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함께 죽음은 이들 가족들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 몰락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 그들은 그게 끝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미군의 폭격이 점점 격해지는 그날 이삭은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했습니다.
쫓기듯 화장터에서 나선 선자와 가족들을 맞이한 것은 한수였습니다. 한수는 선자와 그의 아들 노아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위치로 얻은 정보는 유용했고, 선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오랜 시간 교도소에 갇혀 있던 이삭이 나올 수 있게 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일반적인 공습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저 언제나 그렇듯 피난처에 들어가 공습이 끝나기만 기다리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선자 가족을 태운 차량은 수많은 인파들을 헤쳐 나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은 탈출하는 그들에게 함께 할 수 있기 간청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경희 역시 선자처럼 남편 때문에 그곳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나가사키로 징용간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영원한 이별처럼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향에서부터 가져온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경희의 모습은 이 상황을 잘 보여줬습니다.
선자가 차안에서 잠이 들고 깰 정도로 멀리 이동한 그들을 맞이한 곳은 논밭이 가득한 외딴 마을이었습니다. 버려진 창고인지 집인지 모를 곳에 한수는 창호와 함께 지내라고 합니다. 이 말에 경희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외간 남자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경희의 이런 행동은 묘한 감정선의 격변이기도 합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곱게 자랐던 경희는 남편과 결혼 후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남편집도 알아주는 부잣집이었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낯선 곳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과 어울려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한국인들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죠. 더욱 악랄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범국 일본은 자신들이 침략한 국가의 국민들을 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한수의 말처럼 창호는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선자 가족들을 함부로 침범하거나 공격을 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수가 오는 날은 아이들이 즐거워했습니다. 언제나 신문물을 가져오니 말이죠. 오늘은 라디오와 연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한수가 노아에게 신문을 건넵니다. 그리고 읽으라는 말은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단순히 읽기가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것들을 발견하라는 말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라는 이야기였죠.
영특한 노아라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잘 알았습니다. 자신에게 대학을 가라고 했던 한국인임을 숨겼던 교사와 비슷한 느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교사가 폭격이 이어지던 날 책을 가득 안고 마치 좀비처럼 무표정하게 걷는 모습은 시대를 잘못 만난 서글픈 삶을 엿보는 듯했습니다.
노아를 바라보는 한수의 표정이 두려운 선자는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노아는 한수가 아버지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수는 절대 알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에게 노아는 자신의 아들입니다. 딸만 셋이 있는 한수에게는 자신이 이뤄놓은 모든 것을 물려받을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수는 선자의 불안과 달리, 노아 솔로몬과 함께 사온 연을 날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평화로워 보이던 순간 하늘을 가득하게 덮은 것은 미군 폭격기였습니다. 다급하게 피신하는 상황에서 경희의 불안을 알아챈 창호는 폭격기가 향하는 곳은 나가사키가 아니라고 안심시켜 줍니다.
1989년 오사카에 사는 선자는 마트에서 일본인 남성을 만나게 됩니다. 손자 솔로몬이 분노했던 그 마트에서 말을 건 카토(쿠니무라 준)는 마트 종업원이 잘못했고, 손자가 한 행동은 당연했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런 카토는 또래 할머니들에게 인기도 많습니다.
카토는 공원에서 비둘기에게 빵을 뜯어 주면서 선자를 발견하자 부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에게도 비둘기에게 먹이를 줘보라는 제안도 하죠. 탐욕스러운 비둘기를 수컷이라 말하는 선자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라고 이야기하는 카토의 대화 속에 그들이 살아온 삶의 굴곡들이 잘 드러납니다.
한없이 손자 걱정을 하는 선자는 전쟁을 겪은 자신보다 현재는 덜 힘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 선자에게 '어느 세대든 사는 건 쉽지 않다'는 카토는 과거 한수와 비슷한 존재로 다가옵니다. 선자의 현재를 깨트리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죠.
솔로몬은 아베를 망가트리기 위해 금자에게 집을 팔도록 했습니다. 금자 역시 솔로몬을 이해했습니다. 그 역시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재일교포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솔로몬이 계획한 아베에 대한 복수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해고시킨 톰을 찾은 솔로몬은 그에게 제안합니다. 솔로몬은 톰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잘 나갔던 톰이 일본으로 유배를 보내진 것은 의뢰인의 자산관리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톰은 반발했습니다. 한 사람만의 문제였고, 이로 인해 자신이 현재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솔로몬과 톰의 분노는 동일합니다. 자신을 무너트린 자는 시스템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분노 때문입니다. 톰이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 솔로몬에 톰은 손을 잡았습니다. 이런 그들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지도 기대됩니다.
폭격기를 목격한 후 선자는 노아에게 아버지를 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노아에게 아버지는 이삭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선자가 언급하는 아버지는 중의적일 수밖에 없죠. 당연히 이삭이 우선이지만, 진짜 아버지인 한수 역시 노아에게는 중요함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모자수는 누군가 달걀을 훔쳐가고 있다며 범인을 잡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 모자수에게 창호는 자신이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잠복해야 한다며 오늘 저녁을 먹고 가자하죠. 이 상황에 경희가 자신도 함께 하겠다고 나섭니다.
창호와 함께 사는 것이 불경하다고 했던 경희였지만, 그건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런 행동은 결국 자신이 무너질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났다는 징후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닭장 주변에서 범인을 찾기 위해 누워있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창호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가족이지만 창호는 낯선 인물이니 말이죠. 창호가 한수를 만난 것은 부둣가에서 일하면서였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은 농촌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그저 먹고 살 정도였지만, 일제의 만행에 의해 한순간에 가족은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싸움이나 하면서 살던 창호에게 손을 내민 것이 한수였고, 그렇게 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이런 창호의 사연을 드는 경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창호의 사연은 일본의 침략 후 망가져 간 한반도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라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대한제국이 무너졌다고 한국인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이들의 삶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궁금해집니다. 창호의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대담하게도 달걀 도둑들은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도망치던 아이들 중 하나를 잡았는데 그건 평소 노아를 학교에서 괴롭히던 애들 중 하나였습니다. 조센징이라며 조롱하던 이 자에게 제대로 복수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폭격을 피해 그 아이도 가족과 함께 피난을 왔고, 지독한 배고픔에 도둑질까지 한 것이죠.
노아는 이 아이에게 처벌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왔습니다. 어린 모자수는 제대로 복수를 하라고 하지만, 노아는 달랐습니다. "놔줘요"라는 말로 용서했습니다. 창호는 그 아이에게 훔쳐가려던 달걀까지 함께 들려 보냈습니다. 다들 나눠 먹으라며 말이죠.
모자수는 이런 형의 행동에 실망했지만, 창호는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어린 노아가 진짜 복수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때리거나 누군가에게 알리는 식으로 복수는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이런 용서가 그 아이게는 더는 노아에게 함부로 할 수 없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창호는 놀랐습니다.
아버지 한수를 닮은 노아의 이런 행동들은 과연 성장한 후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극 중 현재 시점 노아는 나오지 않고 모자수와 살고 있는 선자의 모습 속에서도 노아의 성장과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하게 합니다.
모자수의 아들인 솔로몬은 톰을 만난 후 나오미에게 말을 건넵니다. 자신이 사용하던 사무실을 쓰는 나오미에게 그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말을 하죠. 일본이란 나라는 여전히 여자에게는 유리천장이 단단하게 고정된 곳입니다.
89년 당시에는 그 벽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나오미는 미국처럼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최고가 되고 싶어 하지만, 일본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음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오미에게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솔로몬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에도 솔로몬에게 관심은 있었지만, 그 시기가 회사에서 쫓겨나던 시점과 연결되며 인연을 이어가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개선장군처럼 단단해진 솔로몬은 그 말투나 표정에서도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탄 솔로몬은 따라온 나오미는 그곳에 있던 다른 이들이 내린 후 저녁 같이 먹자고 먼저 제안합니다. 그런 나오미에게 데이트하는 것이냐며, 장소는 자신이 고른다고 제안합니다. 흔쾌하게 응하며 샤워하고 오겠다는 솔로몬에게 데이트임을 분명하게 하는 나오미의 행동 역시 명확했습니다.
솔로몬이 나오미와 첫 데이트를 하며 데려간 곳은 분위기 좋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나오미는 그런 곳을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솔로몬이 나오미를 데려간 곳은 포장마차 선술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야키토리 맛있게 하는 곳이라며 맥주를 시키는 솔로몬은 솔직했습니다.
현재 자신의 처지에서는 이곳이 잘 맞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행동은 나오미를 정말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꾸미기보다 솔직해지고는 합니다.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고, 그것에도 만족하면 상대는 결혼까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는 것이죠.
나오미도 솔로몬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그는 솔로몬에게 맥주잔을 건네며 함께 하는 것에 응하게 되었죠.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언급은 아무에게나 하지 않습니다. 그건 프러포즈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솔로몬과 나오미가 어떻게 연인으로 나아갈지 궁금해집니다.
창호와 함께 달걀 도둑을 잡은 경희는 그날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잠을 설친 그는 밖으로 나갔고, 그와 마찬가지로 잠들지 못한 창호를 보고 지나치는 경희와 함께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어떤 관계로 나아갈까요?
이삭의 죽음을 보고 경희는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남편 역시 징용으로 끌려간 상황에서 현재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남편 역시 이삭처럼 큰 병을 얻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죠. 그런 상황에 창호는 그 빈자리를 파고들었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그렇게 천둥 번개와 함께 찾아오는 것일까요?
파친코 시즌 2 3회는 선자와 경희, 솔로몬의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게 사랑으로 확장될지 아니면 친구로서 우정을 깊게 할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패망을 2달 앞둔 1945년 6월 천둥 번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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