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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신데렐라 언니 20회-드라마 마무리의 나쁜 예 보여준 신언니

by 자이미 2010.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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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작으로 기획되었던 <신데렐라 언니>가 끝이 났습니다. 동화 <신데렐라>를 기반으로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이 드라마는 초반의 폭발적인 매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한 채 표류하다 마무리에 급급한 모습으로 많은 아쉬움을 던져주었습니다.

동화를 해제하고 다시 동화를 꿈꾼다


1.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

우선 마지막 회 줄거리를 살펴보면, 은조와 기훈의 감미로웠던 첫 키스는 그들에게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대단한 행복이 아닌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은 그들의 꿈은 다시 한 번 위기를 만나게 되죠.

모든 것을 설명하고 새로운 시작하려던 그들 앞에 다가온 검찰 직원들로 인해 모든 상황은 새로운 변화를 꾀합니다. 함께 가 아닌 은조 홀로 던진 기훈에 대한 설명은 효선에게 오해를 만들고 그런 오해는 은조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효선에게 원죄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은조에게는 효선의 태도가 힘들기만 합니다. 
은조와 기훈의 발전된 관계를 알지 못하는 효선으로서는 당연히 기훈을 폄하하려는 것이란 오해 아닌 오해를 부르고 이런 효선의 마음을 알게 된 은조는 바보처럼 그들을 떠나버립니다. 정우가 자신이 어려울 때 언제든 찾아온다는 메모를 남기고 그렇게 훌쩍 떠나가듯 은조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맙니다.

기훈이 건넸지만 받지 못했던 편지와는 달리 효선이를 부탁한다는 편지를 기훈에게 남기고 떠난 은조는 그렇게 대성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대성도가를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던 그녀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정우의 행동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은조를 수소문해 찾아다니던 기훈과 효선은 비로소 은조와 기훈의 관계를 알게됩니다.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기훈의 은조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되고 형부로 받아들이는 효선은 그렇게 몇 달 전 사랑 때문에 떠났던 그들처럼 사랑이라는 이유로 기훈을 떠나보냅니다.

효모와 관련되어 발표된 논문 작성자가 은조가 아니지만 내용이 은조를 떠올린다는 효선의 말을 듣고 며칠 전 찾았던 연구실의 남자 은조가 거짓을 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한걸음에 달려가 은조를 만난 그들은 그렇게 다시 사랑을 갈구합니다.

대성도가는 과거보다 발전된 도가로 일어나고 감사패까지 받은 그들은 대성의 사무실에 들어서 자신들의 성과를 대성에게 전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해 그리웠던 효선은 은조에게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 효선을 보며 자신도 보고 싶었다는 은조는 처음으로 뜨겁게 포옹을 합니다.

그런 딸들을 바라보고 한없이 포근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들을 감싸는 대성의 모습은 동화로 시작해 동화를 버렸던 그들이 다시 동화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습니다.


2. 동화를 꿈꾼 드라마 우물에 빠지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과정에서 보여준 <신데렐라 언니>는 명품을 꿈꾸다 짝퉁으로 밝혀진 꼴이 되었습니다. 익히 알고 있는 동화를 재해석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은 초반 문근영의 악역 변신으로 주목을 받으며 수월하게 진행되었지요.

중반으로 넘어서면서도 대성도가에 갇힌 그들이 그 안에 벗어나지 못한 채 울기만 하더니 대성의 죽음이후 대성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발버둥 치던 그들은 결국 대성의 유령에게 잡혀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대성의 존재감이 상징하는 사랑이라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를 답답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신데렐라 언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화 속에서 못된 계모와 언니가 아닌 그들 역시 인간이고 그들에게도 사랑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전한 이 드라마는 의미 있었습니다. 사랑을 부정하는 강숙이 여러 과정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드라마의 핵심에 다가가는 과정이었기에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나타난 강숙은 거품을 모두 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대성의 빈자리를 메워나가기 시작하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랑이라는 가치가 던져줄 수 있는 근원적인 가치들이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사랑 없이 자라 거칠게 살아왔던 은조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느꼈던 아픔 그 아픔으로 인해 사랑은 더욱 지독한 갈증이 되고 이런 모든 갈증들을 풀어내는 방법 역시 사랑 이였다는 것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죠. 사랑이라는 존재를 가장 잘 알기에 사랑만을 갈구하던 효선은 마지막까지 사랑 전도사처럼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사랑이야기가 나쁠 리가 없습니다. 항간에 떠돌던 죽음의 퍼레이드나 파멸이 아닌 행복을 찾았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가치를 논하고자 했던 그들의 주제와 잘 연결되었기에 좋은 마무리였습니다. 문제는 행복한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고 재미없었던 이유는 결말을 의미 있게 끌어가기 위한 과정의 허술함 때문이었죠.

적이 존재하지만 힘없는 적만 있었던 <신데렐라 언니>는 맥없이 흘러가는 눈물 드라마였습니다. 악과 선이 공존한다는 것은 좋지만 그 악이 극단까지 치닫다 선으로 돌아섰을 때와 악인지 선인지가 모호한 지점에서 선을 선택하는 것은 감동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은조, 효선, 강숙이 악이자 선의 역할이었지만 그들의 그 선악 구분과 경계를 넘나드는 캐릭터는 중반을 넘어서기도 전에 실종되어버리고 사랑이라는 주제에만 집착한 채 표류해버리며 드라마의 재미를 놓쳐버렸습니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했지만 그들 간의 얼개들이 느슨해지며 대성도가에 사는 주인공들을 제외하고는 입체적으로 그려지지도 못했고 사건과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 채 행방도 알 수 없이 사라져버리는 허망한 드라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경직된 하나의 캐릭터만 강요한 <신데렐라 언니>는 가변적인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는 인물에게 드러나는 파탈은 이 드라마에서 존재하지 않은 채 그들이 가진 근원적인 캐릭터에 묶인 채 그 안에서 자신만을 이야기하고 있었죠.

동화를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던 그들은 동화를 움켜지고 우물로 빠져버렸습니다. 작가와 연출자가 먼저 우물을 찾아 들어가더니 연기자들마저 우물로 끌어들여버린 <신데렐라 언니>는 마치 우물 속으로 집단 자살이라도 하듯 모두 뛰어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물 안에서 아무리 큰 소리로 사랑을 외친다고 한 들 외부와 단절된 채 막힌 우물 속에서 맴돌기만 하는 메아리는 그들만을 위함이었습니다. 서둘러 마무리하기에 급급했던 <신데렐라 언니>는 몇몇 배우들에게는 의미있는 변화를 이끈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씁쓸한 드라마로 남겨졌습니다. 

용두사미로 그치며 철저하게 작품을 망쳐버린 작가와 연출자로 인해 <신데렐라 언니>에게 가졌던 행복했던 기억들도 모두 사라져버린 채 열심히 연기한 연기자들만 머쓱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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