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는 어린 조카를 위해 엄마를 자처한 억척스러운 반찬가게 여주인으로 맹활약했습니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드라마 속 전도연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해줬습니다.
그런 전도연이 이제는 영화 '길복순'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길복순'은 공개되자마자 국내 1위만이 아니라, 전 세계 3위를 기록하며 한국 대중문화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다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살인청부업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부 킬러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당대 최고의 킬러가 엄마가 되고, 그렇게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복순이 딸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정반대 되는 감정선들이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클리세들도 많고, 먼치킨이라 불리는 사기캐가 이야기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측면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적들과 대처하는 과정이 앞선 액션 장면들에 비해 무기력하게 정리되며 힘이 빠졌으니 말입니다.
전도연을 시작으로 설경구, 김시아, 이솜, 구교환, 이연, 최병모 등 쟁쟁한 배우들과 신인들이 잘 어울려진 이 영화는 깊은 울림을 던지는 영화가 아닌 킬링타임으로 적합했습니다.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장르의 한국형이라는 점에서 외국에서도 손쉽게 받아들여질 스타일이죠.
살인청부기업인 MK를 세운 차민규 회사 에이스인 길복순은 전설로 통합니다. 그리고 그런 길복순을 시기하는 차민희는 민규의 친동생이자 이사이기도 합니다. 길복순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오빠이자 대표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민희는 모두의 존경을 받는 복순을 시기 질투하고 있었죠. 이게 결국 모든 것을 붕괴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길복순이 거대한 살인청부기업과 개별적인 살인집단들을 대상으로 싸운다는 설정이 존재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용두사미가 아쉽게 다가왔을 듯합니다. 시작의 장대한 대결과 마지막의 대결의 차이는 그런 아쉬움을 더욱 극대화하죠.
피도 눈물도 없는 차민규가 길복순을 짝사랑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은 글쎄 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여성이 전면에 나서는 분위기에 맞춘 모녀의 관계 설정과 어린 딸이 동성애 코드까지 깔면서 나름 스타일을 구축하려 노력한 모습들도 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잘 빠진 영화이지만 아쉬움도 큰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감독이 가지고 있는 편협한 사고가 영화에 적나라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역겨운 차별주의가 노골화되고, 이를 이제는 보란 듯이 드러내며 일베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첫 장면부터 등장한 야쿠자가 사무라이 찬양을 하며, 길복순과 대결하는 장면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일교포인 야쿠자가 사무라이 찬양과 일본 문화에 대한 일장연설을 하는 과정은 과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길복순은 마트에서 산 3만 원짜리 도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대결을 시작하지만, 강한 상대로 인해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줄에 목이 메어 의자에 올라서 있는 아버지를 발로 차 마무리 한 어린 복순의 모습 역시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킬러가 탄생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경찰이지만 정의롭지 못했고, 가정에서도 폭력적인 아버지를 젊었던 차민규가 작품을 하러 왔죠. 예상보다 일찍 와 죽음의 위기에 처한 복순은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폭력이 만연했던 아버지를 보내버립니다.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담배를 씹어먹게 하고, 얼굴 절반이 뭉개질 정도로 폭행하는 것은 아버지가 딸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으니 말이죠.
잠시 벗어난 이야기지만, 그렇게 전문 암살자가 된 길복순은 MK의 에이스이자 전설적인 존재입니다. 그런 그가 사무라이를 찬양한 야쿠자에게 밀려 방법을 찾지 못하고, 무기를 바꾼다며 총으로 쏴서 정리하는 장면은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피식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첫 번째 시퀀스에 배치한 것은 이 영화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영민한 선택이었죠. 문제는 이후 등장한 일베 흔적들은 이 장면마저 비난받게 만들었습니다. 킬러들이 모인 식당에서 이 과정을 설명하며, 정말 쎄다며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과정에서 일베의 일본 찬양 아니냐는 상상까지 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길복순이 살인 의뢰를 받는 봉투 겉면에 쓰인 도시와 국가 표기였습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흐름상 중요했습니다. 길복순이 딸을 위해 국내 봉투를 선택하며, 모든 것들이 뒤틀어지게 되었기 때문이죠.
파란색 씰로 봉인된 봉투 겉면에는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 '서울-코리아' 등으로 표기됐습니다. 하지만 '순천-전라'만 '순천-코리아'가 아닌 '전라'로 표현되어 있었죠. 봉투의 씰 역시 빨간색이라는 점에서 일베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전라도를 빨갱이라고 비하하는 일베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죠. 순천은 왜 코리아가 아닌 전라라고 표기해야만 했을까요? 전라도는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일베들의 주장을 그대로 담아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의 성향이 이런 부분에 녹여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일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복순이 딸이 토론을 한다는 말에 기쁘게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10만 원 지폐에 들어갈 인물들을 나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딸은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김구, 안중근. 다 사람을 죽였어"라고 말합니다. 극 중 엄마가 살인청부업자일 수도 있다고 의심한 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메타포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한국의 위인인 안중근 의사를 표현할 때 쓰는 '살인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감독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립투사를 일개 살인자로 부르는 일본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와 극 중 대사에 녹여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맥락상 살인자인 엄마에 대한 언급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굳이 독립투사들을 앞세워 살인자라는 발언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더욱 일베라는 비난을 받았던 감독이라는 점에서 극본까지 쓴 그가 어떤 성향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변성현 감독은 2017년 트위터에 "데이트 전에는 홍어 먹어라. 향에 취할 것이다" "문 안 초딩 싸운" "이게 다 문씨 때문이다" 등의 글을 작성해 일베 논란에 휩싸인 바 있었습니다. 당시 '불한당'이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상황에서 이런 발언들로 인해 극장 개봉에서 참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뒤늦게 사과까지 했지만, 변 감독은 국내 여론과 상관없는 넷플릭스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전라도를 조롱하고, 독립투사들까지 우습게 만드는 그의 정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위한 조롱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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