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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Netflix Wavve Tiving N OTT

파친코 8회-그들은 견뎌냈다, 생존한 선자들의 인터뷰로 시즌 마무리한 이유

by 자이미 2022.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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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회는 1938년에 시작해, 2021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노아가 일곱살이던 시절, 모자수는 돌잡이를 했고, 아버지 이삭은 군국주의에 맞서다 체포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지독한 세상에 남겨진 것은 엄마 선자였고, 그는 가족을 위해 견뎌냈습니다.

 

첫 시즌 마지막 이야기라는 점에서, 긴박한 변화들이 이어졌습니다. 요셉이 이름을 지어준 노아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모자수는 이제 막 돌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가족은 비록 가난하기는 했지만, 행복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잔인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평온했던 이들 가족의 모습은, 한순간 무너지기 시작했죠. 목사가 된 이삭은 초등학생인 이삭과 함께, 학교에 오가는 그 순간들을 즐겼습니다. 다정한 부자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였죠.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던 노아는, 친구에게 단단해지자 하지만, 홀로 남겨진 그 아이는 일본인들의 괴롭힘에, 안경까지 부러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장면이 등장한 것은, 이민진 작가가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바로 그 아이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죠.

   

자이니치라는 이유로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던, 친구의 선택은 이민진 작가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노아의 친구가 바로, 그 아이로 그려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항상 마중 나왔던 아버지가 오지 않아 당황한 노아와, 그런 아들을 보고 놀란 선자는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체포된 뒤였고, 경찰들이 백 목사를 체포하러 온 것을 보면, 밀정의 짓이란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계대전이 이어지고, 군국주의가 극으로 향해가는 상황에서, 일본 공산주의자들은 평화를 외치고 있었죠. 그리고 이삭은 아들이 살아갈 세상은 행복하기 바라며, 자존감없던 이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정치적인 행보가 아닌, 조선인들의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 바라는 이삭의 마음과, 군국주의에 맞서려는 하세가와는, 그렇게 보다 행복한 세상을 꿈꿨지만,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밀정들에 의해 숨어있던 이들까지 모두 체포되었으니 말이죠.

이삭은 선자와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하던 일을 함구했습니다. 청년 노동자를 통해 변화기 시작한 이삭은,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삭이 잡혀가며, 요셉까지 직장에서 쫓겨나고, 한순간 이들의 상황은 최악이 될 수밖에 없었죠.

 

하나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 말에, 엄마 에츠코는 서럽게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픈 손가락인 딸을 먼저 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죠. 하나는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좋은 학교를 나와도 그들처럼 될 수 없다던 하나는, 그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말라합니다. 그리고 다 밟아버리라는 하나의 이 말은 솔로몬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이 행동은 38년 홀로 학교에 가던, 노아에게 말을 건 한수에게서도 드러났습니다. 감성적인 이상주의자라는 한수의 이삭에 대한 평가는 정확했고, 그렇게 가족들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아빠와 함께 가던 학교를 홀로 가는 노아 앞에 등장한 한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노아는 자신과 아빠를 모두 아는 낯선 아저씨가 신기했고, 그런 노아에게 한수는, 아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 합니다. 그게 한수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아들 역시 그러기 바랐습니다. 그저 살아남는 것은 바퀴벌레도 가능하다며, 그게 전부가 아니라 실력을 쌓으라고 합니다.

 

내일부터는 지름길로 다니고,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라 합니다. 한수는 아들에게 바보처럼 살지 말라 합니다.이 말은 노아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가장 필요한 나이에 닥친 변화는, 이후 노아의 세계를 뒤틀리게 만들었던 듯 합니다.

벼랑에 몰린 선자는 엄마가 건넨 반지를 팔아 배추를 샀습니다.그렇게 김치를 담가 내가 팔기 시작하죠. 자신의 남성성이 도전받는 것에 대해 민감한 요셉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자, 두 아이 아버지가 갇힌 아내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 말이죠.

 

홀로 담근 김치를 가지고 시장으로 향하지만, 그를 반기는 이는 없었습니다. 냄새난다며 쫓아내기 바쁜 상황에서, 겨우 고기 파는 아저씨 옆에 자리를 잡은 선자는, 그들이 장사하는 방식을 유심히 살핍니다.

 

그들의 방식을 답습만 하지 않고, 앞장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호객하는 선자는 절박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위대했고, 그 강인함을 선자는 잘 보여주었죠. 자신이 아니면, 모두가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선자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모자수는 아들 솔로몬이 요시이와 어울리는 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그는 한수의 손자였고, 모자수는 한수 때문에 파친코 세계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한번 크게 무너지며, 죽을 위기까지 찾아왔지만, 어머니와 아내 때문에 살 수 있었다는 말은, 이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가족사를 엿보게 합니다.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솔로몬은 죽어가는 하나의 말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보다는,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편하게 살기 바라지만, 그렇다고 자식들이 그런 삶을 선택하지는 않죠.

 

솔로몬은 요시이와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하나가 이야기하듯, 그들은 절대 자신을 그들과 같은 존재로 보지 않음을, 솔로몬도 스스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해집니다.

한수 집안처럼,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면 됩니다. 요시이는 일본의 황금기가 곧 끝나가고, 그렇게 되면 부동산 거품이 꺼질 수밖에 없음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엄청난 돈이 들어간 톰과 아베의 사업을 요시이가 망쳐주기 바랐습니다.

 

금자의 땅을 사서 그들에게 빅엿을 먹이기 바라는 솔로몬은, 요시이가 그 땅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거라 자신합니다. 실제 요시이는 금자 집 앞에, 사나운 사냥개를 데리고 서 있는 야쿠자 같은 남자 하나로, 기겁하게 만들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직접적인 협박하지 않아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죠. 솔로몬이 그 땅을 사게 하려는 것은 결국 부동산 거품이 오기 전에, 금자에게 거액을 안기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솔로몬에게 금자는 할머니 선자와 같은 느낌이었을 듯하죠. 하나를 떠나보내고 힘겨워하는 손자에게 선자는, 한수가 사줬던 그 오래된 시계를 건넵니다. 자신의 가족을 살렸던 시계이기에, 너에게도 행운이 될 거라는 말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다음 시즌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에 대한 기대치이니 말이죠.

 

일제 강점기에 200만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그중 80만 이상은 강제 노역으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해방 후 많은 이들이 돌아갔지만, 60만은 일본에 남았고, 그들은 무국적자가 되었다는 문구는 강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녀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견뎌냈다’라는 문구는 ‘파친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38년 거리에 선 선자가 하늘을 보고,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89년 선자에 이어, 2021년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선자들의 인터뷰는 뭉클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할머니들 모두 극중 선자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서사가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1940년대 일본에 강제 징용된 이들이 모여 살던, 우토로 마을은 살아있는 역사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강제로 부려먹고, 일본은 삶의 터전에서 그들을 내쫓는 악랄함 속에서도, 그들은 가족을 지키며 견뎌왔습니다. 그 위대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강렬할 수밖에 없었죠.

 

드라마에서 빠져나와, 실제 극중 선자의 삶을 살아왔던 많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을 택한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허구가 아닌 실제 그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한국 이주민들의 삶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삶을 반추하며 이야기의 진정성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선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한 제작진들의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민진 작가는 서구 사회에 우리를 알리기 위해, 기독교라는 정서를 활용했습니다. 영화 ‘대부’와 비슷한 이주민의 삶을 반추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거대한 서사의 시작은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날치의 노래 역시 8회 처음 등장하며, 다음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했습니다.

 

오사카에서 김치를 직접 담아 팔며 가족을 지킨 선자의 모습은, 왜 드라마 마지막에 ‘이 이야기는 그녀들의 이야기다’라고 강조했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원작은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시작했고, 드라마는 마지막을 ‘그들은 견뎌냈다’로 합을 맞추며 마무리했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그들의 삶들이 모여 현재의 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뭉클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고, 엄혹한 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여정에 함께 고통스러웠습니다. 역사적 사건의 진실은 왜곡될 수 없음을, 이 드라마는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여덟 번의 이야기는 이제 마무리되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다음 시즌이 빨리 제작되기만을 기대해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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