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의 애꿎은 운명, 그들의 대립을 예고하나?
아래적이 되기로 작정한 천둥의 변화는 의외로 급격하게 진행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상단을 꾸려서 중국으로 나선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는 아래적이 되려는 그의 전략일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평생을 사랑해왔던 동녀와의 관계도 칼로 무를 베듯 조금의 흔들림도 없습니다.
자신의 본심도 분명하게 담겨 있었지만 그의 성격상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관계를 정리할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반상의 문제에 집착하며 신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에게 결코 버릴 수 없는 문제로 이별을 고하는 천둥의 마음에는 여전히 동녀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아래적이 된다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공공의 적이 된다는 의미이고 이는 관계된 모든 이들은 위험에 빠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천둥이 동녀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녀를 이용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상단을 활용해서 아래적을 활용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둥이 동녀에게 정을 떼는 행위는 그만큼 동녀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귀동은 천둥과의 약속처럼 홀로 강포수를 데리고 아래적과 만나러 갔습니다. 자신의 말처럼 강포수를 아래적에 넘기고 오는 길에 천둥을 만난 귀동. 그들은 서로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아래적이 되면 응징의 대상이 될 수밖에는 없는 공권력. 그런 권력에 몸담고 있는 귀동이 그곳에 없다면 천둥으로서는 좀 더 마음 편하게 아래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더럽고 부패한 그곳에서 나와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천둥의 말에 귀동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비록 그곳이 더럽고 지저분한 인간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썩지는 않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신은 그 더러운 곳에서 백성들을 위한 포도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천둥이 아래적이라는 이름으로 백성들을 위한 일을 하듯 귀동도 포교라는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그들의 포부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총을 겨눠야 하는 상대이기는 하지만 목표가 같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엇갈려 버린 운명처럼 같은 뜻을 품고도 서로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시대가 낳은 아픔일겁니다. 품성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한 천상 짝패인 그들이 그들을 지배하는 환경에 의해 전혀 다른 지점에서 같은 뜻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요.
백성들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공포교는 백성들의 등골을 빼앗아 먹는 왕두령을 찾아가 뇌물을 받고 이를 개인의 성공을 위해 사용하는 모습들은 현재의 우리 사회를 보는 듯합니다. 법은 공평함은 포기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만 이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정의'를 주제로 한 책이 가장 사랑을 받는 사회. 소외된 이에 대한 애정을 보인 인물에 대해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회. 이런 사회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방적으로 가진 자들만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는 이미 생명력이 다한 사회입니다.
소수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수를 노예처럼 부리려 하는 사회에서는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는 없고 그런 불안은 사회를 위태롭게 만들 수밖에는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들만을 위한 성을 쌓아가고 자신들만을 위한 삶을 꿈꾸는 권력자들은 다수의 대중들을 적으로 몰아가면서도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알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만용과 탐욕이 함께 버물려진 가진 자들만을 위한 사회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사회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공정함과 정의라는 단어가 사어가 되고 불법과 편법만이 통용되는 사회는 서로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 뿐입니다. 이런 부패한 사회는 <짝패>에서 저자거리 사람들이 아래적에게 환호하고 부패한 포졸들과 왈자 패들을 처단하는 모습처럼 대중들의 분노만을 이끌 뿐입니다.
장꼭지가 껄떡의 움막을 찾아 나누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들을 깨닫게 해줍니다. 아래적의 일원으로 나눔 공양을 하는 껄떡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보다 못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조금은 작위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생과 시각장애를 가진 형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는 껄떡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각박함을 꼬집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지 말고 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바라보라는 껄떡의 이야기처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무모한 대립과 갈등은 많이 줄어들 수 있겠지요. 막순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며 돈을 요구하는 한량 조선달. 그런 조선달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는 막순의 행동은 과연 어떤 식으로 그들을 이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짝패>는 왕두령 저격과 함께 강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짝패. 서로 전혀 다른 지점에서 백성을 이롭게 하겠다는 그들이 과연 벼랑 끝에서 마주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긋나기 시작한 그들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순간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운명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짝패>는 흥미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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