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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의 고해성사 자리이거나 앨범 혹은 드라마,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창구로 사용되던 <무릎팍 도사>에 은퇴한 마라토너 이봉주의 등장은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20여 년 동안 달리기만 했던 그가 달리는 것을 멈추고 고민했던 '한국 마라톤'에 대한 고민은 인생과 맞닿아 있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천재와 싸워야만 했던 노력형 마라토너
이봉주는 42. 195km 마라톤 코스를 41번이나 완주한 엄청난 기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가 '무릎팍 도사'를 찾은 이유보다도 그가 살아왔던 인생이 의미 있었던 건 그는 천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 한국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이며, 올림픽 은메달 리스트이고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이기도 한 그가 철저한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짝발에 평발까지 가진 그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고등학생이 되어 마라토너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살았기에 달리는 것이 즐거웠다는 소년 이봉주는 단거리를 잘 뛰지도 못해 운동회에서 누구나 하나씩 가질 수 있었던 노트도 받지 못할 정도였다 합니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천재가 아니었기에 가능했었습니다. 자신이 모자란 선수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운동을 한 20년 동안 매일 아침 5시부터 400미터 트랙을 50바퀴에서 100바퀴씩 뛰는 일을 거른 적이 없다는 그의 끈기와 노력이 전설적인 선수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의 숙명의 라이벌이자 올림픽금메달 리스트인 황영조와는 고등학교 전국체전에서 처음 만났다 합니다. 자신이 운동을 시작하던 당시 유명인이었던 황영조는 타고난 폐활량을 부러워했던 이봉주는 타고난 신체적 조건을 탓하기 보다는 근면, 성실, 책임감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나갔습니다.
첫 만남과 대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로 시작된 그들의 라이벌 인생의 절정은 92 바로셀로나 올림픽이었습니다. 워낙 기록이 좋았던 이봉주가 금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무리한 운동으로 무릎을 다치게 되면서 국민 마라토너는 황영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봉주가 올림픽에서 뛰었다고 극적인 금메달을 걸었을 것이란 가정론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그에게는 아쉬운 순간이었을 듯합니다. 그렇게 힘들기만 했던 그에게 올림픽은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절치부심해 참여한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그는 무명의 선수와 겨우 3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치고 맙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선수의 질주에 금메달을 놓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에게 올림픽 금메달이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온 국민이 떼어 놓은 당상 이라 여겼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앞서 달리던 선수들이 쓰러지며 그는 우승은 고사하고 완주를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완주한 그에게 올림픽은 지독한 악운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 올림픽과는 달리 그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하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전국체전을 시작으로 마지막 은퇴 경기도 전국체전으로 마무리한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기록이 나아지지 않자 과감하게 떠나야 할 때를 알았다고 합니다.
숙명의 라이벌이었지만 자신의 부인을 소개해준 소중한 친구이기도 한 황영조. 그들은 대한민국 마라톤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우리시대 최고의 마라토너였습니다. 그의 마라토너로서의 인생은 그렇게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으로 끝이 났지만 그는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과 너무 닮은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는 노래 가사와 너무 닮은 자신의 삶이였기에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듯 했습니다.
발톱이 빠지는 고통 속에서도 끈기와 노력으로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되었던 이봉주 선수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던져줍니다. 타고난 실력이 없음을 한탄하고 비관 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그에게서 시간을 자신을 위해 활용할 줄 아는 마법사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허비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그에게 '최고의 마라토너'라는 칭호는 당연했습니다.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음'을 그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가 부른 <나는 문제없어>는 실의에 빠져있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가'로 다가왔습니다. 경제난과 취업난에 탈출구조차 찾기 힘든 청춘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마라톤 코스를 달리듯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기를 바라는 그의 <무릎팍 도사> 출연은 감동이었습니다.
"저보다 재미있게 생긴 얼굴은 없죠"라며 자신을 희화화해서 웃음을 유발할 줄도 아는 그에게 인생은 마라톤처럼 힘들기만 했지만, 완주 후 돌아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성취감은 그를 넉넉하게 만들어준 듯합니다. 인생의 2부를 열게 될 그에게 그동안 열심히 달려올 수 있게 만들어준 '끈기와 노력'이 있기에 충분한 만족을 느끼는 삶이 될 듯합니다.
발톱이 빠지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시간의 마법사 이봉주를 통해 일상에 불만인 나를 발견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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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방송연예드라마스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천재와 싸워야만 했던 노력형 마라토너
이봉주는 42. 195km 마라톤 코스를 41번이나 완주한 엄청난 기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가 '무릎팍 도사'를 찾은 이유보다도 그가 살아왔던 인생이 의미 있었던 건 그는 천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 한국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이며, 올림픽 은메달 리스트이고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이기도 한 그가 철저한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짝발에 평발까지 가진 그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고등학생이 되어 마라토너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살았기에 달리는 것이 즐거웠다는 소년 이봉주는 단거리를 잘 뛰지도 못해 운동회에서 누구나 하나씩 가질 수 있었던 노트도 받지 못할 정도였다 합니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천재가 아니었기에 가능했었습니다. 자신이 모자란 선수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운동을 한 20년 동안 매일 아침 5시부터 400미터 트랙을 50바퀴에서 100바퀴씩 뛰는 일을 거른 적이 없다는 그의 끈기와 노력이 전설적인 선수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의 숙명의 라이벌이자 올림픽금메달 리스트인 황영조와는 고등학교 전국체전에서 처음 만났다 합니다. 자신이 운동을 시작하던 당시 유명인이었던 황영조는 타고난 폐활량을 부러워했던 이봉주는 타고난 신체적 조건을 탓하기 보다는 근면, 성실, 책임감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나갔습니다.
첫 만남과 대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로 시작된 그들의 라이벌 인생의 절정은 92 바로셀로나 올림픽이었습니다. 워낙 기록이 좋았던 이봉주가 금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무리한 운동으로 무릎을 다치게 되면서 국민 마라토너는 황영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봉주가 올림픽에서 뛰었다고 극적인 금메달을 걸었을 것이란 가정론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그에게는 아쉬운 순간이었을 듯합니다. 그렇게 힘들기만 했던 그에게 올림픽은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절치부심해 참여한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그는 무명의 선수와 겨우 3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치고 맙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선수의 질주에 금메달을 놓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에게 올림픽 금메달이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온 국민이 떼어 놓은 당상 이라 여겼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앞서 달리던 선수들이 쓰러지며 그는 우승은 고사하고 완주를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완주한 그에게 올림픽은 지독한 악운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 올림픽과는 달리 그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하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전국체전을 시작으로 마지막 은퇴 경기도 전국체전으로 마무리한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기록이 나아지지 않자 과감하게 떠나야 할 때를 알았다고 합니다.
숙명의 라이벌이었지만 자신의 부인을 소개해준 소중한 친구이기도 한 황영조. 그들은 대한민국 마라톤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우리시대 최고의 마라토너였습니다. 그의 마라토너로서의 인생은 그렇게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으로 끝이 났지만 그는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과 너무 닮은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는 노래 가사와 너무 닮은 자신의 삶이였기에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듯 했습니다.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이야
넘어지진 않을꺼야 나는 문제없어
짧은 하루에 몇번씩 같은 자리를 멤돌다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 곳을 잃어가고
내가 꿈꾸던 사랑도 언제나 같은 자리야
시계추처럼 흔들린 나의 어릴적 소망들도
그렇게 돌아보지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나에겐 가고 싶은 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꺼야 나는 문제없어
넘어지진 않을꺼야 나는 문제없어
짧은 하루에 몇번씩 같은 자리를 멤돌다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 곳을 잃어가고
내가 꿈꾸던 사랑도 언제나 같은 자리야
시계추처럼 흔들린 나의 어릴적 소망들도
그렇게 돌아보지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나에겐 가고 싶은 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꺼야 나는 문제없어
발톱이 빠지는 고통 속에서도 끈기와 노력으로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되었던 이봉주 선수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던져줍니다. 타고난 실력이 없음을 한탄하고 비관 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그에게서 시간을 자신을 위해 활용할 줄 아는 마법사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허비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그에게 '최고의 마라토너'라는 칭호는 당연했습니다.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음'을 그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가 부른 <나는 문제없어>는 실의에 빠져있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가'로 다가왔습니다. 경제난과 취업난에 탈출구조차 찾기 힘든 청춘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마라톤 코스를 달리듯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기를 바라는 그의 <무릎팍 도사> 출연은 감동이었습니다.
"저보다 재미있게 생긴 얼굴은 없죠"라며 자신을 희화화해서 웃음을 유발할 줄도 아는 그에게 인생은 마라톤처럼 힘들기만 했지만, 완주 후 돌아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성취감은 그를 넉넉하게 만들어준 듯합니다. 인생의 2부를 열게 될 그에게 그동안 열심히 달려올 수 있게 만들어준 '끈기와 노력'이 있기에 충분한 만족을 느끼는 삶이 될 듯합니다.
발톱이 빠지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시간의 마법사 이봉주를 통해 일상에 불만인 나를 발견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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