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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짝패 24회-귀동과 천둥은 인상서를 보며 왜 웃었을까?

by 자이미 201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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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백성들을 핍박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뇌물을 주며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온 왕두령 패의 왕두령이 천둥에 의해 저격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 하나 없이 민중들의 환호를 이끈 천둥의 변신은 <짝패>를 더욱 흥미롭게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천둥과 귀동, 인상서를 보며 웃었던 이유




벌건 대낮에 기세등등하던 왕두령이 복면을 한 천둥에 의해 저격당하고 저자거리에 내동댕이쳐진 사건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가장 악랄한 존재였고 그래서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했던 그의 죽음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환호의 대상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왕두령에게 뇌물을 받으며 살아왔던 관리들에게 그의 죽음은 절망과도 같았고 자신들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합니다. 장터에서 보인 민중들의 불만은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정도가 되어 있고 그런 민심이반은 탐욕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고 그렇게 탐욕의 도구가 되어버린 권력은 민중들에게는 타도의 대상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힘없고 나약하기만 한 그들이 할 수 없었던 일을 대신해주는 아래적에 열광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대변하기 때문이지요.

탐욕에 길들여진 이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거리를 주름잡던 왈자 패의 두령을 처단해 거리의 평온을 가져다 준 일. 이런 일들은 국가가 나서서 해야만 하는 일이고 공권력이라는 조직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일에 권력을 가진 이들은 야합을 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모습은 다수의 대중들에게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마치 권력의 습성은 시간이 지나도 영원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라도 하듯 시대만 다를 뿐 현재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 시대상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강포수는 누구이고 아래적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아직 우리시대 아래적이나 강포수,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천둥은 존재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거리의 대중들 분노는 과거 조선 말기 '짝패' 시절과 다름없건만 그 시대 백성들의 한을 대신 풀어준 아래적 같은 의적들은 우리 시대에 존재하지는 않나봅니다. 시대가 변해도 조금도 흔들림 없는 가진 자들의 탐욕은 그대로 인데 그에 대항하고 잘못으로 이야기하려는 의적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죽음 직전 천둥의 손을 잡고 강포수는 "북을 메고 망루로 오를 자는 너 밖에 없구나"라는 말을 남깁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누군가는 망루에 올라 사람들을 깨워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살아왔던 강포수. 그런 강포수를 보며 왜 당신이어야만 하느냐고 되묻던 천둥. 자신을 과시하고 영웅이 되고 싶은 어릿광대는 아닌가라고 의심했었던 천둥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를 보고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우매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욕이 아닌 부패한 권력에 의해 통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고 세상이 변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불태워버린 강포수라는 존재는, 그가 스스로 느끼기 전까지는 그저 허울 좋은 도둑 패거리의 우두머리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아래적들이 흔들릴 것을 염려해 자신의 죽음마저 동패에게 알리지 말라며 눈도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둔 강포수. 그의 유지를 따라 천둥은 아래적의 새로운 두령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짝패>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아래적이 된 천둥을 보고 자신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는 달이. 그런 달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천둥은 마음이 아프기만 합니다.

"그릇된 세상을 바꾸려면 어리석은 민중이 바뀌어야만 한다"

라는 말로 우매한 이야기로 권력자들을 두둔하는 갖바치 할아버지에 분노하는 달이에게 천둥은 알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니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권력의 두려움에 혹은 그런 권력에 기생하기 위해 정의나 올바른 세상과는 다른 길을 걷는 이들을 이야기라도 하는 듯 달이의 대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최악의 캐릭터로 군림한 동녀는 10여 년 만에 찾은 자신의 옛집에서 당시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거지 짓을 했지만 밥 동냥은 하지 않았던 천둥. 천둥을 위해 탈을 쓰고 귀신 행세를 했던 시절의 자신을 생각하는 동녀가 변신을 예고합니다.

조금씩 천둥과 귀동의 운명이 다름이 알려지게 됩니다. 천둥의 친부인 김대감이 동녀와의 혼약을 통해 대를 잇게 하고 싶다는 말로 천둥과 동녀가 결혼을 할 수도 있다는 설정은 동녀를 완벽한 민폐 캐릭터로 만들 것으로 보입니다. 철저하게 반상의 도만 따지고 양반에 대한 집착만이 강한 그녀가 천둥이 김대감의 친자식이라는 이유로 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면 그 보다 패악인 캐릭터는 어디에도 없을 듯합니다. 그런 동녀가 좋다고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설정 역시 막장 급 상황 극과 다름 없어 보입니다.

나름의 가치를 담아내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짝패>이지만 동녀의 변신과 천둥과 동녀의 상황 변화는 역설적으로 그나마 견지하고 있었던 가치마저 상실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왕두령 패거리들의 증언을 듣고 왕두령을 죽인 복면 쓴 범인의 인상서를 본 귀동은 천둥에게 "자네와 닮았네"라며 웃습니다. 그런 귀동을 보며 "내가 이렇게 못 생겼는가?"라며 농을 던집니다. "보게 자네와 꼭 닮았네" "그럼 내가 왕두령을 쐈단 말인가", "그야 당연하거 아닌가"

서로가 왕두령을 쏘고 싶었다는 말로 서로 다른 길에서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짝패는 환하게 웃습니다. 그들이 전혀 다른 길을 걸어야 하는 마지막 날 밤. 그들은 마지막으로 허물없이 자신들의 흉금을 터놓고 마음껏 웃었습니다. 결코 다시는 웃을 수 없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둘 모두 왕두령을 죽이고 싶었다는 말로 민중을 도탄에 몰아넣는 무리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증명해 보고 싶어 하는 둘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왕두령이라는 상징을 통해 서로 다른 길에 설 수밖에 없는 그들이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슬픈 운명을 상징하는 커다란 웃음은 그래서 씁쓸하기만 합니다.

포교와 아래적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정의를 위해 힘을 쏟는 '짝패'들은 과연 어떤 운명을 가지게 될까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의해 전혀 다른 길에서 같은 곳으로 가야만 하는 그들. 그들의 운명이 과연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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