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업체들이 자체 제작 비율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대성공 후 그에 대응하는 수많은 OTT들이 경쟁에 나섰지만, 결국 자체 영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 드라마의 위상가 가치가 증명되며, 각 OTT에서는 한국 작품들이 많이 선보이고, 선보일 예정입니다.
쿠팡플레이가 자체 제작한 '안나'가 지난 24일 금요일 오후 8시 첫 방송되었습니다. 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한 '안나'는 총 6부작으로 준비된 이 작품은 첫날 2회까지 공개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도입부 전체를 보여준 것은 이후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과 유미가 안나가 될 수밖에 없는 동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파격적인 인트로는 흥미를 유발합니다. 사고가 난 차량에서 내린 안나는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이런 상황에서 명품 가방에 불을 붙여 차를 태워버리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의문들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 다른 이가 타고 있었다면, 남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안나일까 하는 의문 말입니다.
1986년 어린 유미(수지)는 아버지가 하는 양복점에서 미군 장교 부부를 보게 됩니다. 외국어를 하는 낯선 이방인은 종이로 만들어진 건반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렇게 장교의 집에서 진짜 피아노를 치게 된 어린 유미는 행복했습니다.
아이가 없던 장교 아내는 유미를 자신의 딸처럼 아꼈죠. 함께 놀기도 하고,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는 그 순간들이 그들 모두에게는 행복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인 장교는 그런 아내에게 망상에 병적인 거짓말쟁이라고 폭언을 쏟아냈습니다.
근무지를 옮기며 떠나던 장교 부인은 유미에게 '포커페이스'를 강조했습니다. 어린 유미가 단어 뜻은 알았을지 모르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94년 유미는 발레를 그만두려다 경연 때까지 아빠를 졸라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미가 가난해서 돈이 없어 발레를 그만둔다고 소문낸 아이 때문이죠. 가난이 부끄러웠던 유미는 아빠에게 간청해 대회까지 나가고, 화려한 수상을 하고 마무리했습니다. 수능을 5개월 남긴 1999년에도 유미는 행복했습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유미에게 거칠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술에 대한 실력은 없었지만, 유미는 아름다운 게 좋았습니다. 그렇게 "내가 마음먹은 건 다 했어요"라는 말로 미대를 포기하라는 미술 교사에게 여유롭게 이야기하던 유미의 몰락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음악 교사와 사랑하게 된 유미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닥치자 교사는 유미를 배신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야반도주하듯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야만 했던 유미는 힘들게 전학을 하게 되지만, 모든 것들이 뒤틀려 버렸습니다.
전교 1등 하던 유미는 수능에 실패했고, 그런 유미에게 조심스럽게 시험에 대해 언급하는 아버지에게 유미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저 재수하고 내년에 그 학교에 입학하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내뱉은 거짓말이었지만, 같은 하숙집의 지원(박예영)까지 학교 후배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의도하지 않은 그 거짓말 하나가 점점 커지며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같은 하숙집 후배가 생겼다고 좋아한 지원으로 인해 교지편집부에 들어서며 가짜 대학생이 되었고, 연인도 사귀게 되었죠. 그렇게 그가 제안한 유학이 자신의 삶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부모가 유미가 가짜 대학생이란 것을 알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죠.
어렵게 다시 아버지에게 부탁해 비행기 티켓까지 끊었지만, 그의 삶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온갖 알바를 하며 버티던 유미에게 아버지의 부고는 다시 한번 그를 위기로 내몰았습니다. 암에 걸렸으면서도 외동딸에게 말도 못 했던 아버지.
어머니가 치매 초기라는 진단이 나왔음에도 강하게 내려오라는 말도 못 하던 아버지. 아버지 장부에는 딸에게 준 금액만 존재했습니다. 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딸을 위해 돈을 썼던 아버지는 그렇게 평생 희생만 하고 하늘로 떠나버렸습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유미는 '마레 갤러리'에 입사하게 되죠. 거창해 보이지만 작가의 딸이자 공동 대표인 현주(정은채)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몸종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4대 보험을 들어줬기 때문이죠.
말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치매까지 걸린 상황에서 보험은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을 하지만, 이들 집안의 모습은 기괴한 이질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 어려움이라는 것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살았던 현주는 어머니 말을 따라 의사와 결혼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다시 확장해갔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도 악의도 없는 현주의 행동들은 결국 유미가 안나가 되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보러 오라는 엄마의 문자에 유미는 대표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지만 모욕적일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바람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과 현주의 명품 옷까지 들고 나와버린 유미는 집에서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수어로 소통해야 하지만, 유미에게 엄마는 자신의 모든 것이기도 했습니다. 유미가 그곳에 있던 시간의 그의 거짓으로 꾸며진 세상을 세밀하게 포장할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최고급으로 꾸며진 집에서 온갖 돈 짓을 하던 이들 가족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유미는 그렇게 안나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안나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던 유미는 유일하게 의지하는 지원에게 전화하며 그의 삶은 지금까지 상상도 못 한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유미를 전혀 의심하지 않은 지원은 기자가 되어 있었고, 그의 소개로 학원 강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가짜 학력은 화려함으로 치장되었고, 원장이나 원생 모두를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경험이 없던 유미는 유학원과 다른 학원들을 찾아 상담을 받으며 얻은 지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죠.
홀로 미술사 공부까지 하며 만들어낸 유미의 능력은 실제 예일대 합격생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이름마저 유미에서 안나로 계명까지 한 그는 또 다른 인맥을 통해 대학으로 진출하게 되죠. 그렇게 눈덩이처럼 커진 그의 거짓말의 결과물은 IT벤처로 급부상한 최지훈(김준한)과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가짜 부모를 만들고 그렇게 돈 많은 지훈을 선택한 안나는 행복할까요? 자수성가한 지훈은 학력 콤플렉스가 심했고, 예일대를 나온 안나라는 사실에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끝없는 욕망을 위해 올라서기만 하던 안나는 남편의 인맥으로 실제 교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안나가 된 유미에게는 지원이 했던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가 중요해"라는 말이 방향타가 되었습니다. 수습이 힘들어지는 상황 속에서 안나는 과감하게 예일대 동문들 모임에도 나가기 시작하고, 정치에 꿈을 둔 남편의 장학생 시상식에서 수어 능력까지 발휘하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지훈으로서는 쓰임이 많은 아내가 좋았습니다. 그저 학력과 재력을 쫓았지만 얼굴까지 예쁜 안나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안나의 능력이 절실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어로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과정은 지훈에게 확신으로 다가왔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던 그날 안나는 다시 위기를 맞이합니다. 수능시험을 다섯 달 앞둔 그날 모든 것이 무너졌듯, 결혼과 교수 등으로 화려한 인생 역전을 한 안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진짜 안 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의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안나와 그의 삶을 카피한 안나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며 2부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리플리 증후군'을 다룬 작품들은 인간의 욕망에 집착합니다. 욕망이 클수록 상대의 거짓말에 속기 쉽죠. 그런 기괴함을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안나'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수지의 힘으로 끌어가는 초반 그의 동일한 톤의 대사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인간들의 욕망과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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