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그럴듯한 표현을 들이되어도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 그 어떤 기준이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거대한 착각일 수도 있죠.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착각말입니다.
은행은 한바탕 난리가 나고 말았습니다. 은행 문 열기도 전에 들이닥친 종현으로 인해 수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의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죠. 소란스러운 상황에 복도로 나온 상수와 경필을 향해 분개해 나아가던 종현은 경필을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이를 만리던 상수에게도 너도 수영과 잤냐고 이야기하는 종현은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입 가볍고 성희롱과 조롱을 일삼는 한심한 작자가 촬영까지 해 공유하며 일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때 사랑한다고 했던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상수가 말없이 떠난 수영에게 무너지지 않은 모래성을 찍어 보내자, 그는 경필에게 전화했습니다. 수영이 경필에게 그 늦은 밤에 연락을 한 것은 하나의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경필이 자신에게 해준 대학시절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경필이 사랑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여자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와 자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그게 가장 큰 배신이라 생각했던 경필입니다. 지금이야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그저 그런 행위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끝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뜬금없는 경필의 이야기가 무슨 의도인지 수영은 알았습니다.
누구보다 이런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경필에게 연락한 수영은 '돌이킬 수 없는 끝장'을 선택했습니다. 종현이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수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수영이 경필을 선택한 것은 그런 사연을 들려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수의 친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영을 상수를 위해 자신을 파괴했습니다. 그게 수영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서글플 수밖에 없죠. 종현이 보인 분노는 사랑이었을까요? 사랑일 수도 있지만, 사랑보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은 행동일 것이라고 보입니다.
현재 시점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고가 수영입니다. 그런 수영을 놓친다는 것은 종현에게는 불안한 일입니다. 수영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착각하면서라도 자기 곁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종현에게 존재합니다. 자신이 수영을 놓아줄 수 있을 때가 아니면, 몰라도 현재 수영의 행동은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소유는 사랑이 아닌 집착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종현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상수는 모래성 사진을 보다 수영이 했던 말을 떠올려봅니다. 두려워 스스로 무너트렸다는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상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수영을 따라가는 상수와 그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돌아가는 상수의 모습을 바라보는 수영의 모습은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사랑이란 언제나 내 마음처럼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그게 또 사랑이라는 그 미묘한 감정이 만드는 마법이자 저주이기도 하죠.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종현에게 수영은 이별을 고했습니다. 사랑한 적 없는 수영에게 종현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영이 종현에게 대한 행동은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동정이나 연민과 함께 너무 일찍 세상을 뜬 남동생에 대한 그리움까지 복합적인 존재로 다가온 것이 종현이었습니다.
상수는 수영을 보내고 그의 부모가 하는 굴국밥집을 찾아 술을 마셨습니다. 같이 술을 마셔주는 수영 아버지는 상수에게 수영과 친하냐 묻습니다. 한참 뜸을 들이던 상수는 "제가 좋아합니다"라며 울컥해 합니다. 부모 때문에 수영이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는 수영 아버지는 다음에는 수영이와 함께 오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직군전환 면접을 보러 간 수영은 면접관이 왜 직군전환을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런 면접관에게 수영은 행내 시험도, 실적도, 그리고 근태도 충족했음에도 떨어지는 이유가 뭐냐고 묻습니다. 노력에 대한 인정을 왜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며, 선을 넘지 못하게 막는 은행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습니다.
신도점 김 대리가 찍은 영상이 올라오며 논란이 일었고, 본점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정 청경이 해고되는 수준으로 급하게 정리되었지만, 그 영상을 찍어 올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수영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김 대리의 행태를 상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차마 때리지는 못했지만 멱살을 잡는 방식으로 분노를 충분히 표출했죠.
그렇게 교육도 받지 않고 나가던 상수는 엘리베이터에서 수영과 마주합니다. 외면하는 수영과 달리, 엘리베이터에 타도록 한 상수는 시험 잘 봤냐고 묻기만 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서도 자신을 따라오는 상수를 향해 수영은 "왜 아무것도 안 묻는데?"라며 화를 냅니다.
다른 사람처럼 욕하고 비난하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냐고 말이죠. 이는 역설적으로 정말 화가 나서가 아니라, 내가 그 정도 했으면 알아서 떨어져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자신을 믿어주는 상수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고마워하면 안 되는 현실이 수영을 화나게 하고 힘겹게 하는 것이죠.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데"라는 말 속에 수영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상수의 가장 친한 친구와 잤다는 말까지 들었음에도 자신에게 비난조차 하지 않는 상수의 모습에 수영은 놀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필은 미경에게 "참 솔직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걸리적거리던 수영이 떨어져 나갔으면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경필의 생각이니 말이죠. 나에게까지 와서 상수와 수영을 언급했던 미경이기에 경필의 이 말은 자연스러웠습니다.
복귀한 수영과 마주한 미경에게 "이제 미워하세요. 마음 편해지게"라고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좋아했는데 배신했다는 식의 미경 말에 좋아해 달라고 한 적 없다는 수영은 마음 불편하라며 계속 좋아한다는 말을 상기시키며 더는 좋아하지 말라 합니다.
수영과 미경 모두 이율배반적이고 양가적 성향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양가적이죠. 본능 그대로 살아가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회적 동물이 되면 더더욱 타인을 신경 쓰고 그렇게 어울리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그 감정선들도 숨기며 타인의 감정에 맞추는 경향이 크니 말이죠. 이들의 감정선들은 그렇게 복잡하지만 세밀하고 진중하게 잘 그려졌습니다.
"너한테 하상수는 대체 뭐였어?"라는 미경의 질문에 수영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은 상수를 규정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영은 자신을 기다리던 상수에게 아무런 말도 묻지 않느냐는 질문의 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상수는 겁나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진짜이든 진짜가 아니든 수영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한 것 자체가 겁나서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수영씨를 못 보는 거니까"라는 말에 눈물을 흘리는 수영의 모습은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다시는 오지말라는 수영에게 얼굴 보고 힘들어할 거라며, 내일 보자는 상수의 그 단단함이 수영은 힘들지만 기대했던 반응이기도 했을 듯합니다. 종현은 고향으로 내려가고, 상수는 이혼한 친구 석현을 찾아갑니다. 술만 마시며, 입맛 없다며 상수가 끓여준 라면을 허겁지겁 먹는 석현의 이중적인 상황은 앞선 수영과 미경,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마음과도 닮았습니다.
양가적 감정으로 결혼하고선 전 연인이 생각났지만, 이혼하고 다시 뜨겁게 사랑할 것이란 생각과 달리 이제 전 아내가 그리워진다는 석현의 행동은 상수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행동은 그래서 상수에게 더 중요했습니다. 제대로 헤어져야 진짜 사랑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영은 엄마를 찾아가 배고프다며 밥 달라 합니다. 허겁지겁 먹는 딸에게 체하겠다는 엄마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습니다. "용서하는 사람 마음은 어떤거야?"라는 질문은 과거 아버지를 비난하기 위한 시작으로 언급하던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수영을 위해 이곳까지 올라온 엄마에게 다 버리고 통영 다시 갈까? 묻는 수영의 모습에 엄마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왜 그러냐는 말에 "지쳐서"라 말하고 우는 수영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오히려 지독하게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석현 집에서 마주친 경필과 따로 술자리를 하던 상수는 "진짜 그랬다해도 나 안수영 좋아해"라고 합니다. 그런 상수에게 경필은 현실부정하고 도피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신 차리라는 경필의 그 발언은 어떤 의도였을까요? 누구보다 상수를 잘 알고 미경과 그의 집안을 아는 경필은 친구에게 조언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상수도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수영은 집으로 돌아가며 뒤돌아 봅니다. 오지 말라고 했지만 상수를 기다리는 수영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며 힘들어 하는 상수는 엄마 앞에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난처럼 형 같은 엄마라고 불렀지만, 상수 엄마는 너무 다치지 말라 합니다. 아들이 겪고 있는 복잡한 감정과 사랑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는 엄마이기 때문이죠.
상수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미경이 쓰러져 수액을 맞고 있다고 사촌오빠인 혁진이 연락했기 때문이죠. 상수를 확인한 미경은 그의 집으로 가자합니다. 그리고 라면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미경 앞에서 상수는 미안하다고 합니다.
자신이 너무 무례했다며 한강에서 100% 아니어도 된다는 말을 핑계 삼아 속물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미경의 외모나 집안을 보면 충분히 탐낼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죠. 상수는 미경이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했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언젠가 100%가 될 것이란 생각으로 속였다고 합니다.
"미경아 나 때문에 더 아프지마"라며 눈물 흘리는 상수에게 애써 담담해지려는 미경은 선물로 줬던 차키를 가지고 나섭니다. 그렇게 미경이 나가자 오열하는 상수와 주차장에서 자신이 선물한 차를 향해 벽돌을 던지며 오열하는 미경의 모습은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이별은 어떤 방식으로 해도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서로의 마음을 챙기고, 덜 상처 주려는 상수와 미경의 모습은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애써 감정들을 참아내며 서로를 위하는 이들은 그렇게 모든 감정선들을 정리했습니다.
비 오는 날 집에 있던 수영은 깜짝 놀랐습니다. 갑작스럽게 집으로 온 종현이 공부하던 책들을 밖으로 가져가 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따라 나와 왜 그러냐는 말에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 내가 불쌍해서 그런 거냐고 묻습니다.
그런 종현에게 나랑 있을때 행복했냐고 묻습니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더 행복했다는 말에 바로 여자 후배를 언급하는 것은 종현의 마음속에 재선이 있기 때문이었죠. 수영은 종현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자신과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닌 의무처럼 보인 그가 행복해지기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경필과 정말 잤냐는 종현의 질문에 수영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 수영에게 "넌 진짜 나쁜 년이야"라고 화내며 떠난 자리에 홀로 앉아 우는 수영은 이 관계의 종말이 서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듯한 감정은 상수에 대한 마음이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거리에 앉아 우는 수영에게 우산을 받쳐준 것은 상수였습니다. 자신을 보는 수영을 보며 웃는 상수의 그 따뜻한 미소는 종현이 우산을 씌워주던 모습과 오버랩되었을 겁니다. 그때는 상수를 사랑하지만 사랑
할 수 없어 힘들었고, 지금은 상수를 사랑해서 버려야 해서 슬프기 때문이었죠.
미경과 슬픈 이별은 수영과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수많은 악재들 앞에서 상수는 많은 것을 내려놔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수영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임을 알고 있는 상수는 그게 사랑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혼란스러운 수영은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휴먼다큐 사랑-너는 내 운명' 속 시한부 서영란과 정창원의 이야기는 아직도 아련함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이승환은 이 다큐를 보고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라는 명곡을 만들기도 했죠. 사별하고 아내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정차원의 모습을 보면 그게 사랑이라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임을 이해하게 되기도 하죠.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행위가 사랑이라면, 수영과 상수도 이제 준비는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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