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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Netflix Wavve Tiving N OTT

기예르모 델 토로가 재현한 피노키오는 왜 특별했을까?

by 자이미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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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인형 피노키오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겁니다. 책을 다 읽지는 않았어도, 피노키오가 뭔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죠. 그런 피노키오를 다른 누구도 아닌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였습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목각 인형 피노키오의 마법 같은 모험.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강력한 사랑의 힘이 펼쳐진다.
평점
9.0 (2022.11.23 개봉)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마크 구스타프손
출연
이완 맥그리거, 데이비드 브래들리, 그레고리 맨, 크리스토프 왈츠, 틸다 스윈튼, 케이트 블란쳇, 핀 울프하드, 론 펄만, 번 고먼, 존 터투로, 팀 블레이크 넬슨, 톰 케니, 프란체스카 판티, 리오 맨지니, 피터 아르페셀라

통상 기예르모를 크리처 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대표작들이 모두 크리처 물로 불러도 좋은 작품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에 기예르모라는 이름을 알린 '크로노스'가 아마도 이런 이미지를 각인시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헬보이 시리즈', '판의 미로', '악마의 등뼈', '셰이프 오브 워터', '앤틀러스', '나이트메어 앨리' 등 그의 주요 작품들을 보면 확실한 자기 색깔이 강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뭐 '퍼시픽 림'이나 '호빗 시리즈'와 애니메이션 등 다작에도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한 감독이지만, 기예르모는 기괴한 상상력의 대가라고 불러도 좋은 감독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그런 기예르모가 만들어낸 '피노키오'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인형이 인간이 되어 행복한 결말을 맺는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할 감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현실적 이야기를 통해 인간애를 더욱 풍성하고 감각적으로 담아냈습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피노키오 이야기지만, 기예르모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닌 바퀴벌레 세바스티안 J. 크리켓의 시선으로 피노키오와 제페토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은 객관성을 유지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기예르모의 선택이었습니다.

 

제페토는 아들 카를로와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무를 손질해 조각품을 만드는 제페토는 그저 아들 카를로와 사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죠. 성당에 예수상을 만들다 폭격기가 떨어트린 폭탄으로 인해 아들 카를로가 사망하고 맙니다.

 

폭격 장소도 아니었지만 돌아가던 폭격기가 비행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버린 폭탄에 카를로는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카를로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솔방울을 자랑하며 행복해 하던 카를로는 땅이 흔들리는 상황에 제페토는 위험을 감지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죠. 하지만 아빠에게 자랑한 솔방울을 성당에 놓고 와 가져오려다 그만 폭탄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예르모의 피노키오는 전쟁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도입부는 중요하게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아들 카를로의 솔방울이 나무가 되고, 그 나무를 가지고 아들을 닮은 피노키오라는 인형을 만들게 된다는 설정 역시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잘 담아냈습니다.

 

아들의 묘에서 망가진 삶을 살던 제페토는 마침 카를로의 솔방울로 키운 나무에 이사온 세바스티안이 자리를 잡은 직후 나무를 베어 피노키오를 만듭니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제페토의 집으로 와 그가 만든 피노키오의 심장 부위에서 살게 된 세바스티안이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이 작품은 실사도 아니고 2D나 3D 애니메이션도 아닙니다. 가장 수작업으로 섬세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경이롭기만 합니다. 한 동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캐릭터 인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CG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 다양한 표정을 표현하기 위해 한 캐릭터 당 다양한 표정의 얼굴들을 만들어 교체해 가며 촬영해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죠.

 

수많은 캐릭터들을 모두 일일이 조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고단한 작업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곳은 아드만 스튜디오의 닉 파크일 겁니다. 크레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스톱모션으로 작업하는 닉 파크의 작업은 예술적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윌레스와 그로밋'을 보면 정말 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이어졌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힘들 정도입니다. 넷플릭스에는 '피노키오'만이 아니라 메이킹 영상도 따로 볼 수 있는데, 이걸 보면 길레르모와 팀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기예르모의 '피노키오'는 말 그대로 나무 인형의 느낌을 완벽하게 살렸습니다. 더욱 제페토가 술에 취해 피노키오를 만들어 초반에는 정교하지만 점점 갈수록 대충 만든 흔적들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귀가 한쪽이 없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현실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기예르모의 집요함과 섬세함이 잘 드러납니다.

 

성당에서 제페토가 완성하지 못한 예수상을 보며 자신과 같다는 말은 중의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피노키오는 어린 아이의 감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많고 떼를 쓰기도 하죠. 학교에 가기 싫어 서커스단을 이끄는 볼페 백작의 꾐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어린아이의 감성을 가진 피노키오를 제대로 재현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들은 극 중에 보이는 행동을 통해 잘 보여줍니다. 슬퍼하다 바로 웃는 등 감정 변화가 다채로운 것도 아이의 특징 중 하나이죠. 감정선과 드러나는 행동들을 통해 피노키오의 매력에 빠지게 한 기예르모는 장인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피노키오 스틸컷
기예르모 델 토로 피노키오 스틸컷 2

'피노키오'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 작품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셨을 듯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중요한 요소로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아래 이탈리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과 독재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도 좋았습니다.

 

광적인 파시스트인 포데스타 시장과 그의 아들, 그리고 피노키오의 관계성도 흥미롭게 전개되죠. 아이들을 전쟁기계로 만들기 위한 캠프에서 피노키오와 캔들윅의 우정과 잔인한 파시스트 시장의 모습이 절묘하게 대비되는 장면들도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전쟁광이자 독재자인 무솔리니와 피노키오와 스파차투라를 학대하고 착취하던 볼페 백작을 궁지로 내모는 공연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공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그렇게 직접 무솔리니 앞에서 공연하는 날 스파차투라를 위해 피노키오는 즉석에서 개사해 무솔리니를 조롱하는 장면은 최고였죠.

 

기예르모 답게 고래가 아닌 괴물이 등장하고, 그 뱃속에 갇힌 제페토와 피노키오가 재회하고 탈출하는 과정들을 담아내는 과정은 그 다웠습니다. 애니메이션 팀 역시 기예르모의 영화를 보고 그의 성향을 파악해 준비 단계에서부터 전체 작품을 기획했으니, 그의 작품을 좋아하신 분들이라면 이 작품 역시 매력적이었을 듯합니다.

 

가족애와 친구와의 우정 등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교훈적이기도 합니다. 버려지고 학대 받던 원숭이 스파차투라는 마음의 상처가 커서 누구와도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존재죠. 그런 스파차투라를 변화시키는 피노키오의 진심은 이 영화가 내세우는 가치이기도 했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저 그는 영혼이 담긴 나무인형으로 살아간다는 점은 기예르모다웠습니다. 애틋한 제페토를 위해 나무인형 피노키오에 영혼을 담아 준 푸른 요정과 자매인 죽음의 요정이 던지는 화두들 역시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욱 명료함으로 다가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와 피노키오

생사를 오가는 여정을 하면서 제페토는 피노키오는 절대 카를로가 아니라고 인정합니다. 처음에는 카를로를 잊지 못해 피노키오를 만들었고, 자신의 아들처럼 행동하기 바랐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를 피노키오의 행동이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로 받아들인 후 피노키오를 찾아 떠난 제페토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피노키오는 카를로 대체가 아닌, 피노키오 그 자체라는 것을 말이죠. 이는 중요한 메시지죠. 누구를 위한 혹은 누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제페토를 살리기 위해 영원한 삶을 포기한 피노키오의 그 선택도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피노키오는 모래시계를 스스로 깨서 영원한 삶보다 아버지를 선택합니다. 그렇게 한번의 삶을 의미 있게 사용하라는 죽음의 신이 건네는 말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죠.

 

피노키오는 나무 인형입니다. 그런 나무 인형을 사람들이 받아주고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는 마지막 이야기는 편견과 차별없이 살아가자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인간처럼 행동하지만 인간이 아닌 나무인형은 어찌 보면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인종차별을 풍자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보셨던 분들이라면 이 작품을 보며 뭔지 다르다는 생각을 했을 듯합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서는 구현하기 어렵고 힘든 작업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죠. 바로 실사 영화를 찍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서 기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스파차투라가 서커스단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보이는 과정은 기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면 단순하게 표현하겠지만, 기예르모는 영화를 찍는 것과 동일하게(하지만 애니메이터들에게는 지옥 같은) 표현하며 풍성함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피노키오'를 만들었기에 기존의 스톱모션의 아쉬움을 뛰어넘는 예술적 감성까지 담아냈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피노키오 넷플릭스

뮤지컬 방식을 차용해 익숙한 재미를 더하고, 음악을 담당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은 아름답고, 감미로우며 경쾌했습니다. 음악만 들어도 흥미롭고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다는 것이 기예르모의 '피노키오'입니다. 기괴함과 경쾌함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이제 '피노키오'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습니다. 

 

목소리 역시 이완 맥그리거(세바스티안), 데이비드 브래들리(제페토), 론 펄먼(포데스타 시장), 틸다 스윈튼(푸른요정/죽음의 요정), 그리스토프 발츠(볼페 백작), 케이트 블란쳇(스파차투라), 존 터투로(의사), 톰 케니(무솔리니) 등 이름만 들어도 매력적인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피노키오와 카를로 목소리를 연기한 그레고리 만의 매력도 이 애니메이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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