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은 추격자가 될까 아니면 구원자가 될까?
김인숙의 마지막 목표는 하나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김마리를 죽이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던 자신에게 JK는 심한 모멸감과 함께 절망을 선사했습니다. 그 어떤 기회도 모두 봉쇄된 채 오로지 인간 이하로 치부 받아 왔던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해결하고 싶은 것은 JK에 대한 복수입니다.
김인숙에게 JK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자 인간이기를 포기 당해야만 했던 절망의 공간이었습니다. 과거 자신을 옥죄고 있었던 김마리라는 과거를 벗어던지고 새롭게 김인숙이라는 이름으로 인생을 살아가려던 그녀에게 JK 황태자와의 만남은 행운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부활을 꿈꿨던 김인숙에게 JK는 창살 없는 감옥과 다름없는 공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녀가 지훈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인지 아니면 그 사건에 함께 했던 존재인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세월이었습니다.
18년 이라는 세월 동안 JK라는 거대하고 화려한 감옥에 갇힌 채 살아오던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비로소 세상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JK의 주인인 공회장이 공헌하듯 사별은 있을 수 있어도 이혼해서 정가원을 떠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처럼 김인숙은 그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티켓을 자신이 사랑했던 혹은 자신을 해주었던 남편의 죽음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죄 없이 감옥살이를 했다면 국가를 상대로 배상책임을 물을 수가 있습니다. 인숙 역시 상징적인 배상처럼 JK에서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부분들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을 시작합니다. 금치산자로 몰려 내쫓기게 된 상황에서도 그녀가 굴욕을 참아가며 JK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오랜 시간동안 자신이 억울하게 갇혀 지내야만 했던 호화스러운 감옥 '정가원'에 대한 복수 때문입니다.
시시각각 의문들을 풀어내며 해답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훈에 앞서 JK 공순호 회장에게 들키기 전에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삶의 의미란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 아픈 기억만을 남기고 있었던 아들 조니마저 죽은 상황에서 그녀가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자신에게 인간 이하의 모멸감을 주었던 공회장에 대한 복수만이 전부입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전무한 냉철한 공회장은 김인숙이 날개를 달자마자 그 날개를 제거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 날개를 꺾는 게 힘들다면 다른 모든 이에게도 날개를 달아줄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김인숙이 숙원 사업들까지 척척 해결해내며 JK에게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공회장에게 김인숙은 여전히 K이고 마지막까지 한 가족이 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지주회사로 생각했던 JK 클럽을 방치하고 새로운 지주회사를 세워 딸인 현진에게 넘겨주려는 것이겠지요. 흔들림 없이 자기 위주의 사고를 통해 결국 로열 패밀리만이 영원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공회장은 김인숙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걸고 대결을 벌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청운거사를 통해 지주사 사장을 낙점하려는 공회장과 김인숙의 의중을 공회장에게 이야기 하겠다는 청운거사의 모습 속에서 그들의 대결이 일방적인 공격이 아닌 복잡하게 얽힌 방식의 복수극이 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합니다. 그들 복수의 중심에는 공회장이 후계자로 생각하는 현진이 자리할 수밖에는 없고 이는 서로에게 아픈 구석으로 남을 수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JK에 남으며 공회장에게 건넸던 지훈의 이야기는 드라마의 후반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도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김인숙을 제거하겠다는 지훈의 말이 과연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기대됩니다.
중반을 넘어 종반을 향해가면서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살인 누명을 쓰고 살아가야 했던 소년 지훈과 그를 바른 생활로 이끌어준 김인숙. 그들이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사실은 드라마가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합니다.
부모의 존재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지훈과 그런 지훈의 아버지를 죽인 혹은 죽음으로 몰아가는 과정에 동조했던 김인숙의 현재의 관계는 기형적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부모의 원수가 현실의 구원자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지훈은 김인숙에게 어떤 벌을 내릴 수 있느냐는 질문은 <로열 패밀리>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치가 될 것입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해야만 했던 시절. 그래서 김마리라는 자신을 죽여 버리고, 새로운 인생인 김인숙으로 살아갔던 그녀는 다시 한 번 아들의 죽음과 함께 인간이기를 포기합니다. 이번에는 현재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만약 JK 복수에 대한 미련 없이 지훈과 함께 멀리 떠나버렸다면 그들의 삶은 영원히 행복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버린 김인숙에게는 이번이 마지막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옥죄고 있는 진실은 그녀를 조바심 나게 만들고, 그런 조바심은 JK 복수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공여사를 몰락으로 몰아갈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원하는 그 복수가 과연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는 행위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던 첫째를 무릎 꿇히며 희열을 맞보았던 김인숙이 공회장마저 무릎 꿇게 한다고 자신의 모든 아픔이 치유되지는 않을 겁니다. 더욱 자신의 복수에 가장 강력한 상대가 등장해 자신을 뒤쫓기 시작하는 상황은 그녀를 더욱 힘겹게 만들 뿐입니다.
'윌셔'라는 이름이 적힌 곰 인형과 혼혈 청년의 죽음. 조금씩 밝혀지는 과거의 진실 속에 김마리라는 존재가 있고, 그 김마리의 실체를 알게 해주는 이태원 할머니 강미자와 엄집사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지훈으로서는 불안하지만 그 마지막 지점에 김인숙이 있음을 느꼈을 듯합니다.
자신의 어머니일 가능성은 낮지만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김인숙과 왜? 라는 의문사가 지속적으로 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살인사건과 그녀의 인생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관계에서 목격자가 되고 뒤이어 관찰자가 되었던 한지훈이 이제는 추격자가 되어버린 상황은 드라마의 재미를 극대화시켜주지만, 드라마 속 당사자들에게는 곤욕스러운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이 곧 찾아올 수밖에 없음을 예고합니다.
모든 결정권은 결국 한지훈이 쥐고 있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김인숙이 김마리였다는 사실을 한지훈이 알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 이런 상황에서 김인숙 자체에 대한 궁금증은 곧 자신의 암울했던 과거 속으로 이끌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 마지막 넘어서기 힘든 살인의 추억 속에서 과연 한지훈은 김인숙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까요? 한지훈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혹은 죽음에 동조한) 김인숙에게 단죄를 내릴까요?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김인숙에게 인간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줄까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이들은 진실과 마주해야 할 시간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모든 진실이 드러난 후,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흥미롭게 전개되는 <로열 패밀리>가 과연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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