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수목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 빈 하루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편성된 <사건번호 113>은 소위 땜방용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본이들이라면 천편일률적인 드라마의 틀을 깬 장르의 실험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획일화된 드라마의 틀을 벗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드라마였습니다.
사건번호 113;
틀을 깨는 흥미로운 전개, 드라마의 외연을 넓혔다
살인사건은 일어났는데, 살인범도 살인을 당한 피해자도 모두가 사라진 사건은 모두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사라진 은혜리의 오피스텔에서 피 흔적을 확인했지만, 사라진 이 남자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오르고 내리는 모습 속에 오피스텔에 들어가는 모습은 보였지만, 나오는 모습은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실종자 한동호. 죽은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는 이번 사건은 철저한 밀실범죄였습니다. 사건은 존재하고 현장도 밝혀졌지만 정작 살해당했다고 추정되는 피해자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사건은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 명의 유력한 피의자와 피해자. 과연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고 사건이 성립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오리무중입니다. 하나의 사건에 서로 다른 기억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검사 승주와 조폭이자 사채업자 아버지를 둔 형사 준석이 사건을 맡으며 밀실살인사건의 실체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단순히 실종되었다고 보였던 한동호가 은혜리의 오피스텔에서 죽었다는 확신을 가진 이들은, 실소유자인 강희경과 현장에 있었던 기준을 찾는데 집중합니다. 밀실살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었던 이들을 잡아 조사하는 것이 시작이니 말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도망쳤던 기준을 잡는데 성공하지만, 그는 자신이 방에서 나올 때 이미 한동준은 죽어있었다고 자백합니다.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그를 보고 두려워 도망을 쳤다는 기준과 이를 뒷받침하는 죽은 것으로 추측되는 한동준의 전화는 수사를 더욱 혼란스럽게만 합니다.
죽었다는 한동준이 자신의 전화로 기준과 혜리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은 실종으로 사건을 몰아가게 합니다. 사건은 있지만 실체가 보이지 않는 황당함 속에서 수사는 진척을 보이기 힘듭니다. 하지만 사건이 벌어진 곳에 증거가 없을 수는 없고,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살인은 벌어졌고 다만 그 사체를 어떻게 옮겨졌는지가 문제인 이 사건의 열쇠는 바로 혜리의 어머니인 의사 강희경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 전에 외과 의사였던 그녀가 자신의 딸과 함께 골프백을 들고 나서는 장면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외과의였다면 충분히 가능한 사체 운반. 그런 확신 속에 증거가 되는 사체를 찾아내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사체만 찾으면 살인사건은 성립되고, 그렇게 된다면 진범과 진실은 찾아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뭔가 숨기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 사체를 찾기 위한 승주와 준석은 결국 사체 찾기에 성공합니다. 의사인 강희경이 딸인 혜리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된 사건은 어긋난 모정이 만들어낸 사건이었습니다.
딸의 오피스텔에서 발견된 사체. 그리고 옷장에서 마약에 취해 쓰러져 있는 딸. 그 상황에서 어머니인 강희경이 할 수 있는 것은 딸을 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홀로 커야만 했던 딸. 고등학교 적응을 하지 못하던 딸이 미국 유학도 어려워했고, 자신과 함께 하는 삶도 버거워했습니다. 그렇게 독립해 살던 딸이 살인자라는 생각에 어머니인 강희경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딸을 보호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 법정에 선 어머니 강희경은 모든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합니다. 사건을 조작해서 스스로 살인자가 될 정도로 뒤틀어진 모정이 만든 사건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사건 이면에 숨겨진 충격적인 반전은 이 드라마를 봐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범생으로만 알려졌던 피해자가 사실은 잔인한 악마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은 충격이었습니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였던 한동호가 가해자로 알려진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파렴치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살인자가 된 강희경을 통해 검사인 승주는 자신의 어머니를 돌아보게 됩니다. 딸을 구하기 위해 딸에게 마약을 투여해 구하려던 어머니의 거친 모정은 어떤 식으로든 아이를 구하고 싶은 심정 뿐 이었습니다.
복잡하게 뒤틀린 듯한 사건의 실체는 더욱 거대한 실체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동창이었던 그들이 왜 이런 잔인한 상황에 처해야 했는지 되묻게 합니다. 모든 사건의 시작인 은혜리와 김미경의 동영상이었습니다.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은 결과적으로 김미경의 자살을 불렀고, 그 자살 사건 후 은혜리의 삶도 함께 망가졌습니다. 이 조작된 사건의 실체와 범인은 바로 이번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한동호였습니다.
학급 반장에 공부도 잘하던 그는 사실은 잔인한 가해자였습니다. 아이들을 폭행하고 왕따를 시키는 잔인한 존재였던 그는 자신의 폭행 사실을 담임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혜리와 미경을 레즈비언으로 만들어 왕따를 당하게 했습니다.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 미경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미경과 사귀고 있었던 기준이 당당하게 실체를 밝혔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경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한동호에 대한 분노는 극심하기만 했습니다. 학교 폭력은 그저 학창시철의 기억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가해자는 사회에 나와서도 그 잔인함을 더욱 심화시켜나갈 뿐이고, 피해자는 영원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 잔인한 현실을 담은 <사건번호 113>은 그래서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이렇게 잔인하게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폭력으로 시작된 사건은 모두를 파괴할 수밖에 없음을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번호 113>은 충격적인 반전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잔인한 학교 폭력에 대한 강렬함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장르의 실험도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아쉬움도 많이 묻어나 있던 <사건번호 113>이었지만, 충분히 장르를 정착하고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실험과 그 가치를 증명한 <사건번호 113>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했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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