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희도와 이진이 재회했다. 운명은 그렇게 수많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을 만들어낸다. 인위적이지 않은 우연은 그렇게 쌓여 운명을 만든다. 희도와 이진은 그렇게 운명과 같은 존재로 서로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진은 엄마를 피시방으로 데려가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하게 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얼굴은 볼 수 있지만, 말은 전할 수 없어 자판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토록 아버지를 그리워한 엄마로서는 소원을 푼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진이 그런 이유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 엄마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더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이진은 방송사 시험에 응했고, 수습기자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희도 어머니인 재경이 강력하게 주장한 학력 파괴로 인한 첫 수혜자가 이진이 되었다.
물론 노력이 만든 결과지만 대졸이 아닌 고졸로 처음 방송사 기자가 된 이진의 삶은 그렇게 정상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승완에게는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과 다른 그만의 취미가 있었다. 해적방송 DJ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진정한 인싸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진의 동생인 이현이 사연을 보냈고, 사과도 용기라는 말에 동생은 형이 서울행을 결심하자 사과 편지를 가방에 넣어 화해 요청을 했다. 좋아하는 음악 계속 듣고, 담배는 끊고, 더는 내 걱정하지 말고 형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동생의 응원은 이진에게도 힘이 되었다.
서울로 떠나기 전 이진은 엄마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해주는 사람과 평생 살았다며, 부도가 나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 되었지만 한 번도 아버지와 결혼을 후회해본 적 없다고 한다.
함께 있으면 나아지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게 성공한 삶이라는 말은 이진에게도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바로 희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보다 당당해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었다. 아직 수습이지만, 열심히 뛰어다니고 애견미용실에서 리포트를 하는 등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진이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이라는 점에서 급하게 찾아간 애견미용실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블록만 더 갔다면 너무 조용한 서점에서 안정된 리포트를 할 수 있었다. 인간의 삶은 정말 알 수 없다. 그리고 서점에 적힌 '풀 하우스 15권'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것은 희도였다.
외국에서 열린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동메달을 딴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에 기쁜 희도를 열심히 쳐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같은 펜싱 남자 국가대표 선수였다. 3학년이 되어 처음 학교에 온 희도는 승완과 만나 행복했다. 하지만 유림과도 한 반이라는 사실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유림만 바라보는 지웅은 희도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희도가 반가운 것이 아니라, 그가 왔으니 유림도 온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수학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지웅은 3번을 찍으라는 말을 하고 자신은 운동선수가 아니니 풀어야 한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지만, 찍은 희도와 유림보다 못한 점수를 받는 지웅이었다.
6개월 동안 국가대표로 함께 지냈지만 여전히 희도와 유림은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욱 나빠지고 있는 중이다. 희도가 들어온 이후로 유림은 항상 코치에게 혼나고 있다. 연습경기에서 매번 희도에게 지고 있으니 말이다.
협회나 코치 모두 유림에게만 집중하는 상황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희도에게 선 넘는 발언들까지 하는 유림이 싸우는 것은 당연했다. 그저 팬으로 남아있지 왜 국가대표가 되었냐고 막말을 하는 유림은 너무 나갔다.
머리채 잡고 싸울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은 가까워지기 어려워 보일 정도다. 유림이 느끼는 콤플렉스는 다양하다. 어린 시절 직접 대결했던 천재 희도에 대한 기억은 트라우마다. 그리고 잘 사는 희도와 달리, 여전히 가난한 유림은 그런 그가 너무 싫었다. 더욱 이진과도 가까운 그는 자신이 어렵게 쌓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존재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경주 아시안게임을 위해 재경은 찬미를 찾아가 해설위원을 맡아달라 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과거사가 드러났다. 기자와 선수로 친구처럼 지냈던 두 사람은 찬미가 뇌물을 받았다는 기사를 재경이 내보내며 싸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자로서 당연한 보도였다는 말과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았다는 찬미 사이의 갈등은 여전했지만, 희도는 두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수습기자들은 스포츠국에 배정받았고, 국장은 이진을 보자마자 아버지 회사를 언급하며, 몰락한 도련님이 기자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비아냥이라고 보기 어려운 팩트 폭행에도 이진은 단단한 모습이었다.
중계 선택을 위해 모인 방송 3사에게 우선순위가 있었다. 같은 날 펼쳐지는 한일 축구는 무조건 1순위다. 그리고 유도와 펜싱 결승을 나눠 중계하기 위한 자리에서 이진은 가위바위보에 져서 펜싱 결승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운명처럼 결정된 일이었다.
파업 현장을 찍는 선배를 돕던 이진은 건물 위에서 영상 스케치를 하다 희도를 발견했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갔지만 희도가 보이지 않는다. 시위자들에 끼어 있던 이진은 희도가 "백이진"이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시끄러워 그 무엇도 들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진이 희도의 목소리만 들린 것은 사랑의 힘이다.
감동적인 재회였지만 그 정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희도에게 더 다가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식사하러 같이 가자는 자리에 있는 남자를 향해 "남자 친구야"라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두 사람은 만난 지 3일 되었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희도를 바라보던 그 남자 펜싱 선수였다.
서로를 알콩 달콩이라 부르는 이들을 보는 이진은 황당했다. 갑작스럽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들의 행동을 성인이 보면 소꿉장난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풀 하우스'처럼 연애해보고 싶었다는 희도에게 연애하기 좋은 나이 열아홉이라는 이진은 그저 우습기만 했다.
차가 있으면 가져오라는 선배 말에 아버지가 사준 빨간 스포츠카를 가져온 이진을 보고 선배는 '몰락한 도련님' 티 낸다고 타박하지만, 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해 줬다. 펜싱 경기에서 나희도와 고유림은 결승에서 대결하게 되었다.
불편하고 재미있는 결승이 치러지게 된 상황에서도 코치는 여전히 유림의 편에 서 있다. 그게 못마땅한 희도는 그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게 희도의 성격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승전이 치러지는 날, 희도의 펜싱 가방이 바뀌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준결승에서 겨뤘던 일본 선수 가방과 바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가대표 코치는 그저 다른 사람 칼로 경기하라는 한심한 소리를 한다. 유림이 가방이 바뀌었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희도는 직접 가방을 바꾸려 기차로 서울로 향하는 일본 선수와 연락이 닿아 다음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코치는 직접 갈 생각도 없고, 다급하게 일본 선수를 만나 가방을 교환해 돌아오는 희도는 결승전에 지장 없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기차가 서행하며 도착시간이 늦춰졌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배 마중가라는 전화를 받은 이진은 역으로 향했다.
선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림 인터뷰를 하고 희도 사연을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열차가 바로 희도가 타고 있는 열차였기 때문에 역으로 향한 것이다. 정신없이 플랫폼에서 내려 뛰어오는 희도를 보자마자 그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이진을 보고 반가워하다 당황하는 선배를 뒤에 남기고 말이다.
스포츠카는 진가를 발휘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을 위해 통제한 길 역시 기자라는 직업과 국가대표인 희도의 결승전을 앞세워 열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경찰의 호위까지 받으며 경기장으로 향하는 희도와 이진은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희도는 이진을 알지 못했으면 어떻게 했냐고 걱정하지만, 몰랐어도 결과는 같다고 한다. 목적지가 같기 때문에 희도를 오늘 처음 봤어도 자신의 행동은 똑같았을 것이라는 이진은 분명 사랑 중이다. 우린 어떻게든 만났을 것이라는 이진의 말은 운명으로 엮였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엄마가 이야기해준 함께 있으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존재가 바로 희도이니 말이다.
경기장으로 향하며 인터뷰를 대신하고, 희도는 이진에게 누구 응원할 거냐고 묻는다. 당연히 자신을 응원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질문이었지만, 이진은 유림을 응원한다고 한다. "너에게는 알콩인지 달콩인지가 있으니까?"라는 말에 희도는 헤어졌다는 말로 대신했다.
2주 만에 헤어졌다는 말에 황당해하자, 그 정도면 많이 만났다는 희도는 이별이 해보고 싶어서 연애했다고 한다. 하지만 별거 아닌 이별이라는 희도에게 이진은 진짜 사랑해봐야 진짜 슬프다는 말에 희도는 그 지독한 슬픔을 떠올렸다.
이진이 자신이 선물한 펜싱칼을 돌려준 것을 보고 울던 자신의 모습이 진짜 슬픈 이별이라는 사실을 희도도 알게 되었다. "잘 모르겠어. 확실한 건 이길 거야"란 말을 남기고 경기장으로 가는 희도는 긴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마치 인생처럼 길게 이어진 그 길 어느 쯤에 아시안게임 결승전이 있었다. 까마득하게 이어진 길 어느 순간에 마주한 결승에서 희도는 따 보지 못한 금메달로 모든 것을 이룰까? 어쩌면 희도에게 금메달은 그저 하나의 요식행위일지도 모른다. 그게 목적은 아니니 말이다.
청춘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불문하고 동일하다. 시대 배경과 환경이 달라지며 그 방식이 조금씩 변할 뿐 청춘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달라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이 감정선을 극대화하면서도, 청춘들의 역경과 이를 이겨내는 과정들을 매력적인 대사들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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