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가 돌아왔다. 의외기는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이야기는 경찰이었다. 공시족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그 중 하나인 경찰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기는 하다. 정유미와 이광수를 앞세운 청춘들의 도전기는 시작부터 짠내가 물씬 풍겼다.
날 것 그대로 청춘;
지독한 취업 전쟁 도피처가 된 공무원, 오직 살기 위해 간 그곳에서 인생을 배운다
정오(정유미)는 눈코 뜰 새가 없다.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아침을 준비하는 정오는 미혼모였던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잠도 자지 못한 채 그녀는 서울에서 개최되는 중소기업취업박람회 참석을 하기 위해 열심히 뛴다.
상수(이광수)는 생수 회사에 다니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는 상수는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빌딩 청소부로 살아가는 엄마를 위해서도 정규직이 절실하다. 자사주 구매를 하면 정규직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힘겹게 엄마가 모은 돈과 제약회사 영업 사원인 형의 적금을 모두 깨서 투자했다.
취업박람회에 어렵게 도착하기는 했지만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옷을 갈아 입으러 들어간 화장실에서는 커피를 든 다른 지원자로 인해 옷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엄마와 싸우다 브라우스를 태우며 시작된 정오의 도전기는 최악이었다.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상황에서 취업 인터뷰 현장은 여성들에게는 산 넘어 산이다.
지방대를 나온 여성들의 취업은 말 그대로 최악일 수밖에 없다. 온갖 이유를 들어 여성 지원자들에게 굴욕을 주는 이 한심한 인터뷰는 과연 무엇을 위함인지 알 수 없게 한다. 사라진 군 가산점을 자연스럽게 언급하고, 여성들의 근무 적합도만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현실 속에서 절망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학점도 토익 점수도 뭐 하나 자신보다 좋은 것이 없는 남자 선배는 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 한심한 선배보다 모든 것이 좋았던 정오는 여자라는 이유로 모든 기회를 놓쳤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속에서 정오가 할 수 있는 우아하게 동료들과 함께 한 술자리를 빠져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상수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렇게 행복해지고 싶었다. 여렵게 아들 둘을 키워준 엄마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자사주를 많이 사면 분명 정규직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클럽에서 친구들과 간만에 놀면서도 이들에게 현실은 그 짧은 시간을 즐기기도 어렵게 만든다.
엄마가 다리를 다쳤다는 소리에 참 한심한 말을 하기는 하지만, 상수는 술에 취해 뻗은 친구를 업고 엄마에게 향한다. 그런 엄마의 동료는 비참함을 더하게 한다. 피곤한 엄마를 위해 집으로 함께 가기 위해 구청에 다니는 공무원 아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는 엄마. 언니는 정규직이 되어 짤릴 위험도 없고 월급도 올랐다. 아들도 짤릴리 없는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엄마는 부럽다.
자신이 다니는 생수 회사가 다단계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상수는 믿지 않았다. 일반 회사처럼 월급을 받고 다녔는데 무슨 다단계냐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회사에 간 상수는 이미 분노한 투자자로 가득한 현장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형은 대기업 다니는 남자와 선을 본 여자친구에게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고, 훌쩍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버렸다. 엄마를 버린 형과 많은 이들에게 투자를 요구하고 모두 날려 버린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찰 공무원 포스터였다.
찜질방에서 다음 날 박람회를 준비하던 정오는 얼굴만 아는 아빠에게 돈을 받아 작은 카페라도 차리고 싶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화가 났다. 미혼모였던 엄마. 힘겹게 자신을 키우며 고등학생이 된 자신을 데리고 아빠라는 사람을 찾았지만 모멸만 하던 그 사람을 더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자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용납할 수도 없었다.
최악의 상황들이 연이어 이어진 정오는 지하철에서 경찰 공무원 포스터를 보고 결심한다. 취업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 속에서 마지막 탈출구는 공무원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절박함은 정오를 지독하게 증오하는 아빠를 찾게 만들었다.
2천만 원을 받은(정오는 빌렸지만) 그녀는 그렇게 노량진 공시촌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다잃은 상수도 고시촌으로 향했다. 지독할 정도로 공부를 했다. 매일 새벽 런닝을 하며 출근을 하는 엄마 모습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상수는 절박했다. 자신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엄마를 위해서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나태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2년의 고생 끝에 그들은 경찰 공무원이 되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행복했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중앙경찰학교'였다. 그저 단순한 이수 과정이라 생각했던 경찰학교였지만, 악랄한 오양촌(배성우)가 학교로 들어서며 이들에게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무조건 1, 2명은 탈락시키겠다고 몰아붙이는 오양촌은 공공의 적이었다. 시험에 붙었다고 경찰이 아니라며 제대로 된 경찰이 되기를 요구하는 오양촌으로 인해 두 명의 합격자는 스스로 짐을 싸 버렸다. 그런 그들 앞에 노래를 크게 틀고 경찰서로 복귀하던 그의 모습은 모두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퇴교 직전까지 몰린 정오는 결코 물러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경찰이 되어야만 하는 절박함은 그녀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벌칙이 기준 점을 넘기며 퇴교다. 물론 이런 벌칙은 군에서도 사용하지만 대부분 무의미한 몰아붙이기 전략일 뿐이지만, 그 상황에 몰린 이들에게는 지독한 불안과 고통의 수치가 되고는 하니 말이다.
시위대를 막기 위해 나선 경찰학교 학생들. 밀려서도 안 되고 폭력을 사용해서도 안된다. 대열이 무너지는 순간 벌점이라는 지휘관의 말은 학생들에게 불안과 공포만 더욱 키웠다. 수없이 반복해서 구호를 외치게 하는 그들은 이미 묘한 상황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노희경 작가는 지난 촛불 현장에서 목격한 경찰들을 보며 이 드라마를 준비했다고 했다. 젊은 청춘들인 그들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 촛불 현장을 지켰다. 첫 장면에서 눈발이 쏟아지는 차가운 거리에서 식사를 하는 경찰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 안쓰럽게 다가왔다.
촛불 현장에서 시민들과 경찰은 대립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꽃을 달아주었고 경찰들 역시 과격한 진압이 아닌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과거와는 다른 그 변화의 현장에서 모든 것을 목격한 노희경 작가는 그렇게 <라이브>를 만들었다. 경찰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역사적인 문제와 피상적인 가치들, 그리고 촛불 혁명을 통해 변하기 시작한 사회적 분위기까지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 노희경 작가의 <라이브>는 다시 한 번 걸출하게 시작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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