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미생> 14회는 섬뜩할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계약직 사원들의 힘겨운 일상들을 피해가지 않고 정공법으로 다룬 14회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이 아닌 서글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취직조차 어려운 현실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 속에서 오직 자신의 꿈과 열정을 착취당하는 우리의 현실을 <미생>은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욕심도 허락받아야 합니까;
대책 없는 희망과 무책임한 위로, 철옹성 같은 매뉴얼 속에서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르단 중고차 수출 건으로 단박에 스타가 되어버린 장그래. 새로운 해를 맞아 시무식을 가지며 자신들의 일이 종합상사에서는 일상적이라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뛰는 만큼 또 누군가도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 재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부인 것처럼 보이던 것도 조금만 벗어나보면 작은 부분임을 느끼게 된다는 장그래의 독백처럼 우리 인생은 그렇습니다. 자신이 최고인 듯 느껴지는 순간 주변을 돌아보거나 한 발 떨어져 자신을 바라보면 자신은 그저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미생>은 서럽고 아픈 이야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장그래라는 인물이 담고 있는 우리시대의 비정규직의 애환이 과하지도 않게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정규직과 계약직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미래가 담보되지 않은 계약직의 현실은 처참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단순히 설 선물로 햄과 식용유로 나뉘는 현실에 대한 서러움만이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이 지독한 현실은 끔찍할 정도로 두렵게 다가올 뿐이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계약직 사원의 현실을 <미생>은 너무나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고 사장에게까지 칭찬을 받았던 신입사원 장그래. 하지만 현실은 2년이라는 한정된 기한으로 제한된 계약직일 뿐이었습니다. 정규직들이라면 당연하게 하는 연봉협상도 장그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과급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성과급 이야기를 하고 내년 연봉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장그래는 그저 섬일 뿐이었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표현만으로도 부족한 장그래의 그 아픔과 설움은 모든 계약직들이 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홀로 떠 다니는 섬일 수밖에 없는 장그래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영업3팀의 동료들마저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힘이 되어줄 수 없었습니다.
천 과장마저 그래를 위로하는 모습은 답답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승화강'을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술을 끊겠다는 천 과장도 애둘러 표현을 할 뿐 비정규직인 장그래에게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장그래를 통해 간만에 일하는 맛을 보게 되었다는 표현으로 장그래를 위로하고 그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이 천 과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이기적이지 못해서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김 대리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장그래에 대해 그 누구보다 특별하게 생각하는 김 대리이지만, 회사가 만든 원칙을 일개 사원인 김 대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 말이지요.
평소대로만 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느냐는 장그래의 질문에 오 차장은 냉철하게 안 될 거라고 합니다. '취업우선순위'에서 장그래는 밀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답변은 장그래를 답답하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연한 희망을 주지 않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오 차장의 발언은 애정이 있기에 해줄 수 있는 발언이었습니다. "회사의 매뉴얼은 철옹성 같아 네가 끼어들 틈은 없을 것이다"는 오 차장의 그 말은 수십 번 고뇌이고 곱씹어서 뱉은 말이었습니다.
오 차장이 대리이던 시절 현재의 전무와 한 팀이 되어 열심히 일을 하던 그 시절에도 계약직의 설움은 그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똑똑하고 일 잘하던 계약직 이은지에게 오 차장은 각별했습니다. 고졸이 전부인 그녀에게 야간 대학을 다니라는 말도 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열정만 가득했던 과거 오 대리는 그렇게 자신의 열정처럼 그녀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오 대리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위기 상황에서 회사에서 내쳐진 것은 계약직인 이은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오 차장에게는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부하직원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렇게 버려둬야만 했던 현실. 책임을 지지도 못하면서 어설픈 희망만 주었던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깨달은 오 차장에게 회사는 너무나 지독하고 잔인할 뿐이었습니다.
"나도 사람이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성과급과 연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 홀로 떨어져 그들을 바라보던 장그래가 내뱉은 이 발언은 우리 시대 계약직 사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같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이 가해지는 현실은 섬뜩합니다.
재벌들의 주머니를 든든하게 해주기 위해 현 정부는 정규직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도 모자라 이제는 정규직이 회사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며 그들을 사용자 마음대로 해고 하도록 하겠다는 이 정부는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신을 든든한 산이 되어준 어머니. 설날 가족으로 포장된 폭력을 확인하는 자리에 어머니 홀로 두고 피해있던 장그래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급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장그래는 어머니의 진정한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에게 자신은 어머니의 자부심 그 자체였습니다.
욕심마저 거세된 현실. 욕심도 허락받아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 장그래는 오 차장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정규직 계약직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그게 아니라.. 그냥 계속 일을 하고 싶은 겁니다. 차장님하고. 과장님하고 대리님하고 우리 같이..계속..."이라는 장그래의 말에 오 차장이 아무런 답변도 할 수 없는 모습은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미생>에서는 특별함으로 다가옵니다. 항상 홀로 맞서 싸우며 살아야 했던 장그래에게 "우리"라는 단어가 던져주는 소속감은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그 우리라는 단어 속에 담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래서 너무나 적나라했습니다.
대책 없는 희망과 무책임한 위로를 하지 않겠다는 오 차장. 자신이 책임질 수도 없는 이 지독한 현실 속에서 장그래에게 현실을 바라보도록 해야만 하는 자신의 현실이 그 무엇보다 무겁고 아픈 오 차장은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두려울 정도로 잔인했던 비정규직의 이야기를 담아낸 <미생>은 그래서 위대했습니다. 어설픈 슈퍼맨 놀이가 아니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너무 적나라해서 특별했습니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묻는 자리에서마저 "계약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이 웃지 못 할 현실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재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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