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IMF는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 사회 시스템과 생태계마저 바꿔놓은 국가부도사태를 맞은 수많은 이들의 아픔은 그저 그 순간 끝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고통의 흔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들 속에도 청춘은 존재했고, 그들의 사랑은 이어졌다. 그런 힘이 없었다면 고난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란 점에서 사랑은 위대함으로 다가온다. 그 시대를 관통했던 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성장해갔다.
희도의 딸 민채는 엄마와 싸우고 외할머니 집에서 머물려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엄마 일기장을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할머니를 통해 엄마의 잘못된 기억까지 바로 잡아주는 과정은 이들의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게 한다.
외할머니는 결혼반지는 금 모으기 운동에서도 지켜냈지만, 희도는 아버지의 마지막 추억인 결혼반지까지 처분했다고 분개했고, 그건 엄마에 대한 불만으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진실은 밝혀지고, 이런 식의 상황들은 반복해서 이어지며 얽힌 오해들이 풀려나가는 과정으로 이어질 듯하다.
희도는 그렇게 원하던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의외라 생각했지만, 엄마가 직접 학교에 함께 가는 일까지 보였다. 약간의 가식도 있었겠지만, 희도가 모르는 엄마의 진심은 분명 존재해 보인다. 그렇게 태양고에 입성한 희도는 행복하기만 했다. 드디어 그의 세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전학 오자마자 마주한 첫 상황이 앞으로 친구가 될 같은 반 문지웅이었다. 3학년 누나의 구애에도 쿨하게 뿌리친 그가 오랜 친구라 이야기하는 지승완은 반장이었다. 그리고 지웅은 희도가 펜싱부라는 이유로 관심을 보였고, 목적은 고유림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희도는 유림의 펜싱 실력에 압도당해 팬이 되었지만, 지웅은 유림의 외모에 경도된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펜싱부로 간 희도는 부원들과 상견례를 하고 뒤늦게 온 유림과 인사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았다. 밖에서 몰래 보기만 하던 유림과 직접 인사까지 했다는 사실에 희도는 감격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희도가 상상했던 행복은 밖에서 봤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까칠한 유림은 노골적으로 희도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드러낼 정도였다. 양찬미 코치가 자꾸 능력도 안 되는 아이들을 데려오는 이유는 그저 지원비 때문이라며, 희도 역시 그 1인분의 지원비일 뿐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자극적인 발언은 그의 성격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뭔가 감춰진 진실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행동은 따뜻한데 희도에게만 차갑게 구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진은 유림이네 분식집을 찾았다. 물론 그곳에 가기 전 집 밖에서 기다리던 동생과 잠시 마주했다. 고모집에 있는 동생 역시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게 부도난 집안사람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빨리 돈 모아 함께 살자는 말 외에는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이진이었다.
유림이를 후원한 것은 이진네 아버지였다. 그렇게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던 이들 관계는 당연하게도 이진과 유림의 특별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부도 후 자취를 감췄던 이진은 그렇게 유림 앞에 나타났고, 이진을 보자마자 화부터 내는 유림은 그가 너무 그리웠다.
친오빠나 다름없는 이진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에 유림은 힘들었다. 그런 유림에게 이진은 "힘들었고, 무서웠고, 두려웠어. 지금도 그래"라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속내를 밝힐 수 있는 사이였다. 이들 관계가 다른 의미로 확장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두 사람을 본 희도는 두 사람이 사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미묘한 감정선 사이에서 희도가 느끼는 이진에 대한 감정 역시 미묘할 뿐이다. 이런 관계들은 복잡하게 이들 사이에 얽혀 있다. 이진이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은 반장인 승완의 집이기도 하다.
희도와 유림의 연습경기는 시작되었다. 지독한 팩트 폭행도 모자라 노골적으로 외면하던 유림에 대한 독기까지 남아있었을 희도는 차분하게 경기에 집중했다. 초반 유림이 압도하던 경기는 차츰 희도가 따라잡으며 분위기는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희도는 유림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5년 전 펜싱 신동이라 불리던 희도와 유림은 실제 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다. 당시 유림은 단 1점도 뽑지 못하고 완패를 당할 정도로 희도를 이기지 못했다. 너무 대단했던 희도와 경기를 마친 후 유림은 엄마에게 두려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트라우마가 있었던 유림은 희도에게 1점 차로 패했다. 아무리 연습경기라고는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무명 선수에게 졌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양 코치는 의도적으로 연습경기를 치르도록 했다고 밝혔다.
상대인 희도는 유림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반대로 유림은 희도가 어떤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저 5년 전 천재 시절의 기억만 존재할 뿐 이후 그의 경기를 보지 못했던 유림으로서는 힘겨운 승부일 수밖에 없었다. 유림에게는 이제 수많은 도전자가 생기고 위험해질 거라는 지적도 했다.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양 코치는 희도에게 완벽한 고유림을 우연히 이길 수는 없는 법이라고 했다. 뭔가 하나는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있었다며 그건 '힘'이라고 했다. 압도적인 힘으로 유림을 이겼다며 희도의 장점을 끄집어내고 지지하는 양 코치의 이 한 마디는 희도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우연하게 방송반에서 백이진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었다. 방송반에 교내 밴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이도는 부잣집에 뛰어난 외모도 부족해 공부까지 잘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한다. 승완은 자신의 집에 세든 이진이 바로 그 백이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대학 입학 선물로 고가의 오픈카를 선물 받을 정도로 이진의 집은 부자였다. 그렇게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누비던 시절도 이진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IMF는 이진의 집을 산산조각 냈다. 아내를 위해 이혼을 선택한 이진의 아버지는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지내자 했다.
모두 다른 곳으로 흩어진 상황에서 이진이 간 곳은 군대였다. 그렇게 피신한 그에게 들려온 이야기는 아버지 회사의 최종 부도였다. 생계곤란 의가사제대를 당하고 나온 그는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승완의 집에 세 들었던 것이다.
책 대여점을 찾은 희도는 이미 퇴근했다는 말에 그의 집을 찾았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주소를 찾아 힘들게 도착한 그곳에서 이진은 낯선 어른들에게 호된 말들을 들어야 했다. 아버지 부도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이었다.
큰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했던 아버지는 그렇게 사라졌고, 수많은 피해자도 양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현재 이진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피해자들 역시 그에게 뭔가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이 지독한 상황에 분노하고 싶은 이가 필요했다.
오열하는 그들에게 이진은 해드릴 것이 없어 죄송하다 사과했다. 대신 행복하지 않겠다고 한다. 행복까지 포기해야만 하는 삶을 선택한 이진의 청춘은 그만큼 힘들었다. 취직도 하기 어려운 시절, 아무것도 없는 이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타인을 불행하게 한 죄로 자신의 행복도 포기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로 숨기고 싶은 것들을 보여주게 된 이들은 급격하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희도는 "나는 돈 갚으러 왔어. 만화책 값 삼천 원"이라며, 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돈 대신 다른 것으로 해달라는 이진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희도는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에 대해 동경했던 이진은 집이 망하지 않았다면 나사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진은 희도를 보며 열여덟 시절 자신이 떠올랐다. 그저 고민이라고 해봤자, 학교 방송부 무서운 선배들에 대한 걱정과 자신이 좋아하던 이성이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이 전부였던 과거가 부러운 이진이었다.
학창 시절 고민들이 부럽다는 이진을 데리고 간 곳은 전학 가기 전 학교였다. 현재 학교에는 없지만 이곳에는 있는 멋진 것이라며 데려간 곳은 수돗가였다. 수도꼭지가 돌아가는 것을 이용해 분수대를 만들고 즐거워하는 희도와 그런 그를 보고 다른 수도꼭지까지 모두 돌려 거대한 분수대를 만들고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행복했다.
평범한 수도꼭지가 그 용도가 변경되자 전혀 다른 개념이 되었다. 이는 이진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이기도 했다. 시대가 만든 불행에 맞서야 하는 이들 청춘에게 희망은 수도꼭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생각만 바꾸면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랑 놀 때면 그 아저씨들 몰래 행복해지는 거야"
행복마저 포기했던 이진에게 희도가 건넨 위로는 묵직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행복마저 포기할 정도로 시대가 만든 불행 앞에서, 자신과만 행복해지자는 희도의 말은 이들의 관계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둘 만의 비밀은 그렇게 생겨났다.
모든 주요 인물들이 다 등장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심화되며 희도와 이진의 관계 역시 발전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대가 만든 재앙 속에서도 이를 이겨낸 수많은 당시 청춘들에게 보내는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들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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