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힘은 중요하고 강력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좋은 배우가 나온다고 다 괜찮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배우가 열심히 해도 좋은 극본과 연출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마저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최근 나오는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불균형들이 드러난다는 점은 우려할만한 문제입니다.
홍콩이나 일본 대중문화가 몰락한 이유가 다양하지만 자본의 몰락이 결국 이들의 문화조차도 무기력하게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홍콩과 일본을 대표하는 조폭들의 개입이나, 연예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가 몰락을 부채질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한국 드라마는 이와 달리, 너무 풍성한 자본이 오히려 위기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옵니다. OTT 시대가 되며, 막대한 외부 자본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오며 제작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좋습니다. 많은 자본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시도하는 것은 좋으나, 제작이 많아지며 문제점들도 늘어나는 것은 또 다른 위기입니다.
JTBC가 '대행사' 다음 편으로 공개한 주말 드라마 '신성한, 이혼'은 선택이 쉽지 않았습니다. 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죠. 웹툰 원작이 가지는 가벼움과 극단적으로 흐르는 경향성이 이번 작품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조승우가 선택했기 때문이죠. 그의 연기를 보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점에서 최소한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하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첫 회는 전반적으로 주인공을 주로 보여주며, 그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시청자들도 공감하게 만드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주변 인물들의 성향과 주인공과 정반대에 있는 반동인물의 성격까지 등장하며, 이 드라마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첫 주 방송의 공식입니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볼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 선택하니 말이죠.
시작은 주인공인 신성한의 일상과 일 사이의 극단적인 비교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최고가의 제품과 가장 저렴한 것들을 뒤섞어 그의 취향이 곧 그를 뜻하게 만드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궁금증과 함께 주인공에 대한 기대치를 넘여줍니다.
트로트가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통상적인 생각 범주에서 고가의 스피커로 클래식을 듣는 것과 달리 주인공은 억 소리 나는 고가의 스피커로 트로트를 들으며 환호합니다. 이런 그의 모습에 더 놀라운 것은 그가 피아니스트에서 변호사가 되었다는 전력으로 인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죠.
엄청난 부자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의 배경과 달리, 즉석밥에 김치와 김으로 식사를 대처하며 일일 드라마에 탐닉하는 성한의 모습은 기묘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캐릭터에 끌리는 것은 우리 모습이 이렇게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혼 전문 변호사로 법정으로 가기 보다 조정을 통해 의뢰인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 주는 성한은 언뜻 이혼 변호사로 특화된 인물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일을 하면서 보이는 그의 행동은 전문가로서 나무랄 데가 없지만, 그 외에는 너무 다른 모습이죠.
사무장인 장형근(김성균)이나 그의 건물에 세들어 부동산 거래를 하는 조정식(정문성)은 초중고를 함께 보낸 친구들입니다. 그들과의 관계성도 성한이 앞서 보인 모습처럼 이질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는 이들의 우정은 김치를 나누는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성한과 형근이 배달온 김치를 나누는 과정에서 보인 이들의 모습은 이들 우정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줍니다. 얼마 되지 않은 돈을 둘이 얼마 낼지 대립하고, 김치를 나누는 과정에서 내가 돈을 더 냈는데 네가 왜 많이 가져가냐며 따지는 건물주이자 이혼 전문 변호사 성한의 모습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지만 밉지 않습니다.
성한과 절친인 이 친구들이 극을 부드럽게 만들고 유머 코드로 작동하며 극의 전반적인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이혼을 다룬다는 점에서 내용은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에 벌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연들은 즐겁고 가볍게 즐기기는 부담스러운 내용들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성한이 이혼 변호사가 될 수밖에 없던 사연까지 더해지면 이야기는 무거움에서 헤어 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적당하게 가볍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은 형근과 정식이 해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연기 잘하는 성균과 문성이 맡은 것은 신의 한 수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유명 스타인 라디오 디제이 이서진(한혜진)이 이혼을 의뢰하면서 시작됩니다. 아이까지 있는 유명 디제이가 외도를 했고, 해당 동영상이 세상이 퍼지며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에 맞서 아들 양육권을 요구합니다.
처음 이서진이 이혼 변호사를 제안했을 때는 거부할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에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고, 그런 상대를 돕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양육권을 가지겠다는 서진의 말에 성한은 결심했습니다. 그의 과거에 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이후 드러날 진실들 속에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모든 이들이 손가락질하는 사건을 맡은 성한은 보다 진실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왜 외도를 해야만 했는지를 알아야 대비할 수 있으니 말이죠. 서진이 외도한 것을 응원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 역시 존재했습니다.
정서적 학대를 일삼는 남편의 행동은 도를 넘어섰습니다. 매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몇 시간에 한 번씩 사진을 찍어 보고해야 합니다. 매일 아내의 속옷 사진을 찍어 퇴근 후 확인하는 이 남자의 집착은 집안에 6개의 CCTV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집착과 지배욕은 그렇게 아내를 종속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심각한 정서적 학대에서 우연하게 다가온 남성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여전히 자신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는 이성이 있다는 사실이 서진에게는 반가웠습니다. 자신이 여성임을 확인하게 해주는 상황이었으니 말이죠.
그렇게 빠져든 서진은 새로운 사랑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그의 망상일 뿐이었습니다. 그 남자 역시 상대 여성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만 존재하는 한심한 인물이었으니 말이죠. "개 X끼 피하려다 X놈을 만난 거죠"라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것이 정답이었습니다.
정서적 학대를 피하고자 찾은 탈출구는 불법 촬영범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진은 나쁜 존재일까요? 아니면 피해자일까요? 둘 다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나 동거와 달리, 결혼은 사회법에 따르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혼이라는 법도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아이를 위해서 참고 살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해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빠르게 이혼을 결정해야 할 사건이니 말이죠. 아내에 대한 집착과 지배욕을 가진 자가 아들이라고 다르게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독재자가 되어 가족 내에서 모든 것을 지배해야만 하는 남편의 행동에 바람을 피운 것은 분노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지만, 결혼을 한 이상 법적인 처벌 역시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한 법은 사라졌기에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 역시 본인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동영상을 찍고 퍼트린 자는 이미 구속이 된 상황에서 이혼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남편이 벌이는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저 바람난 아내에게 속은 불쌍한 남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독재자로 군림하다 아내가 이에 반발한 상황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자신의 세계에서 아내를 지워내는 것입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남편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사라졌다 믿었던 불법 동영상이 이혼을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재등장했다며, 양육권을 가져갈 수 없다 반박하는 상대 변호사에 정색한 성한은 이게 바로 2차 가해라며 비판합니다.
불륜은 그것으로 비난을 받으면 그만이지만 불법으로 찍은 동영상으로 사회적 낙인찍는 행위가 정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허락 없이 자신을 타인들에게 노출할 이유도 의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이고 유명인이라는 점에서 인정되는 수준의 노출도 존재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까지 공유하고 소비되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이혼 소식에 어린 아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성한이 만나본 아이는 엄마에 대해 원망했습니다. 왜 그랬냐는 원망 속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아이가 아버지가 꺼낸 휴대전화에 발작해서 병원에 실려가며, 서진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휴대전화에 극단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어머니의 치부가 무차별적으로 공개되고 비난이 쏟아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물건에 대한 반응은 곧 이를 매개로 한 대상에 대한 원망 혹은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죠. 어린아이는 엄마에 대한 지독한 애증이 그 휴대전화를 통해 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억압 역시 아이를 힘들게 한 이유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서진에게 이 사안은 법정으로 가져가야 한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성한의 어떤 아픔을 가진 존재일까요? 이야기가 전개되며 등장하는 인물들이 넓어지고, 그렇게 이야기의 품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첫 회 조승우가 보여준 섬세하며 매력적인 연기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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