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면서 드라마의 재미까지 취하는 <풍문으로 들었소>는 매력적이다. 현실이 그렇듯 드라마 속에서도 하자 투성이 총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치꾼들에 의해 통과된다. 한정호의 탈모치료와 맞바꾼 그들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고착화된 현실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은 절망을 넘어 파괴적이다.
탈모치료보다 못한 서민의 삶;
너무 적나라해서 불편하기까지 한 현실 풍자, 풍문 속 우리의 민낯이 드러난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한 한정호의 거대한 집. 그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균열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채워 넣을 수 없는 간극은 지독한 현실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 균열과 달리 서봄의 낡고 초라한 집은 힘겨움의 연속이지만 스스로 현실을 품고 미래를 개척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상이 거대한 부를 던지고 봄의 집으로 돌아온 후 드라마의 풍자는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대립각이 커질수록 내용은 풍성해질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과 견고한 갑의 세계를 더욱 강하게 만들려는 이들의 대결 구도는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다.
봄의 집 아침. 새벽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인상과 작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던 형식은 현실적 문제를 지적한다. 밤새서 알바를 하고 학교를 다녀도 제대로 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출산률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제도 보안 없이 그저 국민들을 탓하는 한심한 현실을 꼬집는 모습은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한정호의 사무실. 민주영과 이야기를 하던 정호는 우리 현실은 형식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지적하고 있다. "계몽하라. 더 깊은 잠에 빠지게 하라"는 정호의 이야기는 섬뜩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은 이 한 문장에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위장전입, 병역 등 수많은 비리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존재해도 이제는 누구도 그런 그들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한다. 그들은 이제 그런 그들마저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은 명확하다. 실제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비리범들이 아무렇지도 않고 고위공직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드라마 속 한정호의 비아냥은 너무 직설적이고 명확해서 민망해질 정도다.
얄팍한 지식 교양에 빠진 애들이 다 그렇게 자고 있다는 한정호의 지적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위장전입만으로도 난리가 나던 시절은 사라지고 부동산에 군대 문제까지도 넘어가게 된 현실은 누가 만든 결과일까? 막가는 1%의 행동을 분노가 아닌 선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실이 완전히 붕괴되기 직전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한정호 옆에 서서 을들을 공격하는 을인 양 비서와 그런 그녀와 대립하며 대항하는 민주영의 대결 구도 역시 흥미롭다. 실제 우리 현실 속에서도 갑들 곁에서 그들을 옹호하고 보필하며 호의호식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이들이 흔하기 때문이다.
"최고로 지원받으면서 자라는 것도 남다른 행운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잘 자랄 수 있도록 아버님 같은 분이 힘을 제대로 쓰셔서 제도를 만들어 달라"
"부자 할아버지가 없는 애들도 다 같이 잘 클 수 있게 해 달라. 사람은 뭘 해주면 베풀었다고 생각하지만 제도는 그렇지 않다"
진영이 있는 어린이 집을 갑자기 찾아온 정호와 마주친 봄. 그런 봄에게 이야기를 하자며 할아버지가 왔는데 진영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나무라는 정호. 그런 정호에게 부자 할아버지가 없는 애들도 다 잘 클 수 있게 만들어 달라 한다. 사람이 뭘 해주면 베풀었다는 생각이 아니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봄의 발언은 명확했다.
힘을 가진 자들이 그 힘을 제대로 써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봄의 발언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봄에게 정호가 분노하며 던진 망상 발언 역시 우리 시대 권력을 가진 자들이 행하는 일반적인 발언의 수위다. "무슨 망상이냐. 내가 생색을 낸다는 것이냐. 망상은 전염병보다 무서우니 증세가 심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한정호의 발언은 현실을 지배한다고 자처하는 자들의 인식이다.
비리 백화점인 총리 후보를 야당 후보들까지 거들며 통과시킨 현실. 이 견고하고 잔인한 현실은 쉽게 변할 수는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송재원의 발언 역시 아프게 다가온다. 범죄 사실이 명확한 존재임에도 그는 해외로 도망도 가지 않고 국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것은 그 역시 상위 1%이기 때문이다.
송재원이 한정호의 분노를 누그러트린 것은 하나다. 탈모가 시작되는 것 같아 안절부절 못하던 그에게 모발 이식의 권위자이자 무통 수술의 권위자를 소개해주고 모든 것을 털어버렸다. 범죄 사실이 명확한 현실 속에서 그저 자신의 모발 이식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눈감아주는 게 그들의 논리다.
통화하던 제훈에게 "용쓰지 말고 좋게 살자"라는 송재원의 제안은 우리 사회에 망상처럼 전염되고 있는 저주의 발언이다. 그저 권력자들이 던져주는 작은 쿠키 조각이나 받아먹으며 그들의 종노릇을 하는 게 편하다는 논리는 절묘하게 포장된 채 우리 사회에 강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너무 적나라해서 무서울 정도의 풍자는 그래서 섬뜩한 분노를 느끼게 한다.
인상과 봄을 가르치던 박 선생은 제훈과 신영의 사무실 사무장을 자처했다. 박 선생과 결혼을 결심한 이 비서 역시 사표를 낸다. 박 집사와 정순 역시 한정호의 집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한정호의 거대한 성에서 엑소더스를 꿈꾸는 이들은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한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 정부에서 총리는 어쩌면 이렇게 최악의 존재들만 모을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부도덕한 존재들만 가득하다. 새로운 총리 인준을 앞둔 현실 속에서 <풍문으로 들었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낸 상황은 실제 현실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총리 후보가 단 5일 일하고 1억 2천만 원을 받은 것을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현실은 참 당황스럽다. 수많은 비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 속에서 황 총리 후보 역시 모두가 알고 있듯 통과될 것이다. 정치꾼들은 드라마 속에서 풍자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타파에 의해 지난 해 불법해외계좌가 폭로되었다. 정치인과 기업인 등 사회 저명인사들이 수없이 나온 현실 속에서도 몇몇 희생양을 제외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많은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거대한 한송과 맞서 변호사 2명이 전부인 제훈과 신영이 마지막까지 그들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견고하게 구축된 갑들의 세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혁명이 일어나 세상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현재의 견고함이 바뀌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소수이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이 모인다면 그 견고해 보이기만 하는 갑들의 세계도 바꿀 수도 있음을 드라마는 이야기하고 있다.
한정호가 침대 위에서 연희에게 "새머리들이라 그러다 만다"는 발언은 갑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진실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을들을 폄하하는 그들의 논리 속에는 대중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인상이 힘들게 을의 삶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 아침 식탁에서 사회 변화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봄의 엄마인 진애가 던진 "그런 날이 올까 몰라"는 참 아프지만 너무나 확고하게 다가온다.
갑들의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류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힘의 불균형은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문제는 천민자본주의가 일상이 되고,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본주의는 철저하게 갑과 을을 구분하고 명료하게 만들었다. 돈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인간은 하나의 도구에 머물게 되고, 그런 돈을 쥔 권력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거대한 돈을 바탕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고착화하려 한다.
정치권력마저 집어삼킨 돈 권력. 그 자본의 힘은 이제 고착화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무기가 되어 자본에서 소외된 이들을 더욱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부조리는 결국 제훈과 함께 손을 잡은 소수의 사람들과 그 잘못된 현실을 자각한 소수의 외침에서부터 바로잡기는 시작될 것이다.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역시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이런 외침이 곧 모든 것을 바로잡게 하는 시작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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