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과 함께 했던 시간. 유령이 한세주에게 다가온 것은 숙명이었다. 그는 그렇게 세주에게 나타나 80년 동안 풀어내지 못한 한을 풀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모두 받친 그들의 삶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상.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함을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는 잘 보여주었다.
소멸이 아닌 영원한 봉인;
독립 운동에 대한 색다른 시각 제시했던 이야기의 힘, 친일파가 아닌 독립군의 나라여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을 버린 남자 신율.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현만은 지키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상자 하나가 전달되었다. 사망한 조총맹의 수장이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벗 서휘영이 자신에게 남긴 유서였다.
휘영은 율이에게 타자기와 회중시계, 그리고 완성하지 못한 소설을 완성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휘영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율은 서럽게 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가장 소중한 벗을 잃어야 했던 율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목 놓아 우는 것 외에는 없었다.
모진 고문을 당했던 수현은 풀려났다. 그녀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율이 때문이었다. 율이 아버지는 친일파다. 그만큼 일제 강점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 아버지의 힘을 이용해 수현을 도운 율.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수현을 살리기 위해 휘영과 조총맹까지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이는 당연했다.
어딘가로 떠나 편안하게 살라는 율의 부탁과 달리, 수현이 도착한 곳은 문이 닫힌 카르페디엠 앞이었다. 조총맹의 본거지이자 화려한 공간이었던 카르페디엠은 모든 것이 무너져있었다. 부모를 잃고 자신에게 사는 이유를 가르쳐준 그곳에서 수현이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오가 유령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태민은 자신이 사람을 치였다고 착각했다. 세주를 죽도록 방치하고 도망친 것도 문제지만 다른 사람까지 차로 치였다고 생각한 태민은 도주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앞에는 이미 형사가 도착해 있었다. 설이를 납치하도록 사주한 혐의로 긴급 체포가 되었다.
취조실에서 부모와 만난 태민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봉인되어 있던 악랄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태민. 그런 태민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어머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자신의 말에 순종적인 아들이라 확신했던 태민의 반항을 넘어선 폭주는 경악할 일이니 말이다.
문이 닫혔던 카르페디엠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경찰의 아지트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그렇게 조총맹을 일망타진하는데 일등공신이 된 허영민의 건배사가 이어지는 상황. 이 모든 것을 제압한 것은 바로 복면을 둘러 쓰고 '시카고 타자기'르 들고 등장한 수현이었다.
일본 간부들과 친일파들이 모든 카르페디엠에 '시카고 타자기' 총성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악랄함을 잃지 않은 허영민 역시 수현의 총에 무너졌다. 신출귀몰한 수현은 "조총맹의 강령으로 배신자를 처단한다"는 말과 함께 배신자들을 처단하기 시작했다.
조총맹을 팔아 넘겼던 소피아까지 제거한 상황에서 신문은 연일 대서특필하고 경찰들은 문제의 저격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율은 알고 있었다. 복수를 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말이다. 그렇게 율은 카르페디엠에서 수현을 기다린다. 자신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율은 그렇게 수현과 마주했다.
어린 수현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율. 그런 율을 자신이 처단해야 하는 현실이 수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걸었던 그를 자신이 처단해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온갖 감정들이 파고드는 순간 율은 수현의 총을 잡으며 집중하라 한다.
율이 비록 배신자가 되었지만 단 한 번도 조총맹의 일원이었음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벗 휘영. 그리고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모든 것을 무너트리게 만들었던 수현. 이 지독한 운명에 대해 변명할 필요도 없다고 느낀 율은 친일파 아버지의 후광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버렸다. 조국을 배신한 자가 되어 호위호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수현의 손에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고맙다는 율은 그렇게 타자기에 피를 흘리며 최후를 맞이했다. 휘영이 남긴 회중시계를 가지고 언덕에 오른 수현은 다시 자신을 찾아온 휘영과 마주한다. 매번 뜨거운 눈물만 바라보고 사라지는 휘영. 그의 옷깃을 잡으며 "같이 가자"는 수현은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수현이 가지고 있던 회중시계는 8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전설의 아버지에게 전달되었다. 우연히 발견한 회중시계는 어린 설이에게 전달되었고, 이는 전생의 기억을 깨어나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했다. 그렇게 그들의 완성하지 못한 삶은 80년이 지나 다시 시작되었다.
점점 커지는 균열로 인해 완전한 소멸을 앞둔 진오. 하지만 남겨진 이들은 그를 보낼 수 없었다. 세주가 고민해서 얻은 결론은 타자기에 머물렀듯 자신의 소설에 봉인시키는 방법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소설 속에 봉인되어 다시 재회할 수 있기를 바라는 세주의 마음은 애틋했다.
함께 낚시 여행을 간 세 남녀. 반드시 회생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진오와 오열하는 세주. 그런 세주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설. 비록 눈앞에서 사라진 진오지만 그가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소설은 세상에 나왔다. 그 소설 속에 진오는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팬 사인회를 마치고 단둘이 걷던 세주와 설. 다시 신발끈이 풀리고 이를 묶어주는 세주. 이 장면은 바로 진오가 했던 행동이었다. 설이를 여전히 사랑했던 진오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했던 행동이었다. 이제는 함께 할 수 없지만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는 상징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30년 대 카르페디엠으로 옮겨간 이야기는 평온한 한 때가 그려졌다. 소설을 탈고한 휘영과 그 소설을 읽으려는 수현. 책으로 나오면 읽으라며 원고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휘영과 뺏으려는 수현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뒤로 하고 율이 등장했다. 꿈을 꾸었다며 환하게 웃는 율은 둘이 조국이 독립된 후의 이야기를 해준다.
율의 손에는 2017년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 소중한 기억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그에게 남겨져 있다. 소설 속에 영원히 봉인된 진오의 모습은 그렇게 율이의 행복한 웃음 속에 각인되었다.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수많은 독립 투사들. 그들을 위한 헌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득했다.
친일파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 여전히 친일파 청산을 외쳐야 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시카고 타자기>는 다시 한 번 독립군과 친일파를 생각하게 한다. 나라를 팔아먹어서 여전히 행복한 그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가진 모든 것을 받친 독립군의 후손들은 피폐한 삶을 살아야 하는 말도 안 되는 현실.
적폐 청산이 왜 절실하고 필요한지 <시카고 타자기>는 유려한 이야기의 힘으로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있다.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는 절대 새로운 대한민국이 시작될 수 없음을 우리에게 다시 깨우치고 있다. 악당은 언제나 부지런하다. 자신들을 포장하고 지배하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꺼삐딴 리처럼 자신을 바꾸며 여전히 살아남은 자들은 돈 많은 자로, 그리고 권력을 가진 정치꾼으로, 교사와 교수로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런 자들이 이명박근혜 시절 세상에 자신들을 드러냈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이제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시간이 왔다.
<시카고 타자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완성도를 잃지 않았다. 유령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그 이야기의 힘은 강렬했다. 연기자들의 탄탄한 연기도 한 몫 했던 이 드라마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선 작품이었다.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만들었던 <시카고 타자기>는 영원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겨질 것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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