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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로열 패밀리 18회-죽음이 열린 형식일 수밖에 없는 이유?

by 자이미 201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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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었던 <로열 패밀리>가 18회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인간과 사람에 대한 궤변이 마음에 와 닿았던 마지막 회에서 그들은 왜 김인숙과 한지훈을 죽여야만 했을까요? 열린 형식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그들을 담으려는 노력의 의미는 뭘까요?

그들의 죽음과 조현숙의 회장 취임




인간임을 증명하는 길은 매뉴얼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인간임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국가에서도 '인간이란 무엇이다'라는 명제는 있을 수 있어도 인간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가지지 못합니다.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인간을 증명하는 법을 구체화시키고 이를 제도화 시킨 이는 없습니다.

지훈은 공회장을 찾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김인숙을 죽음으로 내몰고 엄집사를 죽게 한 큰 아들 조동진을 살인 혐의로 검찰에 구속시키던지, 김인숙을 살인자로 기소하던지 선택하라는 지훈의 다그침에 공회장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공회장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원하는 것을 주고 추후에 그것을 빼앗는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김인숙은 JK가 회장이 되고 취임식을 앞둔 시점 지훈은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녀를 지켜왔던 것은 마지막 순간 그녀를 잡아들이기 위함이라며 풀리지 않은 마지막 퍼즐을 맞추려 노력합니다. 김인숙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아 그녀가 꺼내지 않았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진실을 끄집어내려는 지훈의 노력은 패닉 룸에서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알게 해줍니다.

갑자기 인숙에게 찾아온 조니는 자신이 그녀의 아들임을 인정하라합니다. JK 클럽 사장 취임식을 하는 날 자신이 아들임을 인정하라는 조니의 다그침에 인숙이 할 수 있는 것은 부정이었습니다. 18년간의 고통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 날. 하필 그 날 자신을 찾아온 아들을 부정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진심을 알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찌른 조니.

눈앞에서 펼쳐진 다급한 상황에 인숙은 버릴 수 없었던 타산적이 마음은 사라지고 엄마의 심정으로 119에 전화를 합니다. 다급하게 119를 부르는 인숙을 바라보며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엄마"임이 증명되었다는 말을 남기도 사라진 조니는 가장 먼 곳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엄마의 새로운 삶을 위해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니의 선택이 옳았을까요? 여러 가지 가치들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희생이 곧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은 결과적으로 마리에서 인숙이 된 그녀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기재로 작용했습니다.

'법정무죄 인간유죄'라는 평가가 내려진 김인숙은 스스로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증명해냈습니다. 어린 시절 버려졌던 어린 마리가 이태원 양공주 집에서 살아가면서 겪어야만 했던 아픔들. 죽음에 대한 기억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의 죽음을 방치한 죄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결심을 했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길이 죽음밖에는 없을 것이라는 그녀의 믿음은 지훈으로 인해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조니가 자신의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듯 지훈은 인숙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입니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평탄하고 행복할 수밖에는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공회장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숙을 용서할 수 없었고 자신이 믿는 마지막 한 사람인 현진이 JK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자신의 아들 동호가 경비행기 사고로 숨졌듯, 인숙도 헬기 사고로 사라지길 바라는 그녀의 마음은 인숙과 지훈을 실종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인숙의 실종으로 공석이 된 JK 회장에 선임된 현진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재벌에 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실종 후 지훈의 가방에서 발견된 편지에는 공룡과의 싸움에서 자신은 승리할 수 있고 자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 적혀있는 것을 지훈의 엄마 순애는 발견합니다.

"죽어도 죽지 않았다. 그들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서 살아 있는 존재이다"라는 순애의 마지막 한 마디는 그들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결정적인 한 마디였습니다. 과연 그들은 서로가 행복한 선택을 한 것일까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낸 것일까요?

작가의 의도와 의미를 찾으려면 아무래도 생 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Terre des hommes>에 집중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지훈과 인숙을 하나로 묶어내고 지훈이 경도되어 꿈꾸었던 모든 것은 생 텍쥐페리에게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행 조종사이자 우리에게는 <어린왕자>라는 불후의 명작을 쓴 작가로 알려진 그는 1943년 북아프리카 정찰 업무 중 격추당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지훈이 생 텍쥐페리는 실종되었기에 여전히 살아있다고 이야기를 하듯,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는 살아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의 대지>는 인간의 유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극한 상황에서 맞이할 수 있는 비행사들의 동지애와 유대에 대한 이야기에 지훈은 경도되었을까요? 정기 항공기 비행사를 위한 헌정의 의미가 담긴 그 유명한 <야간 비행> 속에 등장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음을 맞이할 때 맛보는 불가사의한 환희를 찬미'하듯, <로열 패밀리>속 그들의 죽음도 찬미 받아야만 한다고 작가는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역시 가장 단순한 것이고 진정한 재산은 남에게 주는 것이라는 <어린왕자>의 가르침처럼 <로열 패밀리>는 단순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 인숙과 지훈의 마지막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담아내고 마무리되었습니다. 현진은 JK 그룹 회장 취임의 변으로 재산을 남에게 주는 것을 표방하며 자신의 새로운 '로열 패밀리'에 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작가는 지훈을 통해 생 텍쥐페리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내려 노력한 듯합니다. 일본 원작인 <인간 증명>에서 기본 뼈대를 구축했지만 그 안에 담아낸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은 생 텍쥐페리의 삶과 그가 내놓은 소설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 시대 '재벌'이란 무엇이고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냉혹하면서도 잔인합니다. 공회장이 병으로 누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인숙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상황은 우리 시대 재벌의 부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렬한지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일 겁니다.

탄탄한 구성과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연출자의 심도 깊은 화면 구성 등 <로열 패밀리>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는 많은 가치들을 지니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열린 형식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이를 회피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혀집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그들의 잔인한 죽음이어야만 하고 가장 비정상적이지만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는 그들이 행복한 결말을 맺어야만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시청자의 몫으로 돌린 것은 작가의 직무 유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어떤 선택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증명하는 방법과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기준이란 무엇인지에 집요하게 탐구해왔던 <로열 패밀리>는 시청자들에게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방법을 제시했을까요? 어린 아이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행동이 묻어나는 '만세'에 인간임을 증명하는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는 작가의 선택은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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