의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은 그저 컴퓨터에 갇혀 살았고, 그런 너드들이 덴마크 최악의 범죄조직을 건드렸다. 행동은 군인 출신인 마르쿠스였지만, 그런 용기는 그들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일망타진되었다.
어깨에 총상을 입은 딸 마틸드를 안고 마르쿠스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가족의 소중함 말이다. 오토의 음모론은 사실과 달랐다. 이 범죄조직이 증언하려는 조직원을 죽이기 위해 사고를 위장한 폭파사고를 일으킨 것이 아닌 실제 사고였다.
팔레 역시 열차를 폭파한 주범이 아니었다. 마르쿠스가 찾아온 날 덴마크에 보다시카와 함께 도착했다는 점에서 열차를 폭파할 수도 없었다. 오토가 목격한 비싼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버리고 내린 아랍인이 과연 범인일까?
이 역시 관객의 잘못된 인식을 파괴한다. 그는 정말 평범한 비즈니스맨이었다. 덴마크 출장 중 맛없는 음식을 버리고, 바로 햄버거를 사 먹었다며, 음식이 맛없다고 이야기하는 그 이집트 남자는 테러범이 아니었다. 아랍인은 무조건 테러범이라는 등식을 보기 좋게 깨트리는 영화이기도 했다.
오토의 잘못된 추론과 확률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상관없는 이들을 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대상자들이 온갖 범죄를 저지른 악랄한 범죄 집단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부여되었다. 친구도 별로 없던 이들은 크리스마스에 마르쿠스의 집에 모여 서로의 선물을 교환한다.
여전히 마르쿠스는 무뚝뚝하지만, 그렇게 이들은 새로운 가족이 되어 있었다. 동유럽에서 온 이부터 너드들까지 이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새로운 의미의 엉뚱한 복수극의 끝에 가족에 대한 가치를 특별하게 부여한 이 영화는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적인 느낌도 존재한다.
한국인의 정서인 '한'과 '정'이 이 영화에 가득하니 말이다. 물론 유럽인 특유의 정서와 이상한 유머 코드들이 가득하지만, 이들이 보인 행태와 지향성은 한국인의 정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복수극 전성시대 엉뚱한 음모론이 만들어낸 파급효과를 다룬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익숙하지 않은 덴마크 영화를 흥미롭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어설픈 대목들도 존재하지만, 엉뚱한 상상력을 통해 통속적이며 편견에 가득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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