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한 범죄자를 시원하게 응징하는 것은 통쾌하지만 그 과정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악랄'이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죠. 돈 권력을 가진 양아치들은 그래서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면 뭐든 가능한 세상이기에 그들은 진정한 무적의 악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천환서의 전화를 받고 그의 집에 갔을 때 심각한 상황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인형은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그들에게 인간의 생명 정도는 우습게 보였습니다.
은경이 도착한 그곳에 쓰러져 있던 지영은 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환서는 살리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구급차를 부르려는 은경을 오히려 협박하는 그에게 인간으로서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은경이 걱정되어 함께 와서 밖에 있던 유리에게마저 협박할 정도였습니다. 경찰이 출동하고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환서의 도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유리라는 경고에는 자신은 살인을 저질러도 상관없이 풀려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내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죽을 만큼 팼는데 아직 안죽였다며 히죽거리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믿을 구석이 있었습니다. 국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병원을 거느린 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단의 힘으로 충분히 자신은 무죄를 받을 수 있다 확신했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 외부에 보여지는 모습은 가식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가 살아온 삶 속에서 어떤 짓들을 벌이고 살아왔을지는 충분히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아버지가 모든 것은 감싸고 품어 냈다는 것도 이번 사건은 잘 보여줍니다.
경찰서에 간 유리는 은경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변호사라 밝히며 천환서의 이혼소송 대리인이라 알렸습니다. 그리고 은경을 대신해 자신이 환서의 연락을 받고 갔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집안에 몸싸움 흔적이 있어 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은경은 환서의 집에 들어서기 전 함께 온 유리에게 경찰 부를 때 자신이 안에 있으면 뉴스 기사가 날 수도 있으니 가정폭력으로 출동 요청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기억하고 있던 유리는 은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된 우진은 천환서의 형사사건을 담당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 역시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로펌 전체를 생각해 보면 막대한 피해가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변호사 한 둘만 제외하고 무마시키면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우진의 양심은 이익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천환서에 대한 재판은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1차 공판에서 그는 변호사를 통해 폭행치사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심신 미약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초범인 점을 감안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달라 요청했습니다.
우리가 사건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오는 모든 요소입니다. 심신미약과 초범이라는 키워드는 살인죄도 집행유예를 만드는 마법의 단어들입니다. 이는 충분히 감안할 요소이기는 하지만 전가의 보도되어 돈이나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이 법망을 피해 가는 단골 소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판사들 역시 자신들의 관대함을 표현하기 위해 범죄자들의 사과문을 받고 스스로 감동해 경악할 정도의 감형을 하는 황당한 일들도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왜 수많은 이들은 법관부터 AI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너무 자명합니다.
은경을 위한 유리의 선택은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은호로서는 유리의 행동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더욱 아직 로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변호사로서 자칫 그의 커리어가 모두 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유리는 은경만이 아니라 사망한 유지영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처음 사건을 맡으며 피해자인 그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자책도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유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적을 수밖에 없지만, 사람이 죽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감은 커질 수밖에 없죠.
워낙 알려진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삽시간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론은 천재단과 대정이 공모해 사람을 죽였다는 루머가 퍼지고, 사건을 담당한 유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사람 죽이는 변호사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들은 그저 퍼져나가며 도를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이 상황에 로펌 이사회는 현 대표를 질타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재단과 MOU를 채결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달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 질타했습니다. 처음부터 천환서 사건을 받아주지 않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정황들은 현 대표의 존재감이 위협받는 중요한 상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로펌을 물려받은 우진은 오 대표의 반발에도 자신이 이제 새로운 로펌 대표라며 오늘부로 천재단과 MOU를 파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표자 등기가 오 대표에서 우진으로 바뀌었음을 알리며 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딸과 연락이 되지 않아 극도의 불안을 경험하기도 했던 은경은 자신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준 딸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자신대신 온갖 욕을 먹고 있는 유리를 위해서라도 뭔가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은경은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를 찾았습니다.
폭행치사에서 살인죄로 죄명을 바꿔야 한다며 자신이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합니다. 2차 공판에서 검찰은 죄명을 변경했고, 은경이 증인으로 선다는 사실에 환서는 분노했습니다. 자신의 변호사가 무슨 증인이냐며, 유정이 죽고 나서야 나타나 아무것도 모른다며 법정에서 떠들어댔습니다.
유리 역시 은경의 이 선택은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동안 은경이 쌓아왔던 모든 커리어가 한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신뢰가 기반이 되는 직업군이 바로 변호사입니다. 의뢰인과 지켜야 할 약속을 어기며, 폭로한다면 누가 은경에게 사건 의뢰를 할 수 있을까요?
은경은 지금까지 회사에서 쌓아오신 커리어가 다 무너진다며 걱정하는 유리에게 한 마디 합니다."무너질 때가 온 거라면 무너지게 놔둬야지. 진작 그랬어야 했어"라는 말로 담담하게 현재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은경이 증인으로 나선다는 말에 여론은 다시 한번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욕설이 도배되는 상황이었죠.
3차 공판에서 은경은 증인으로 나서 증언거부권을 포기했습니다. 변호사로서 증인이 되어도 의뢰인과 나눈 대화는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에도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용기가 없으면 불가합니다. 더욱 이번 사건의 실체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는 힘든 일이었죠.
은경은 환서가 자신에게 했던 협박들과 사건의 진실을 차분하게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거짓말이라 주장하는 환서에게 보이스펜으로 녹음한 녹취록을 공개했습니다. 이는 사건 현장에서 벌어진 모든 것을 다 밝혀줬습니다. 은경이 법정에서 싸우는 동안 유리는 '피켓변'으로 변신해 법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와 바람이 났던 여자 회사 앞에서 하던 피켓 시위와 유사했지만 달라졌습니다. 은경이 법정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진실과 싸우는 것과 같이, 유리는 법원에서 실체를 알리기 위해 나섰습니다. 영상까지 퍼지자 로펌에서도 알게 되었고, 그들은 함께 피켓을 준비해 유리와 함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들의 모든 노력으로 결국 천환서는 징역 15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잔인한 살인마에게 이 정도 선고가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속적인 가정 폭력이 잔인한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보다 높은 형량이 내려져야 할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돈권력을 가진 재단의 아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15년 선고도 나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은경이 자신의 커리어 전부를 던지고 진실을 밝혀서 얻어낸 결과니 말입니다.
선고가 내려지자 환서는 분노했습니다. 판사에게 뛰쳐나가며 얼마 받아먹었냐며 조롱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살인죄로 만들었다며 얼마면 돼?냐는 발언은 씁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은 이런 상황들에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소회를 밝히며 은경은 유리에게 중요한 순간 자리를 내줍니다. 이 사건은 자신 혼자 해낸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한 것이죠. 그리고 둘만 남은 자리에서 둘은 서로에게 감사함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은경은 유리에게 용감한 일 하나 더 해볼까 한다며 자신은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로펌을 떠나 독립할테니 한변은 나한테서 독립하라고 합니다. 이제 더는 배울 것이 없는 제자에게 하산을 통보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랜 동료이자 후배가 로펌 대표가 된 상황에서 자신이 그곳에 머무는 것은 오히려 우진이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겁니다.
좋은 파트너가 되자마자 로펌을 떠나는 은경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요? 그리고 로펌에서 이제 진짜 변호사가 되어 활약하기 시작한 유리는 어떤 변호사로 성장해 갈까요? 은경을 닮고 싶은 유리는 보다 강하고 약자를 돌볼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은경의 홀로서기와 유리의 성장기가 아직 남겨져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은경으로서는 대형 로펌의 우산에서 벗어나 스스로 온갖 역경을 이겨내야 하니 말이죠. 안정된 수익은 사라지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은경과 유리는 어떤 굿파트너로 이어질지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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