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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et 묵은 기억들

김씨 표류기-윌슨 밀어낸 짜장 라면, 현대인들에게 고독은 옵션이다

by 자이미 2021.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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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한국 영화들 중 걸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띵작들이 상당히 많다. 묻힌 영화들을 꺼내 보는 것 역시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의 잔재미들이기도 할 것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준 감독이 만든 <김씨 표류기>는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온다.

 

현대인들은 고립이 일상화되어 있다. 자신이 알든 모르든 서로가 서로에게 고립된 채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과거 가족단위, 마을단위로 모여 살며 나누던 시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오지랖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뭘하는지 알고 있던 시대는 거의 남지 않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협소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고립된 섬에 갇힌 존재들일뿐이다. 

 

엄청난 빚과 배신하고 떠난 여자친구로 인해 한강 다리 위에 선 승근(정재영)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문제는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승근을 깨운 것은 천만 도시에 외롭게 존재하는 섬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승근은 당황했다.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죽지도 않고 도심 속 섬에 낙오가 된 상황이 황당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구조 요청을 하지만, 서울에 있는 섬이라는 말에 장난 전화로 오인받기 일쑤였다. 한강 유람선이 보이자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과 눈이 마주친 관람객은 멋쩍은 듯 함께 손을 흔들며 웃음을 던져주고 사라졌다.

 

밤섬에 낙오된 승근은 SOS를 쓰고,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눈앞에 보이는 63 빌딩을 바라보며 수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문제는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승근은 탈출하다 죽음의 위기가 찾아오자 바로 섬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까지 극단적 선택을 위해 뛰어든 한강물인데, 이제는 죽지 않겠다고 사력을 다해 섬으로 오는 승근의 모습은 인간의 속성을 잘 표현했다. 수영도 하지 못하고, 자신을 구하러 올 사람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이후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죽음이 아니라 생존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승근은 살기 위한 방법들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섬 주변을 뒤지고, 새들을 잡기 위해 노력도 해보지만 승근에게 잡힐 새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강에 있는 물고기라도 잡아보려 포크를 나무에 묶어 작살을 만들어보지만 물고기가 아니라 자신의 발등만 찍었다. 

 

한심함이 극에 달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나마 섬에 있는 버섯을 따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한강물을 마시고, 버섯으로 끼니를 때우던 그에게 갑자기 선물이 등장했다. 더러운 한강물로 인해 물고기가 죽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쳐다도보지 않았을 물고기를 구워 맛있게 먹는 승근은 섬에 온 이후 처음으로 포만감이라는 것을 느껴봤다. 버려진 오리배를 이용해 잠자리까지 만든 승근은 아침에 또 다른 선물에 쾌재를 불렀다. 승근이 먹고 버린 구운 생선을 먹던 새가 죽었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으로 물고기와 새는 죽지만, 인간은 그런 생선과 새를 먹으며 생존하고 있다. 대단한 생존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이 얼마나 오염에 노출된 것인지 새삼스럽게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승근은 숲에서 라면 봉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짜장라면 봉지 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스프가 남겨져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승근은 지독한 욕망에 시달려야 했다. 짜장면이 주는 그 지독한 중독성을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승근은 평소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남들은 짜장면을 먹는 사이 그는 다른 메뉴를 선택했다. 그런 승근은 섬에 고립된 상황에서 발견된 짜장라면 스프 하나에 통곡을 하며, 자신이 왜 짜장면을 멀리 했는지 후회하는 장면 역시, 인간의 삶에 대한 애착을 흥미롭게 풍자한 대목이기도 했다.

 

인간이 삶에 의욕을 느끼는 그 지점이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다. 남들이 보면 하찮아 보이는 이유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경우들도 많으니 말이다. 물론 역으로 죽음의 이유 역시 그렇다. 스프만 있는 상황에서 짜장라면을 먹고 싶은 승근은 고민을 시작했다.

 

자신의 숙소가 된 버려진 오리배 위에 수북히 쌓인 새들의 배설물을 보고, 그는 농사를 생각했다. 옥수수를 재배해 키워, 이를 밀가루 삼아 면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그렇게 밤섬에 고립된 승근의 표류기는 분명한 목적을 띠기 시작했다.

 

정연(정려원)은 승근과 달리,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작은 자신의 방안에서 나오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학창 시절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그렇게 왕따를 당하던 그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해 자유를 얻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그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단순하다. 예쁘고 화려한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고, 사진을 가져와 자신의 SNS를 꾸미는 일이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SNS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세상이었다. 그렇게 화려하게 포장된 자신을 보며, 동경하고 친구 하려는 이들을 보며 정연은 행복했다.

 

고립되었지만, 오히려 자유를 얻은 정연은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과 떨어져, 그 안에서 자신이 만든 세상으로 소통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정연이 단 하루 잠시 창문을 여는 날이 있다.

 

민방위 날이 되면 세상은 사람들이 사라진다. 거대한 서울이 잠시지만 완전히 인간이 사라진 도시가 된다. 그런 도시의 모습들을 사진을 찍는 것이 유일한 외부와의 소통인 정연은 카메라를 돌리다 우연하게 밤섬에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구조 요청을 하는 글귀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밤섬에 사람이 있다는 말에 이 역시 장난으로 치부되었다. 

 

정연은 자신처럼 고립된 이가 있다는 사실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런 그가 외계인이라 생각한 정연은 어떻게든 그와 소통하고 싶었다.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지만, 정연은 누구보다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존재였다. 정연의 일상은 이제 밤섬에 있는 승근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절대 방빡으로 나가지 않던 정연은 용기를 냈다. 어떻게든 그와 소통을 하겠다는 의지는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밤섬 앞까지 다다르게 했다. 유리병에 자신의 메시지를 적은 쪽지를 담아 밤섬에 던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정연만의 특급 작전이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성공했다. 

 

승근은 모래밭에 크게 메시지를 적고, 정연은 유리병에 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소통은 시작되었다. 섬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었던 승근은 스스로 작물들을 키우며 그곳에 고립된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유람선을 피해 자신을 숨기는 모습에서 승근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태풍이 몰아치며, 힘들게 키웠던 모든 것들이 다 날아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연이 보낸 중국 요리마저 돌려보냈다. 짜장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승근을 위해 정연은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밤섬에 배달을 요청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많은 배달료를 지불했지만, 오리배를 타고 밤섬까지 들어온 배달원이 내려놓은 짜장면과 요리를 거부하도 돌려보낸 승근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 섬으로 들어오기 전의 자신이 아닌 온전히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이 순간 잘 담겼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이루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났다. 승근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연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어렵게 키운 옥수수로 면을 만들어 드디어 짜장라면 스프로 만든 짜장면을 먹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승근이 느끼는 감정은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정연은 승근처럼 옥수수를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출근하려는 엄마에게 용기를 내서 옥수수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감옥에 자신을 가둔 후 자발적으로 뭔가를 요구한 딸을 보며 엄마가 느끼는 감정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감동이었을 것이다. 

 

밤섬에 완전히 정착한 승근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섬 정비사업을 위해 들어온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로 인해 그는 도심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몇달 전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이지만, 강제로 그곳에 도착한 승근은 삶의 의지마저 빼앗긴 듯한 표정이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연은 대낯에 집을 나서 그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살았던 정연에게 이는 엄청난 용기가 아닐 수 없었다. 오직 승근을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그곳으로 향하지만, 눈앞에서 그는 버스를 타고 떠났다.

 

아무리 뛰어도 버스까지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오열하며 돌아서는 순간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모든 것이 정지되는 그 순간이 정연을 위해 펼쳐졌다. 어렵게 버스에 올라타 수염이 덥수룩해 모두가 외면하는 승근 앞에 선 정연. 출발하는 버스로 흔들리는 정연의 손을 잡는 승근의 관계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김씨 표류기>는 두 김 씨 성을 가진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발적으로 고립된 이와 어쩔 수 없이 고립된 이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충분했다. 코믹함 속에 웃으며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은 어쩌면 이들 김 씨의 모습이 나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도시인이 느낄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고독을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2009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여전히 생명력을 얻고 있는 것은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가 표류하다 섬에 갇힌 배구공 윌슨과 소통을 하던 모습과 짜장라면 스프가 가진 가치는 동일하다. 이를 통해 극한의 외로움을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신비롭기도 하다. 환경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인간만큼 그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동물도 없으니 말이다.

 

현대인들은 항상 외롭다. 도시화가 심해지면 심해질 수록 우린 스스로 만든 위대한 섬에 고립될 수밖에 없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문화가 장난처럼 퍼지며, 극도의 이기심은 극한의 고독을 선사한다. 그런 지독한 외로움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이들이라면 <김씨 표류기>가 만든 세상이 낯설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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