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삼시세끼만 챙겨 먹으면 그만인 예능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이들은 없었을 듯합니다. 출연자인 이서진마저 첫 회부터 이 프로그램은 망했다고 외칠 정도로 이 예능은 도박에 가까웠습니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그곳에서 재배한 것들로 직접 하루 세끼를 직접 해서 먹는 그 지독할 정도로 단순한 평범함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잊었던 평범함이란 가치들;
하루세끼가 던진 담백함, MSG로 절여진 현실 속에서 찾은 본질의 가치
강원도 산골에서 텃밭이 있는 시골집은 3개월 동안 시청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마치 시골집에 놀러간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듯한 이 상황들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잊혀진,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그 흥겨운 추억은 모두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을, 수확의 계절 그들이 입주한 그 낡고 허름한 산골은 어느 사이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된 특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어린 강아지와 염소, 그리고 닭들까지도 모두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며 마치 동화 속 그 어딘가를 보는 것 같은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우리에게는 새로운 추억으로 남겨지게 했습니다.
이서진과 옥택연이라는 시골과는 거리가 먼 시골 사람들의 적응기는 그래서 흥미로웠습니다. 음식도 시골에서 거주하는 것도 모두가 어색한 이들의 적응기는 시골집이라는 개념이 사라져가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추억을 던져주는 가치였습니다.
아버지 세대들에게 시골집은 편안함의 원천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어머니의 따뜻함이 있는 시골집은 그리움과 평온함을 대변해주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시골집에 대한 가치와 고민들은 점점 사라져 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급격한 도시화와 상경한 이들의 도시 고착화는 더는 시골집에 대한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없는 가치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삼시세끼>가 정말 위대했던 이유는 이 지점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잊어가고 있었고, 젊은 청춘들에게는 존재하지도 않는 그 추억이라는 선물은 그들은 만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삼시세끼는 무의미한 가치였습니다. 하루 세끼를 먹는다는 행위의 가벼움은 패스트푸드의 창궐로 인해 더욱 의미 없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단하게 그리고 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식사의 가치하락은 편리한 삶이 가져다준 일상적인 무료함은 우리의 식사문화까지 바꿔놓았습니다. 기업들은 좀 더 편리하고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대한민국을 상징하기도 하는 배달문화는 점점 삼시세끼의 가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삼시세끼를 무의미하게 만든 것은 현대인들의 바쁨이었습니다.
뭔지 알 수 없는 상황들에 쫓겨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여유라는 단어를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하루 세끼를 직접 만들어 챙겨먹을 수 있는 여유라는 것 자체가 사라진 현대인들에게 차분하게 식사를 하기 위해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행복함마저 사치였습니다.
밥을 먹는 것 자체가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 <삼시세끼>는 그런 현대인들의 헛헛함을 채워준 특별한 밥상이었습니다. 작은 텃밭에 상추 등 직접 캐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존재하고, 조금 떨어진 읍내를 찾아가면 간단한 식재료들을 살 수 있는 그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은 바로 <삼시세끼>가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이었습니다.
도시의 삭막함이 곧 추억이자 삶인 이서진에게 시골의 삶은 불편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맷돌의 재해석을 통해 커피를 갈아 마시는 그의 허세 아닌 현실이 가져다준 도시인의 호사는 시골이어서 더욱 특별한 운치로 다가왔습니다. 이서진이라는 인물은 그런 점에서 시청자와 제작진 모두를 포괄하는 특별한 존재감으로 전해졌습니다. 도시의 삶이 일상이 된 시청자들에게 제작진들이 던지 시골의 삶. 그 모든 가치를 품고 공유하는 이서진의 존재는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매회 등장했던 게스트들 역시 특별했습니다. 둘만의 시골의 삶이 아닌 그 시골집을 찾아주는 다양한 게스트들로 인해 <삼시세끼>는 추억의 TV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골 나들이하는 도시의 친척들의 정경을 포근하게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별것 없는 행위들은 시청자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가족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들을 던져주었습니다.
70대 윤여정이 만두를 함께 빚으며 어린 시절 증조할머니와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세월의 흐름과 새롭게 전해지는 추억담들은 <삼시세끼>의 진정한 가치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증조할머니를 추억하던 윤여정은 이제 누군가에게는 증조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던 추억은 그 어린 누군가에게 전달이 되는 과정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위대한 평범함이었습니다.
수수지옥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다가올 정도로 수수밭과의 정겨움. 그리고 불편해서 더욱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시골집에 대한 향수. 대단할 것도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바로 곁에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웠던 정선의 그 마을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고향집이 되어버렸습니다.
순수하게 장작불로 가마솥에 밥을 해먹는 행위. 우리에게는 잊혀진, 그렇게 할 이유가 없어진 그 단순한 삼시세끼가 이렇게 큰 감동과 행복을 전해준 것을 보면 나영석 피디의 선택지는 언제나 옳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힘들게 준비하고 만나는 단출한 그래서 더욱 값진 밥상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그 어떤 화려한 밥상보다 특별했습니다.
<삼시세끼>는 그저 뭔가에 쫓기듯 스스로를 정신없게 만들어버린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 청춘들에게는 새로운 고향을 선물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루 세끼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고마운 예능이라는 점에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그 평범한 행위가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줬다는 점에서 <삼시세끼>는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찾아준 고마운 예능이었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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