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지배하는 사회, 그 실체를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까?
한 여자의 거짓말을 통해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우화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드라마는 아직 그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학력 위조라는 사회적 병패를 다루기는 했지만 그 현상을 목도하고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는 미리라는 한 인물에 국한되며 사회적 함의나 동의를 얻기는 힘이 많이 부족해보입니다.
호텔 에이의 사장인 장명훈에게 결혼 프러포즈까지 받은 미리가 선뜻 응하지 못한 이유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진 유현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호텔 에이의 소유주이며 전 세계적인 호텔 체인을 가지고 있는 몬도 그룹의 후계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송유현이 몬도 후계자임을 알기 전까지는 썩은 동아줄로 표현하며 경멸하기까지 했던 그녀에게 튼튼한 동아줄은 명훈이 전부였습니다. 마침 이혼까지 한 상황에서 힘겨워하는 그의 감정을 교묘하게 끄집어내면서 자신의 남자로 만든 그녀는 그렇게 호텔 에이 사장의 부인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명훈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니 황당하게도 자신이 경멸해왔던 유현이 몬도 그룹 후계자라는 사실은 그녀의 머리를 복잡하게 합니다. 사랑 없이 진행되는 욕망의 움직임이 호텔 에이의 실질적인 주인도 아닌, 계약 사장의 부인에서 멈출 리는 없기 때문이지요.
자신만이 유현이 몬도 그룹 후계자임을 알게 된 미리는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유현에게 다가갑니다. 그렇게 접근한 그녀는 자신이 몬도 그룹 후계자인지 모른다고 생각한 유현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게 움직여갑니다. 이미 미리에게서 어머니를 떠올리며 사랑을 키워갔던 그로서는 갑작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미리가 고맙기만 합니다. 의심을 하거나 이상한 느낌을 받을 만도 하지만 그런 의심조차도 하지 않는 유현은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지고 살아가며 자신이 정직하면 다른 사람도 정직하다는 그런 믿음이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독으로 작용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철진은 뭔가 이상한 미리에게 불안함을 느끼지만 함부로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이 일을 더욱 크게 만들기만 합니다.
미리가 학력을 위조하고 유현에게 접근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유이한 존재인 희주 역시 함부로 진신을 털어 놓을 수도 없는 게 문제이지요. 언뜻 진실을 내비치는 상황에서 유현이 해맑게 웃으며 그저 친구를 시기하는 것처럼 여기는 상황에서는 진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유현의 매력에 빠져 사랑이라는 감정을 키우고 있는 희주로서는 더욱 이런 상황이 당혹스러울 수밖에는 없지요.
유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미리가 호텔 에이의 사장인 명훈과도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면서부터 희주는 조금씩 변화하려 합니다. 단순히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어린 시절 자기 대신 일본으로 가야만 했던 상황에 대하 보답차원에서 감춰줄 수 있는 상황들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두 남자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미리의 모습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거짓말이 미리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로 다가왔고 그런 기회를 잡기 위해 보다 크고 복잡한 거짓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호텔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했던 학력위조는 이를 가리기 위한 조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조작 위에 만들어진 허상에 남자들은 미리에게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남자를 선택해가는 그녀는 위태로울 뿐입니다.
그런 위태로움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인물이 바로 히라야마였습니다. 그녀의 어두운 부분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는 그녀를 턱밑까지 쫓더니 대학 특강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서 히라야마와 마주하게 됩니다. 집요하게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돈을 요구하는 히라야마는 누구를 건드려야 자신의 몫을 챙길 수 있는지 아는 존재였습니다.
미리가 두려워하고 감추고 싶은 사람이 명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호텔을 찾아가 명훈과 함께 하고 끝낸 엄청난 돈을 받기까지 합니다. 그 상황에서까지 미리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며 명훈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사랑이라 말하기에는 사치스러운 그녀의 행동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억눌렸던 욕망을 채우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궐 같은 집을 가진 유현의 부에 이끌려 그에게 청혼을 받는 과정 역시 그녀에게는 사랑은 사라진 오로지 욕망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을 뿐입니다. 그녀의 진심이 사라진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스스로 늪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그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아니 그녀는 애써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미리가 가지고 있는 거짓을 세상에 알릴 수밖에 없는 희주가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거짓들을 밝혀낼지 궁금해집니다. 탐욕이 지배하는 히라야마가 거액을 받고 물러날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이미 화수분이 되어버린 미리를 더욱 집요하게 협박하며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 미리의 거짓들이 모두 드러난 상황에서 두 남자가 과연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거짓을 감싸줄 수 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명훈과 유현이라는 두 명을 배치하고 동일한 상황을 병치해 보여주는 방식들은 흥미롭기는 합니다. 박유천이 부르는 OST 역시 감미롭게 다가오며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잘 담아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를 했듯 이 거짓에 대한 이야기가 과연 시청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는지가 모호한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항을 일으켰던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기존의 영화를 차용해 만들고 있는 드라마는 이미 많은 부분 외부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재미를 이끌어야만 하는데 여전히 모호한 그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거짓말은 거의 대부분 매력적이고 달콤하기만 합니다. 상대를 속이기 위한 말인 만큼 듣고 싶은 이야기들만 하게 되는 거짓이 과연 인간을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파멸시켜나가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한 내용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저 정신없이 거짓말하는 한 여자와 그 거짓말에 놀아나는 두 남자의 정신없는 이야기로 멈추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미 거짓이 실력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보는 사회 속에서 거짓말을 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들이 이해되고 때론 영웅이 되기도 하는 사회 속에서 이 드라마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요? 이제는 정체를 드러내도 좋을 듯합니다. 유현의 새엄마 이화가 미리의 친 엄마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어느 시점에 사실이 드러나며 상황을 반전시킬지 궁금해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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