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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참 좋은 시절 윤여정 이혼 옹호하는 아들 이서진을 이해하는 이유

by 자이미 2014.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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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이혼도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될 정도로 나이와 상관없이 이혼은 일상의 모습 중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주말드라마인 <참 좋은 시절>에서도 황혼 이혼을 하는 장소심의 모습은 특별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이혼을 적극적으로 앞장서 진행하겠다는 현직 검사인 동석의 행동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주제일 것입니다. 

 

이혼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

우리네 어머니의 모든 것을 담은 장소심의 이혼은 왜 큰 공감으로 이어질까?




집 나간 아버지가 돌아온 후 할아버지가 숨지고 본격적으로 다시 부인과 함께 살고자 하던 아버지인 강태섭은 의외의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첩이었던 동희의 친모인 영춘까지 몰아내고 이제는 부부로서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태섭 앞에 부인 소심이 내민 것은 이혼서류였습니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소심은 어렵게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이혼서류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담담하지만 흔들림 없이 이혼을 위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 소심은 이제 이혼과 같은 일을 할 이유가 안 보였습니다. 검사가 된 둘째 아들과 아직 자리를 잡지는 못했지만 연기자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첫째, 마음잡고 일 열심히 하는 막내와 사고 후 정신지체로 안타까워했던 딸 동옥이까지 모두 자신의 일을 하며 자리를 잡악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남은 여생은 편안하고 행복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녀가 사는 지역에서 소문난 맛 집도 운영하고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는 소심에게는 이혼할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과 며느리, 그리고 도련님들까지 모두가 형수와 엄마만 따르고 사랑하는 상황에서 그녀에게 근심 걱정은 존재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이런 행복 앞에서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했습니다.

 

바람둥인 남편은 아이들의 사고 보상금까지 들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집에는 병든 아버지와 쌍둥이 도련님들, 그리고 사고 후 똑똑했던 아이가 변해버린 이란성 쌍둥이 딸 동옥과 차갑기만 한 아들 동석과 손주. 이혼 한 큰 아들과 항상 사고만 치고 다니는 막내. 그리고 막내가 낳은 두 쌍둥이. 이 말도 안 되는 가족들을 장소심은 모두 책임지고 살아왔습니다.

 

 

 

남의 집 가정부 등 모든 일을 하면서 가족들을 책임져야만 했던 소심은 이것도 모자라 남편의 첩인 하영춘까지 받아들여 친동생처럼 챙긴 그녀는 살아있는 부처와 다름없었습니다. 첩과 그녀가 낳은 아들과 손주까지 편견 없이 받아 자신의 자식처럼 키운 그녀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정한 어머니였습니다. 그런 그녀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가족들이 소심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순한 형수도, 엄마도, 할머니도 아닌 소심은 가족 모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갑작스럽게 이혼을 선언한 것은 분명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몇 십 년 만에 돌아온 글의 형님이고 아버지인 태섭을 받아들인 소심을 위해 원앙금침까지 준비하며 부부가 다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과 달리, 소심은 이혼을 선언했습니다.

 

늦은 나이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소심은 결심했습니다. 그녀가 병상에 누운 남편을 살뜰하게 챙긴 이유는 새롭게 다시 해보자는 의미가 아니라, 마지막이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자신의 자식을 위해 부상을 당한 그를 보면서 이제는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평생을 오직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던 그녀는 이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자신은 사라지고 오직 가족을 위해 필요한 엄마라는 존재만 남아있었던 소심. 그런 엄마의 삶을 위해 자신의 소소한 행복과 기쁨마저 포기하고 살아왔던 소심은 뒤늦게 자신을 찾고 싶었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한 자신이 아니라 장소심 본인으로 단 하루라도 살고 싶은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가족들은 그런 소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삶. 자신들을 위해 모든 삶을 다해 살아왔던 어머니가 평생 자신들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곧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아버지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마지막 여생을 자신들과 사는 것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너무 고생한 어머니가 자식들과 함께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자식들의 마음도 이해 못할 것은 없습니다. 평생 고생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들의 마음을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그들 역시 평생을 고생한 어머니를 사랑하는 그들에게 이혼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소심의 마음을 이해한 것은 동석과 해원이었습니다. 쌍둥이 삼촌들이 병원까지 찾아가 형수의 현재 모습이 우울증이라고 한다며 병원 치료를 받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에 동석이 화를 낸 것은 당연했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한 그녀가 이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 왜 병이 될 수 있느냐는 동석의 모습은 그가 소심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정신병이 아니라 당연한 외침이었기 때문입니다. 칠십 평생을 오직 가족들만 위해 살아왔던 그녀가 모두 성장한 지금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 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생 처음으로 숨죽인 채 살아왔던 어머니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동안의 고통을 소리내어 밖으로 외치고 있는데 왜 가족들은 이를 몰라주고 아프다고,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해원 역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시어머니인 소심이 얼마나 고생하며 살아왔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가족들을 모두 건사하고, 그것도 모자라 해원과 그 언니인 해주까지 키웠었습니다. 물이 엄마도 동주 동원 엄마도 모두 자신들의 책임을 지기 싫어 떠난 엄마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삶을 위해 어린 아이들도 버리는 세상에 소심은 모든 가족들을 자신이 품고 키웠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가족을 지키고 살아왔던 그녀가 이제는 언제 갈지 모를 나이가 되어 처음으로 본연의 자신은 장소심이 되고 싶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동석은 아버지에게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를 거부하는 아버지와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이혼만은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 가족들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소심을 보며 동석은 자신이 직접 어머니의 이혼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들이 직접 나서서 어머니의 이혼을 준비하겠다는 선언은 의외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런 동석의 마음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우리의 어머니를 위함일 것입니다. 평생을 희생만 해왔던 어머니 장소심은 잊혀진, 혹은 잊고 싶었던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라는 지독할 정도로 무겁고 힘겨움 책임감을 늦은 나이에 벗어던지고, 자신을 찾고 어머니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장소심의 모습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평생 가족들의 보호막이 되어왔었던 우리의 어머니들. 그런 어머니들도 이제는 마음껏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할 권리도 자유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소심의 이혼 선언은 어쩌면 우리네 어머니들을 위한 항변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우리시대 어머니의 이름으로....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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