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의한 힘을 위한 힘의 논리. 명료한 세계관을 설파하던 경태가 인상과 봄에게 했던 교육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오직 힘을 가진 자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간단명료하게 증명한 '명료한 세계관' 교육은 어쩌면 시청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한정호의 탈모 집착;
갑과 을은 세분화되어 있고 그 모든 것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칙이 있다
인상의 한 마디는 잠잠하던 정호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한계를 넘어선 정호는 자신의 집에서 분노로 인해 모든 이들과 뒤엉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고 말았습니다. 엉망진창이 되어 상처만 입은 채 우호적인 관계 구축을 위한 시도가 무너진 후 두 집안은 갑과 을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기둥에 끼인 채 고통을 호소하던 정호와 형식, 그리고 뒤엉킨 상황에서 이들의 민낯은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가는 형식에게 실리를 찾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정호의 비서실장인 태우의 발언은 봄이 부모를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노비나 다름없다는 형식의 태우에 대한 발언은 그들이 느끼고 있지만, 표현해서는 안 되는 금기를 깨트리는 발언들은 <풍문으로 들었소>의 본질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살얼음처럼 미묘했던 관계 속에서 정호의 분노를 시작으로 모든 관계들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격식과 체면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들이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친해지거나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극은 더욱 흥미롭게 이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장렬한 상황이 종료된 후 인상과 봄이를 불러 상황을 정리하는 정호와 연희는 시부모의 위엄과 갑질을 동시에 갖춘 충고가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갑질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봄이가 택한 전략입니다. 순수하게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봄이가 선택한 것은 그 안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가르쳐달라는 봄이의 발언은 정호와 연희를 짐짓 당황하게 만들었고, 이는 다시 한 번 힘의 논리가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존중과 이해 아량도 필요 없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사돈을 적으로 삼아 굴복시키겠다는 정호의 선택은 진정한 갑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이용해 을인 봄이 가족들을 무너트리고 길들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봄이 부모는 로펌에서 정리하고 집안에서 아이들 교육은 경태에게 일임한 정호는 두 진지를 공략하기 위한 전술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쟁 통에 그에게는 정말 큰 위험이 가장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정호와 과거 결혼 이야기까지 오고갔었던 지영라와의 관계가 부인인 연희를 분노하게 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해왔던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표면 위에서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 위에 군림하고 있던 영라에게 복수라도 하듯 재계 2위인 대승그룹 장회장을 변호하면서 자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살짝 드러내기 시작하는 정호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갑과 갑 사이에도 미묘한 균열과 우위는 존재하고, 그런 관계들은 수시로 재편성되기도 합니다. 이 상황에서 상대가 위기에 빠지면 구원투수로 등장해 그들을 돕고 그들 위에 군림하는 갑이 되는 한정호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로펌의 수장으로서 수많은 갑들의 약점을 쥐고 있는 한정호는 진정한 갑중의 갑이었기 때문입니다.
정호는 이번 기회에 과거 자신을 쥐고 흔들었던 지영라를 곤궁에 빠트려 갑이 누구인지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통해 그들의 모든 약점을 쥐어 영원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은 명확하게 들어맞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의 갑에 올라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초라한 을이라는 사실을 정호는 침실에서 확인합니다.
영라와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던 연희는 확신을 가지고 정호와의 관계를 추궁하고, 이 과정에서 자존심 상하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상한 연희가 선택한 갑질은 바로 남편인 정호에게 침실에서 추방하는 일이었습니다. 부부 중 하나가 침실에서 쫓겨나는 것은 완패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정호는 연희에게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호와 연희의 이런 갈등은 인상과 봄이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와서 어려움 없이 살아왔던 인상. 그런 인상과 달리 항상 가난이라는 꼬리표에 휩싸인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봄이는 달랐습니다.
정호의 지적도 마음에 쓰였지만 가난한 자신의 집안이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그녀의 궁금증을 극대화시켜 갔습니다. 정호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강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가정교사인 경태가 진행하는 '명료한 세계관'은 봄이에게 더욱 강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그리고 힘이 있는 곳에 윤리가 있다는 말 속에 봄이의 궁금증은 더욱 크게 자리하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이고 힘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가 항상 을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봄이의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궁금증을 품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봄이와 달리, 그저 주어진 삶에서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인상이 다툼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당연했습니다.
알면 알수록 갑의 정체는 특별할 것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고 그런 집착은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서는 과정일 것입니다. 거대한 성에 갇힌 공주가 아니라 이제는 그 성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는 기사로 변모해가는 봄이의 성장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위기와 모멸의 상황에서도 정호는 한움큼 빠진 머리에 집착하기만 합니다. 사돈과의 관계도 필요 없고 그 무엇도 자신의 탈모에 비견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정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일 뿐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극중에서 정호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탈모에 집착하는 모습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풍자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외출을 하면서 힘을 달라는 연희의 말에 무표정하게 "사모님 파이팅"을 진지하게 하는 개인비서 이선숙의 이 간단한 장면에서 진정한 코미디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풍문으로 들었소>가 블랙코미디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장면들은 긴장과 완화를 이끄는 장치로서 훌륭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갑들의 세계가 과연 어떤 식으로 풍자의 대상이 될지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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