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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의 부재가 어떤 영향을 줄지는 이미 예측되었습니다. 그녀가 사라진 대성참도가의 남겨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가지게 됩니다. 서로를 혹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찾아보는 과정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신데렐라 언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들어서기 위한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이야기 한다
1.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찾은 강숙
힘들게 집으로 돌아온 효선과 강숙의 부재는 그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왜 그토록 엄마와 자신에게 집착을 보이는지 알 수 없는 은조는 차라리 자신을 쫓아내버려 달라고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효선이 건네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자신과 엄마 은조 사이에 아빠가 있고 준수가 있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냐는 그녀의 말 속에는 천륜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상기시키는 효선과 그런 아이 앞에서 날선 발톱만 내세웠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은조는 병이 난 효선에게 조금 더 다가가게 됩니다.
효선이 그들을 버리지 못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었지요. 병들어 치료하지 않으면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들을 버리지 못하고 치료하고 싶어 한 효선은 홀로 감당하기 벅차 자신이 병들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병든 효선을 돌보고 감싸는 병든 은조는 조금씩 효선처럼 치유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옛 친구의 식당에서 주방 아줌마로 일하는 강숙은 그 곳에서 자신과 은조의 과거를 되돌아봅니다. 조그마하고 허름한 식당에서 술손님들과 싸우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자라는 그집 딸을 보며 은조의 외로움과 아픔을 떠올리는 강숙은 그렇게 평생 가져보지 못했던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를 찾기 위해 나선 그들은 엄마가 걸었던 공중전화가 포항이라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향합니다. 기훈이 이야기를 하듯 '엄마 찾아 삼만 리' 같은 상황 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인지를 깨닫게 되는 특별한 여행이 되어갑니다.
그 누구보다 엄마를 잃고 싶지 않은 효선은 아픈 몸을 이끌고 엄마를 찾아 나섭니다. 포항 공중전화 근처를 이 잡듯 찾아다녀도 강숙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지친 효선을 이끌고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선 정우. 그곳에서 힘을 얻어가려던 생각이었지만 우연 같은 필연처럼 그곳은 강숙이 있던 식당이었지요.
아이들을 보고 도망가기에 바쁜 강숙과 그 집 딸이 보여준 강숙의 지갑을 알아본 효선은 힘들게 강숙과 함께 합니다. 함께 돌아가자는 효선의 바람과는 달리 자의가 아닌 타의로 돌아가 봐도 다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이해시키고 돌아갈 수 있을 때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뒤늦게 찾아온 은조는 엄마를 너무 잘 알기에 엄마의 변화를 믿지 않습니다. 평생을 자신이 봐왔던 엄마의 모습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지요. 반성을 하고 후회를 하는 여자가 아닌 그녀가 자신을 뒤돌아보고 부끄러움을 알아간다는 말 자체를 믿을 수 없습니다.
효선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은조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녀들이 살아왔던 삶이 이야기를 해주고 있지요.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았던 효선과 사랑을 부정하고 사랑을 거부하고 살아야만 했던 은조의 삶. 그 너무 다른 삶이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마저도 바꿔놓았습니다.
대성참도가에 닥친 마지막 위기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일순간 상쇄시켜버릴 수 있는 히든카드를 받은 기훈으로 인해 위기는 기회가 될 듯합니다. 홍조가의 본부장으로 근무했던 이의 폭로는 홍조가를 일순간에 무너트릴 수도 있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지요.
강숙이 친구 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겪는다면 기훈은 이 엄청난 자료를 통해 자신의 어둡고 힘겨웠던 과거를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화해와 사랑. 그 무한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그들이 과연 사랑을 이야기하고 노래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2. 기대라는 남자, 기대고 싶은 여자
평생을 날카로운 발톱만을 매만지며 살아야 했던 은조는 아빠를 알고부터 그 발톱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날카로운 발톱보다는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이 더욱 커다란 힘이라는 것을 은조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었습니다.
대성을 닮아 너무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효선. 그래서 힘들기만 한 효선이 아파합니다. 힘겨워합니다. 그냥 맘 편하게 자신들을 놔버리고 원망하고 비난하면 될 것을 이 바보 같은 아이는 자신을 품고 엄마를 품으며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 사랑을 위해 마지막 의식을 치르던 그녀는 가장 중요한 순간 죽어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엄마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새를 잃고 둥지로 어렵게 돌아온 작은 새처럼 효선은 은조에게 기댑니다.
기훈은 점점 뻔뻔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뻔뻔해지는 남자가 이상하게만 보이는 은조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의 과거와 집안 때문에 함부로 웃지도 은조를 품을 수도 없었던 기훈은 비로소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고맙고 행복합니다.
강숙을 찾아 포항으로 가던 그들은 차가 고장이 중간에 잠시 쉬어야 했습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힘겨워하는 은조를 차에 기댄 채 조금은 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기훈의 마음과 그런 기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은조의 팽팽한 기운은 버스에서 모든 것들이 무장해제 되어버립니다.
지쳐 잠든 은조를 자신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게 하는 기훈은 종착역에 도착 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잠든 은조를 위해 망부석처럼 앉아 있습니다. 오랜만의 길고 편안한 잠에서 깨어난 은조가 당황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잠든 은조가 편안하게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기훈의 마음은 그저 행복할 뿐입니다.
엄마를 찾아간 그 집에는 이미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만 들은 채 쫓겨납니다. 그렇게 엄마를 갈구하던 은조를 껴안으며 기훈은 자신의 과거를 처음으로 은조에게 이야기합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신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기훈입니다.
버림받는 게 두렵던 아이들은 그렇게 악착스럽게 엄마의 꽁무니라도 쫓고 싶었습니다. 죽어도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던 엄마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리자 아이는 자신이 버림 받은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 아픈 과거를 함께 건너온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은조에게 애증의 관계를 넘어선 동질감이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바로 기훈이었지요. 자신처럼 아픈 과거를 가진 이 남자는 자신을 안으며 자신과 닮은 자신의 이야기를 던집니다. 그렇게 그녀는 그 남자의 품에 안겨 아픔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녹여내기 시작했습니다.
3. 죽음의 무도가 아닌 사랑이 정답이다
죽음이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은 지독한 강박증에 시달립니다. 이 두려운 스트레스는 공포로 다가오고 그 두려움에 의해 지배되는 삶은 모든 것들을 무력하게 만들 뿐입니다. 지겹고 지독한 죽음을 부르는 공포에 염증을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보다 더한 치유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신데렐라 언니>의 등장인물들이 죽어야하는 이유들을 찾기도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합니다. 허망한 죽음이 모든 것들을 치유할 수 없음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죽음이 답이 아님을 연출자나 작가는 알고 있겠지요.
오늘 방송된 내용을 보면 <신데렐라 언니>는 죽음이 아닌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왔던 그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다투고 증오하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대명제 아래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해가는 과정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었던 대성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휘감고 있었던 죽음을 깨우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대성의 희생을 통해 모두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 죽음이 아닌 삶을 택해야만 하는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부재한 집안에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어린 준수였지요. 유치원에서 있을 행사에 엄마가 필요한 아이는 은조가 결코 할 수 없는 숙제를 안깁니다. 자신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아이. 사랑을 몰라서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몰랐던 은조에게 준수는 어려운 숙제 같은 존재입니다.
평생 해보지도 않았던 걸 그룹의 춤을 보며 따라하는 은조의 모습에서는 <신데렐라 언니>의 주제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 보였던 행동을 어린 동생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차갑고 날카롭기만 했던 은조가 조금씩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지요.
강숙 또한 친구 딸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과거 자신의 삶과 별반 다른 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와 은조와 닮은 어린 딸의 모습은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렇게 방치되고 버려진 채 사랑이 아닌 증오를 키우고 날카로운 발톱을 갈며 살도록 만든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이 그녀를 힘들게 하지만 강숙이 꼭 감내해야만 하는 중요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강숙이 그 공간을 떠날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 안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그들이 그리워지기를 기대하는 강숙은 조금씩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동경합니다. 모질고 힘겨운 삶을 살아온 사람일수록 정반대의 사람에게서 안정과 만족을 찾고는 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면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서 안정과 위로를 받습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다르지만 같은 아픔을 가지고 살아왔던 기훈과 은조가 그렇게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은조가 마지막 멘트를 통해 미친 듯 자신을 부르는 기훈에게 자신도 미쳤다며 다가가는 이유는 은조에게도 비로소 사랑이 찾아왔기 때문이지요.
이게 무슨 일인가 저 사람은 미쳤다. 왜 나를 저렇게 부르나. 지은 죄도 잊었나. 왜 저렇게 부르나. 웃는다. 미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도 미친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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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이야기 한다
1.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찾은 강숙
힘들게 집으로 돌아온 효선과 강숙의 부재는 그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왜 그토록 엄마와 자신에게 집착을 보이는지 알 수 없는 은조는 차라리 자신을 쫓아내버려 달라고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효선이 건네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자신과 엄마 은조 사이에 아빠가 있고 준수가 있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냐는 그녀의 말 속에는 천륜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상기시키는 효선과 그런 아이 앞에서 날선 발톱만 내세웠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은조는 병이 난 효선에게 조금 더 다가가게 됩니다.
효선이 그들을 버리지 못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었지요. 병들어 치료하지 않으면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들을 버리지 못하고 치료하고 싶어 한 효선은 홀로 감당하기 벅차 자신이 병들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병든 효선을 돌보고 감싸는 병든 은조는 조금씩 효선처럼 치유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옛 친구의 식당에서 주방 아줌마로 일하는 강숙은 그 곳에서 자신과 은조의 과거를 되돌아봅니다. 조그마하고 허름한 식당에서 술손님들과 싸우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자라는 그집 딸을 보며 은조의 외로움과 아픔을 떠올리는 강숙은 그렇게 평생 가져보지 못했던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를 찾기 위해 나선 그들은 엄마가 걸었던 공중전화가 포항이라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향합니다. 기훈이 이야기를 하듯 '엄마 찾아 삼만 리' 같은 상황 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인지를 깨닫게 되는 특별한 여행이 되어갑니다.
그 누구보다 엄마를 잃고 싶지 않은 효선은 아픈 몸을 이끌고 엄마를 찾아 나섭니다. 포항 공중전화 근처를 이 잡듯 찾아다녀도 강숙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지친 효선을 이끌고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선 정우. 그곳에서 힘을 얻어가려던 생각이었지만 우연 같은 필연처럼 그곳은 강숙이 있던 식당이었지요.
아이들을 보고 도망가기에 바쁜 강숙과 그 집 딸이 보여준 강숙의 지갑을 알아본 효선은 힘들게 강숙과 함께 합니다. 함께 돌아가자는 효선의 바람과는 달리 자의가 아닌 타의로 돌아가 봐도 다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이해시키고 돌아갈 수 있을 때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뒤늦게 찾아온 은조는 엄마를 너무 잘 알기에 엄마의 변화를 믿지 않습니다. 평생을 자신이 봐왔던 엄마의 모습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지요. 반성을 하고 후회를 하는 여자가 아닌 그녀가 자신을 뒤돌아보고 부끄러움을 알아간다는 말 자체를 믿을 수 없습니다.
효선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은조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녀들이 살아왔던 삶이 이야기를 해주고 있지요.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았던 효선과 사랑을 부정하고 사랑을 거부하고 살아야만 했던 은조의 삶. 그 너무 다른 삶이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마저도 바꿔놓았습니다.
대성참도가에 닥친 마지막 위기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일순간 상쇄시켜버릴 수 있는 히든카드를 받은 기훈으로 인해 위기는 기회가 될 듯합니다. 홍조가의 본부장으로 근무했던 이의 폭로는 홍조가를 일순간에 무너트릴 수도 있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지요.
강숙이 친구 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겪는다면 기훈은 이 엄청난 자료를 통해 자신의 어둡고 힘겨웠던 과거를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화해와 사랑. 그 무한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그들이 과연 사랑을 이야기하고 노래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2. 기대라는 남자, 기대고 싶은 여자
평생을 날카로운 발톱만을 매만지며 살아야 했던 은조는 아빠를 알고부터 그 발톱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날카로운 발톱보다는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이 더욱 커다란 힘이라는 것을 은조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었습니다.
대성을 닮아 너무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효선. 그래서 힘들기만 한 효선이 아파합니다. 힘겨워합니다. 그냥 맘 편하게 자신들을 놔버리고 원망하고 비난하면 될 것을 이 바보 같은 아이는 자신을 품고 엄마를 품으며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 사랑을 위해 마지막 의식을 치르던 그녀는 가장 중요한 순간 죽어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엄마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새를 잃고 둥지로 어렵게 돌아온 작은 새처럼 효선은 은조에게 기댑니다.
기훈은 점점 뻔뻔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뻔뻔해지는 남자가 이상하게만 보이는 은조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의 과거와 집안 때문에 함부로 웃지도 은조를 품을 수도 없었던 기훈은 비로소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고맙고 행복합니다.
강숙을 찾아 포항으로 가던 그들은 차가 고장이 중간에 잠시 쉬어야 했습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힘겨워하는 은조를 차에 기댄 채 조금은 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기훈의 마음과 그런 기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은조의 팽팽한 기운은 버스에서 모든 것들이 무장해제 되어버립니다.
지쳐 잠든 은조를 자신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게 하는 기훈은 종착역에 도착 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잠든 은조를 위해 망부석처럼 앉아 있습니다. 오랜만의 길고 편안한 잠에서 깨어난 은조가 당황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잠든 은조가 편안하게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기훈의 마음은 그저 행복할 뿐입니다.
엄마를 찾아간 그 집에는 이미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만 들은 채 쫓겨납니다. 그렇게 엄마를 갈구하던 은조를 껴안으며 기훈은 자신의 과거를 처음으로 은조에게 이야기합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신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기훈입니다.
버림받는 게 두렵던 아이들은 그렇게 악착스럽게 엄마의 꽁무니라도 쫓고 싶었습니다. 죽어도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던 엄마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리자 아이는 자신이 버림 받은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 아픈 과거를 함께 건너온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은조에게 애증의 관계를 넘어선 동질감이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바로 기훈이었지요. 자신처럼 아픈 과거를 가진 이 남자는 자신을 안으며 자신과 닮은 자신의 이야기를 던집니다. 그렇게 그녀는 그 남자의 품에 안겨 아픔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녹여내기 시작했습니다.
3. 죽음의 무도가 아닌 사랑이 정답이다
죽음이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은 지독한 강박증에 시달립니다. 이 두려운 스트레스는 공포로 다가오고 그 두려움에 의해 지배되는 삶은 모든 것들을 무력하게 만들 뿐입니다. 지겹고 지독한 죽음을 부르는 공포에 염증을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보다 더한 치유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신데렐라 언니>의 등장인물들이 죽어야하는 이유들을 찾기도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합니다. 허망한 죽음이 모든 것들을 치유할 수 없음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죽음이 답이 아님을 연출자나 작가는 알고 있겠지요.
오늘 방송된 내용을 보면 <신데렐라 언니>는 죽음이 아닌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왔던 그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다투고 증오하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대명제 아래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해가는 과정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었던 대성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휘감고 있었던 죽음을 깨우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대성의 희생을 통해 모두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 죽음이 아닌 삶을 택해야만 하는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부재한 집안에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어린 준수였지요. 유치원에서 있을 행사에 엄마가 필요한 아이는 은조가 결코 할 수 없는 숙제를 안깁니다. 자신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아이. 사랑을 몰라서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몰랐던 은조에게 준수는 어려운 숙제 같은 존재입니다.
평생 해보지도 않았던 걸 그룹의 춤을 보며 따라하는 은조의 모습에서는 <신데렐라 언니>의 주제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 보였던 행동을 어린 동생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차갑고 날카롭기만 했던 은조가 조금씩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지요.
강숙 또한 친구 딸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과거 자신의 삶과 별반 다른 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와 은조와 닮은 어린 딸의 모습은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렇게 방치되고 버려진 채 사랑이 아닌 증오를 키우고 날카로운 발톱을 갈며 살도록 만든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이 그녀를 힘들게 하지만 강숙이 꼭 감내해야만 하는 중요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강숙이 그 공간을 떠날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 안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그들이 그리워지기를 기대하는 강숙은 조금씩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동경합니다. 모질고 힘겨운 삶을 살아온 사람일수록 정반대의 사람에게서 안정과 만족을 찾고는 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면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서 안정과 위로를 받습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다르지만 같은 아픔을 가지고 살아왔던 기훈과 은조가 그렇게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은조가 마지막 멘트를 통해 미친 듯 자신을 부르는 기훈에게 자신도 미쳤다며 다가가는 이유는 은조에게도 비로소 사랑이 찾아왔기 때문이지요.
이게 무슨 일인가 저 사람은 미쳤다. 왜 나를 저렇게 부르나. 지은 죄도 잊었나. 왜 저렇게 부르나. 웃는다. 미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도 미친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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