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나 작가의 신작인 <힐러>가 첫 방송을 했습니다. 시작과 함께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며 올드한 느낌을 버릴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지창욱과 유지태, 박민영이라는 스타들을 내세운 복합장르 드라마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노력했습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다;
진부해질 수도 있는 출생의 비밀, 과연 배우빨을 넘어설 수 있을까?
지창욱과 유지태, 박민영을 앞세운 드라마는 우호적인 팬 층을 거느릴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팬들의 힘이 마지막까지 이어질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힘은 중요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송지나 작가의 힘이 과연 어떻게 발현될지 알 수는 없지만, 첫 회는 과거 <모래시계>의 느낌을 진하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는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명쾌한 무엇을 규정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관계를 구축하고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첫 회 등장한 이들의 모습은 흥미롭게 펼쳐졌습니다. 힐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서정후는 첫 회부터 자신의 진가를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탁월한 외모에 업무 수행 능력까지 완벽한 그는 조폭이나 다름없는 무리들과 싸워도 이겨내는 대단한 무술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무적이라고 볼 수 있는 서정후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무적 슈퍼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해졌습니다.
모든 기자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등장한 김문호의 캐릭터는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많았습니다. 공장 파업 현장에 등장한 김문호를 보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들고, 그를 통해 이번 기사가 가치를 평가는 과정에서 이해를 하면서도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사주의 동생으로 승승장구하는 기자 김문호의 캐릭터는 <힐러>에서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드라마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첫 회 등장한 그의 존재감은 시청자들에게도 특별해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누구도 바라보지 않던 파업 노동자들을 직접 챙기고 분신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길 원하던 노동자를 찾아 손을 잡아주던 김문호의 모습은 감동스러웠습니다. 현실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찾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데스크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김문호는 방송 출연 중에 노동자의 편에 서서 기사를 내보내는 과감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형의 방송사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사주와 다른 시각을 견지하는 동생은 당연히 대립 관계로 이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그들의 대립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아직 전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형과 동생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권력에 야합한 언론사 사주인 형 김문식과 동생 김문호의 대립이 구축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했습니다.
1980년 신군부인 전두환이 쿠테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잡았던 그 암울한 시절 김문식은 친구들과 함께 해적 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라진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이 젊은 패기들은 어린 김문호에게 강렬함으로 남겨졌던 듯합니다. 군용 트럭에서 해적 방송을 하며 신군부의 만행을 고발하는 이 패기 넘치던 젊은이들이 어떤 사연을 품고 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 사진 속 주인공들이 품었던 애증의 관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변질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과 변절 사이에서 뭐가 우선인지 알 수는 없지만, 휠체어에 타고 있는 문식의 아내 명희가 잃어버린 딸이 바로 영신이라는 사실은 너무 당연하게 등장했습니다.
변호사이자 바리스타인 양아버지 밑에서 자란 채영신은 자신의 부모를 찾고 싶은 열망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인터넷 연예부 기자로 삼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김문호와 같은 멋진 기자가 되고 싶은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는 못했지만 사명감과 촉이 좋은 채영신은 그렇게 자신의 꿈과 부모 찾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일들을 하고 있는 서정후, 김문호, 채영신의 공통점은 그들의 부모와 형들이 1980년 해적방송을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서로는 이를 잘 모르지만 이들은 이미 처음부터 예고된 운명처럼 만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죽음을 무릎 쓰고 독재정권에 맞섰던 그들의 아이들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운명으로 만나게 되면서 영신의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게 되는 과정은 익숙함으로 다가옵니다.
영신의 친부인 길한 역시 기자였고, 비자금 사건을 추적하던 도중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도주하던 부인 역시 큰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를 앓고 딸은 잃어버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문식은 명희를 아내로 맞아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해적방송을 하던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명희를 차지한 문식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는 그런 남자입니다. 그가 거대한 언론사의 사주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임에도 명희에 대한 사랑은 지고지순합니다.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무표정하거나 환하게 웃는 얼굴로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그가 영신의 친부이자 자신의 친구이고 연적이었던 길한의 사망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문호가 사람들을 사서 영신을 찾는 이유 역시 어쩌면 억울하게 죽은 그의 아버지를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이 대포집에서 찍어준 사진 한 장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문호에게 길한은 어쩌면 영신이 자신을 목표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부독재에 맞서 해적방송을 하고,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비리를 캐내기 위해 노력하다 숨진 길한은 문호가 닮고 싶은 단 하나의 존재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그가 영신을 은밀하게 찾는 이유는 어쩌면 형에 대한 복수심의 발로일지도 모릅니다.
길한의 죽음에 자신의 형이 연루되었을 것이라 의심하는 동생 문호가 은밀하게 영신을 추적하고 이를 통해 길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힐러>의 모든 것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1980년 해적방송을 만들던 인물들의 자식들과 형제들인 이 세 명의 필연적인 이유로 만나게 되고, 이를 통해 길한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변절한 문식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실행하는 과정은 이미 예고된 결과로 다가옵니다.
<모래시계>가 던지는 가치는 <힐러>에 그대로 이식이 되었습니다. 로맨스와 그 안에 사회적인 문제를 곁들이고 80년대 문화에서 파생된 현실의 문제를 다시 과거와 혼합하는 과정은 작가가 여전히 과거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힐러>가 미드인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와 유사한 상황 묘사와 음악사용을 하며 분위기를 세련되게 잡아가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표절인지 아닌지 이를 판단하기는 한 회만이 지났기에 모호하지만 유사한 설정과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거의 슈퍼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정후와 엉뚱하지만 실력 있는 기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채영신, 그리고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에 대항하는 김문호가 삼각관계를 구축하며 과거 80년 부모와 형 세대와 동일한 운명을 반복한다는 점에서도 지루하거나 고루함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좋게 말해서 안정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고루함을 과연 얼마나 세련되게 풀어 가느냐가 결국 <힐러>가 성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첫 회 많은 팬들을 거느린 스타들에 대한 열광은 존재했지만, 기대했던 특별한 이야기의 재미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어떤 과정으로 전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약점이 너무 많은 <힐러>가 불안하기만 합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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