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인 '약한영웅 Class1(이하 약한영웅)'은 8부작으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새롭게 캐릭터를 해석해 재미를 더했습니다. 그리고 4부작씩 나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완성도를 더했습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앞서 '약한영웅'의 4부까지 이야기를 전했는데, 후반부는 연시은, 안수호, 오범석 이야기가 집중했습니다. 5회부터는 범석이 주동인물로 극을 이끄는 형식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주인공인 시은의 역할이 줄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단초가 되고 갈등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범석이라는 점은 흥미로웠습니다.
왜 범석이었을까? 를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잘 드러납니다. 범석은 유명한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를 위해 공개 입양한 아이입니다. 입양아를 키우는 아버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입양했지만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만 벌어져도 폭력이 일상이고, 윽박지르고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범석은 주눅 든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범석이 학교 생활이라고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기본적으로 악하지 못한 범석은 학교에서도 왕따와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은과 수호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왔지만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죠. 하지만 시은이 폭주하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당하던 위치에 있던 범석은 자신과 친한 이들이 악당들을 물리치는 과정이 통쾌했고, 그런 그들과 친구로 지내고 싶었습니다.
격투기 선수이기도 했던 수호의 완벽한 싸움 솜씨만이 아니라, 그저 공부만 하던 시은의 폭주는 범석에게도 피가 들끓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벽산고 일진이었던 전영빈과 그의 사촌 형인 석대만이 아니라, 가출팸 리더인 길수마저 무너트리는 과정을 함께 한 범석은 뭔가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범석의 마음과 달리, 무뚝뚝한 수호와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가출팸이었던 영이와는 친하게 지내면서 자신과 팔로우 해달라는 요구는 무시한 수호가 싫었습니다. 범석이 이런 생각을 마음을 가진 것은 수호가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범석의 변화가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작가나 제작진들이 무척이나 많은 관찰을 하고 심혈을 기울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범석이란 인물은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에 시달려왔던 피해자입니다. 그런 그를 가해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인간에 대한 관찰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범석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은과 수호를 정말 친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범석은 시은과는 갈등이 없습니다. 그가 무조건 좋아서는 아닙니다. 범석이 더 선호하고 친구로서 갈증을 느낀 존재는 수호였습니다. 항상 매 맞던 자신과 너무 달리 싸움 잘하는 수호와 절친이 되는 것은 범석이 꿀 수 있는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수호는 범석이 팔로워해달라는 말에 대답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출팸이었던 영이와는 팔로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하기 시작하죠. 시은과 영이도 팔로워를 했는데 자신만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더 큰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맞고, 일진들에게 맞을 때와 달리 수호에게 더욱 분노한 것은 그만큼 애정이 컸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은 일방적인 가해자일 뿐이지만, 수호는 자신과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증오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 피해만 당했던 범석은 자신이 당한 것처럼 수호를 가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돈으로 싸움꾼을 쓰고 그것도 모자라 수호가 아르바이트하는 오토바이까지 고장 내 부상을 입히는 등 온갖 악랄한 짓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억압했던 자들과 어울리며 우쭐해하는 범석의 변화 역시 씁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죠.
범석의 행동은 시청하기 불편함으로 다가옵니다. 왜 그래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위기를 넘기고 힘들게 살았던 범석도 새로운 친구를 만나 즐거운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이 컸으니 말이죠.
'약한영웅'은 그런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있는 그대로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하며, 폭력이 얼마나 인간을 파멸시키는지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범석이 폭력 피해자에서 스스로 폭력 가해자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은 이 드라마를 왜 봐야만 하는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지독한 폭력에 시달려 자포자기했던 범석이 친구이기 원했던 수호에게 폭력으로 집착하는 것은 그 폭력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두가 범석 같지는 않겠지만, 그 지독한 폭력 앞에서 외로웠던 범석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똑 같이 되갚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자신을 때린 자들에게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던 범석이 수호에게 집요할 정도로 집착한 것은 애증이었습니다. 친구라 믿었기 때문에 스스로 많은 것을 기대하고 그렇게 좌절한 그는 변했습니다.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누구에게라도 제대로 배웠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겠지만, 오직 폭력에 길들여진 범석은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일뿐이었습니다.
쓰러진 수호를 위해 시은이 보인 복수도 괜찮았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용인되기 어렵겠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준 시은의 복수는 응원을 보내며 볼 정도로 강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뛰어난 두뇌로 싸움마저 완벽하게 응용하는 시은은 수호를 위해 복수에 나섰습니다.
비열하게 수호를 이겼다고 좋아하던 자들에게 잔인한 응징을 가하는 시은의 행동은 분명 과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더욱 범석 아버지 앞에서 유리창을 깨며 교사들에게 분개하는 시은의 포효는 과하기보다 지독한 학교 시스템의 병폐를 파괴하는 시원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범석이는 강제 유학을 떠나고, 소년원에 보내겠다고 호언하던 범석이 아버지는 동영상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수호와 꿈에서 대화를 나눈 시은은 어렵게 서울 소재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죠. 다른 모든 학교는 범석 아버지가 막았고, 어렵게 간 그 학교는 말 그대로 엉망인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처음 가자마자 일진이 시비를 걸고, 그런 그를 보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언급한 시은은 바로 제거해 버렸죠. 그렇게 시즌2를 예고했습니다. 더 크고 강한 적과 마주하게 될 시은이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식물인간처럼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던 수호가 깨어나 시즌2에 시은과 함께 하기를 기대합니다.
뻔한 학교 폭력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보다 진지하게 폭력의 연대기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그리고 이를 이겨내는 것 역시 인간의 의지라는 것을 보여준 '약한영웅'은 매력적인 드라마였습니다. 약하지만 약하지 않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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