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풍문으로 들었소 30회-열린 결말에 담긴 강렬한 메시지를 주목하라

by 자이미 2015. 6. 3.
반응형

준비된 30개의 이야기가 끝났다. 풍문으로 들린 갑들의 세계를 슬며시 엿본 서른 번의 경험은 흥미로웠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대입해 두 집안의 이야기로 풀어낸 <풍문으로 들었소>는 진정한 블랙 코미디의 재미를 만끽하게 했다. 마지막 결론을 열린 형식을 취하며 보다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결국 공은 다시 청년에게;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변화를 위한 연대다

 

 

 

한송에 있던 민주영은 사표를 낸 후 한정호에게 한 마디 던졌다. 인상은 돌아가지 않다고,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을 살 것이라고. 이 발언이 중요한 것은 <풍문으로 들었소>가 보이고자 했던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부조리를 대물림하는 현실 속에서 단절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담겨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힌 한정호는 자신이 세운 세계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존재다. 실제 그가 일군 엄청난 성공과 성취는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가치다.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의 손 안에 쥔 존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성취가 모든 것을 좌우할 수는 없다. 부당함마저 합리화하며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얻은 성취만으로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인상과 봄을 가르치던 박 선생은 제훈과 신영의 사무실 사무장이 되었다. 최고의 인강 스타였던 그는 그들을 통해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달라진 현실 속에서 그들은 인상과 봄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둘이 다른 생각하지 않고 사시 공부를 할 수 있는 독지가를 자처했다. 엄청나게 번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이며 매력적인 변화는 어쩌면 우리 사회를 보다 밝게 만드는 이유가 될 것이다.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진 후 인상과 봄은 정호의 집을 찾았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자립하기 위한 첫 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 선생의 도움으로 사시를 시작한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정호의 집을 찾았다. 박 선생을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그들은 세 가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상속을 포기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시에 떨어져도 로스쿨을 간다. 마지막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다고 해도 '한송' 같은 곳에 가지 않는 다란 확실한 조건들이다. 자본에서 독립하지 않는 한 부조리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제안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호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가 가진 권력에 기생하는 존재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실 속 캥거루족들이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부모의 자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춘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자본에서 자립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지가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선생의 제안과 이를 받아들인 인상의 선택은 중요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거대한 부와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고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건강하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만히만 있으면 거대한 부와 권력이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는 현실 속에서 이런 선택은 판타지에 가까울 수 있다. 그 지독한 변신 속에서 드라마는 을들이 진짜 힘을 가지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정호와 최연희의 집에서 일하던 이들은 모두 나와 함께 산다. 뛰어난 요리 솜씨를 가진 정순과 집사는 도시락 전문점을 준비하고, 민주영은 시골집으로 내려가 철식과 함께 농사를 업으로 살고 있다. 정순의 도시락 식자재를 전해주며 여전히 연을 이어가는 그들은 끈끈함으로 연대하고 있다.

 

정순과 선숙은 한 집에서 살고, 그 집의 다른 층에는 인상과 봄의 공부방이 있다. 다세대 주택에 모인 그들은 봄 가족과는 또 다른 가족과 같은 모습으로 어울려 산다. 서로를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는 진짜 이웃이 된 그들은 행복하다. 그런 든든한 행복과 달리, 정호에게 토사구팽을 당해버린 양 비서의 현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정호의 모든 비리를 알고 있는 양 비서가 제훈과 신영이 운영하는 공익단체에 합류해 '한송'을 공격해 무너트리면 심리적으로 후련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선택도 강요하지 않고 할 수 없는 현실이 더 큰 완성도로 다가왔다. 현실적으로 이런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은 양 비서의 모습은 현실적이어서 반갑다.

 

소정의 아들 민재는 제훈과 신영의 사무실에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이지는 현수와 함께 유학길에 오른다. 이들 모두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현수가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이유는 그래야만 진짜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각자의 목표는 다르지만 그들은 그렇게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공허함을 달래지 못하는 연희는 여행을 떠난다. 거대한 성과 같은 집을 떠나고 싶어 했던 연희가 여행이 끝난 후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모두가 바뀐 상황에서 봄의 엄마인 진애는 연희를 찾았고, 그녀는 그날 콧노래를 부르며 흥겨워했다 한다. 사람이 그리운 것은 모든 것을 가진 자들에게도 동일한 그리움일 뿐이었다.

 

부모세대와는 다른 선택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바로잡는 것은 청춘의 사명이다. 한겨레신문 사설에 실린 정태인의 글은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차라리 혁명을 준비 하렴'이라는 다소 과격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글 속에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던지는 사과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방법을 찾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글은 슬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는 점에서 서글프기까지 했다.

 

 

"내가 길에서 배운 건,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 우리의 생은 너무 짧은데 한 것도 없이 벌써 지치면 안 된다는 거, 친구들과 연대해서 우리가 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거다" 

 

이길보라 다큐멘터리 감독의 길에서 배운 인생은 흥미롭다. 장애를 가진 부모에서 태어나 힘든 시간도 가져야 했던 이길보라 감독은 스스로 거리에 나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화면에 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끝에는 지치지 말고 연대해 우리가 살아갈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자는 의지로 귀결된다.

 

재미있게도 <풍문으로 들었소> 역시 이길보라 감독의 생각과 유사하다. 이는 이 둘만의 공통점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절대 조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방식만 다를 뿐 전 세계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새로운 세대는 이렇게 세상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암울하게도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올가미>처럼 사육당한 채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도록 강제된 세상을 살고 있다.

 

자기 결정권이 사라진 세대. 그런 세대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에 발을 내미는 그들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인상과 봄은 전에 봤던 시험보다 10점이나 올랐다. 언제나처럼 봄의 집에 모인 그들은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며 행복해 한다. 그 시간 거대한 성에 홀로 들어가는 정호의 뒷모습은 암울할 정도로 서글퍼 보인다.

 

 

정호는 외형적으로 잃은 게 없다. 자식들이 떠난 것이 가장 큰 불만요소이지만 한정호의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강력하기만 하다. 그가 세운 거대한 권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만 영원할 수도 없음은 분명하다. 인상과 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협동조합처럼 모여 사는 이들의 삶도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이런 변화가 곧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을이 갑에 대항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바로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보여준 연대다. 자본의 속박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립하고, 비슷한 처지의 그들이 모여 연대의식을 키우고 협동조합을 구축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사회적 힘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열린 형식이 반갑다.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기성세대가 아닌 청춘의 몫이다. 스스로 자립하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는 메시지에 주목해야만 한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