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되는 아래적, 민망해지는 관계들
<짝패>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뒤바뀐 운명에 대한 고민과 막장 급 드라마 전개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인지 '아래적'을 통해 부패된 세상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것인지 16회가 지나면서도 여전히 의구심만 남겨 놓은 채 어느 길을 걸을 것인지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의 연기는 한없이 지루하고 극의 흐름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의중을 알기 힘들게 전개됩니다. 아역 배우 시절 보여주었던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빠른 전개 등은 성인 연기자들로 넘어 오면서 무슨 늘어진 테이프를 재생시키듯 한 여름 엿가락 늘어지듯 늘어져 있을 뿐입니다.
세상 모든 고민은 혼자 하고 있는 듯 수심만 가득한 천둥은 어린 시절의 역동성을 잃어버린 채 동녀 옆에서 그녀만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 아파할 뿐입니다. 변화에 대한 기대도 없어 자신이 양반이 되었다는 사실도 의미 없고, 사회를 변화시켜보자는 아래적 강포수에게 침을 뺏을 정도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길 잃은 어린 양처럼 떠돌기만 합니다.
동녀 역시 어린 시절 독기를 품고 아버지 복수를 다짐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10년의 세월은 그녀를 천박한 신분주의자에 속물로 그려놓고 있을 뿐입니다. 양반집 자제인 귀동에게 자신의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사랑을 구걸하지만 천둥의 마음은 천출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천둥이 만석지기 양반의 숨겨진 아들임이 밝혀지며 극전인 반전을 이루는 동녀의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합니다. 여자 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은 제로에 가깝고 자신의 신분을 속이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기 힘든 속물근성은 드라마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동녀라는 캐릭터가 속물이 아닌 속물인척 자신을 숨긴 채 '아래적'과 함께 변혁을 꿈꾸는 주체라고 한다면 더욱 세밀하게 캐릭터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보여 진 동녀의 모습은 성인 역으로 처음 등장하며 보여주었던 미묘한 감정을 담은 표정이 전부입니다.
그런 미묘함만으로 동녀의 반전을 위한 복선이라 이야기하기에는 빈약함을 작가도 알고는 있을 듯합니다. 철저하게 속물로 그려지는 과정 역시 기준이 제시되고 이후 반전이 가해질 때 신뢰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좀 더 촘촘한 얼개가 필요할 것입니다.
천둥이는 쇠돌이의 친자식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한 캐릭터로 굳어가는 듯합니다. 막순만을 바라보며 한 평생을 보내고 있는 쇠돌이는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답답함으로 점철된 존재일 뿐입니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바보 같은 집착으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는 캐릭터이니 말이지요.
쇠돌이의 이런 바보 같은 집착은 천둥이에게도 그대로 전이되어 동녀에 대한 어설픈 집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답답함을 넘어서 경악스러움까지 선사하는 쇠돌이의 집착은 막순이 뿐 아니라 시청자들까지 질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쇠돌이의 이런 모습들은 마치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전이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현재 진행되는 <짝패>의 답답함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귀동만이 뒤바뀐 운명을 알게 된 후 혼란과 격정의 시간을 보내며 친부를 직접 보기까지 합니다. 엄청난 유산을 위해 천둥을 이용한 막순은 예상대로 막대한 부를 손에 쥐기는 했지만 자신의 친아들인 귀동을 잃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된 귀동은 혼란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는 없었고 그 혼란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의 순수함으로 더욱 힘겹게만 만듭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귀동에게는 서로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유모이자 친모인 막순과의 관계를 완벽하게 끊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을 알고도 사실을 그대로 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단절을 통해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이 정답일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지요.
천둥과 동녀의 답답하다 못해 짜증스러운 캐릭터 전개와 달리 그나마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귀동이 어느 정도 자신의 입지를 다지며 극을 이끌어 나갈지 기대됩니다. 동녀와 달리 '아래적'에 합류해 왕두령 패 습격에 동참한 달이의 다부짐은 어린 시절의 모습과 많은 부분 닮아 있어 흥겹기만 합니다.
동녀와 달이를 직접 연결시키지 않아 이 둘이 모두 사실은 '아래적'이더라 라는 반전의 가능성을 열어 놓기는 했지만 '아래적'을 통해 극적 반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모호하게만 흘러가는 듯해 아쉽습니다.
갖바치 노인이 철저하게 보수적인 입장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있고 격정적인 달이는 현재의 젊은이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논쟁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분절과도 많이 닮아 있으니 말이지요. 그 사이에 끼어 10년 전 민란을 비판하는 천둥의 모습은 과거 민주화 반란이 10년이 지난 후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질책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10년 동안 우리 사회 전반에 민주화를 정착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단 3년 만에 2, 30년 전으로 급격하게 후퇴해 독재의 그늘 속으로 들어서게 만든 정권. 그런 정권을 바라보는 386 세대인 강포수와 이를 바라보았던 20대 천둥의 모습을 비유하는 듯한 극중 이야기는 그나마 <짝패>를 봐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 하는 듯합니다.
아들 도갑의 죽음으로 스스로 왕두령을 제거하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선 카이저소제 장꼭지가 과연 임무를 수행할 수는 있을까요? 그의 무모함을 막기 위해 뒤따라간 강포수는 그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는 있을까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도적들은 과연 누구인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 <짝패>는 그렇기에 아직 버리기에는 아쉬운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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