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조를 살려준 그림의 구매자가 밝혀지며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마지막 한 회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랑이라는 가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알고 살았던 청담동 사람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 드라마는 흥미롭습니다.
승조 그림 구매에 담긴 사랑의 가치, 꿈과 현실에서 무엇을 선택할까?
자신을 속인 세경에 분노하는 승조의 모습은 당연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믿고 싶었던 승조에게 세경은 자신의 꿈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돈이 세상의 전부라고 교육받으며 살아야 했던 승조가 그토록 갈구했던 진정한 사랑이 바로 세경이라는 사실에 그는 행복했습니다.
결혼마저 그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고,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그들에게 사랑은 일말의 가치도 없는 환상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해도 그 사랑은 진심이 아닌 가식이고, 누군가 자신의 부를 차지하기 위한 거짓이라고 강요받는 삶 속에서 사랑은 허탈한 존재일 뿐이니 말입니다.
자신이 믿고 싶었던 진정한 사랑이 세경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승조는 그 사랑은 자신이 믿고 싶었던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노합니다. 그렇게 파리로 돌아가려던 승조를 막아 세운 세경은 과거 자신을 두고 떠났던 윤주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세경으로 인해 도피로 현실을 망각하던 승조를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게 만든 세경은 분명 탁월한 존재입니다. 그런 세경의 솔직한 방식은 승조를 깨우게 합니다.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승조에게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봐야 한다는 세경은 승조에게 시계토끼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승조가 세경에게 청담동으로 향하는 시계토끼였다면, 세경은 승조에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이끄는 시계토끼였습니다.
주도면밀하고 뒤끝 작렬의 화신 같았던 승조가 스스로를 가두지 못하게 되자 할 수 있는 것은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풀어내는 일들이었습니다. 세경이 언제부터 자신을 속였는지, 그리고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승조는 세경을 찾습니다.
언제부터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지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고, 이런 사실 관계들을 증명해 위안을 받고 싶은 승조의 행동은 여전히 사랑이 고픈 승조의 발악과도 같은 사랑 찾기였습니다. 부정하고 거부하고 싶지만 믿고 싶고 끌어안고 싶은 존재가 바로 세경이라는 점에서 승조의 고통과 아픔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경을 만나 해답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승조가 마주하게 된 것은 바로 보고 싶지 않았던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승조가 알아야만 했던 사랑은 바로 부자의 정이었습니다. 세경이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기도 한 차일남 회장과 승조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은 이런 논란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차일남 회장이 세경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었던 승조의 마음을 돌리게 했던 유일한 존재가 바로 세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승조가 어린 시절 이혼을 하면서 더욱 냉혹하게 키워야 했던 일남에게 사랑은 왜곡된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직 돈이 전부라고 알고 살아가던 일남에게 사랑은 그저 사치일 뿐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림에 재능을 보인 아들의 꿈을 막고 오직 자신처럼 돈만 쫓는 청담동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일남의 행동은 승조를 힘겹게 만들었습니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고 사랑에 더욱 큰 가치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던 승조에게 아버지의 행동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자의 정은 서로 부정하고 있었지만 끈끈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승조가 아버지를 부정하며 파리로 도주해 윤주와 살았던 것도 그가 가질 수 없었던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승조를 무너트린 이는 아버지였습니다. 윤주를 떼어놓은 아버지는 망가진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들이 그린 그림을 고가에 사주는 형식으로 지원을 한 일남으로 인해 승조는 현재의 성공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며 의절까지 하고 살아왔던 승조는 사실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본심을 드러낼 수 없어 숨길 뿐이었지만, 승조는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런 승조의 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승조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포기하고 아르테미스에 입사한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세경이 일남을 찾아 승조가 왜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아르테미스에 들어갔는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듣고서야 일남은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예술적 능력이 탁월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아르테미스에 승조가 들어간 것은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부정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자신의 소망을 이뤄주고 있다는 사실을 세경이 깨우쳐 주기 전까지 깨닫지 못한 일남에게 세경은 진정한 사랑을 깨우쳐주는 시계토끼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청담동으로 들어서기 위해 시계토끼가 필요했던 세경에게 승조는 가장 좋은 해답이었습니다. 그런 승조와 일남이 깨닫지 못했던 것은 세경이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시계토끼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녀가 사랑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다짐했던 것 역시 이런 깨달음을 위함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랑을 사랑이라 보지 않고 환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세경은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가난은 벼슬이 아니라며 세경을 몰아붙이는 승조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행운을 가득 안고 태어난 승조는 다른 세상 사람들일 뿐입니다.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행운. 그건 태어나면서부터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법의 키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승조는 스스로 열심히 해서 가난을 이겨내고 현재의 성과를 올렸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이런 승조에게 그림의 구매자에 대한 의문을 키우며, 행운이 존재했다고 말하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현재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믿는 청담동 왕자에게, 청담동에 들어서고 싶어 한 앨리스 세경의 발언은 당혹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으니 말입니다.
부의 대물림이 일상이 되고, 빈부의 차가 극심하게 커지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승조와 세경의 다른 시각은 바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상이기도 합니다. 노력하면 가난을 벗어나 성공할 수 있다는 일반론 속의 맹점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장면은 중요했습니다.
근본적으로 노력해서 가난을 극복하기가 힘들어준 사회 구조 속에서 낭만과도 같은 꿈 이야기를 하는 승조에게는 세경이 지적한 자신이 부정하고 싶은 행운이 가득했습니다. 극단적인 빈부의 차와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권력으로 현재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지독한 경계 속에 놓여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서민들은 무능하고 바보 같은 존재로 손가락질을 받는 사회. 노력보다 중요한 행운을 가득 안고 태어난 이들의 행동만이 최선이고 모든 가치라고 일갈하는 세상 속에서 승조와 세경이 나눈 대화는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승조의 그림을 3만 유로나 주고 산 주인공이 바로 승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측 가능합니다. 승조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면서 세경의 사랑을 확신하게 될 수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꿈에서 깨어난 앨리스가 세경의 현실일 거라 보지는 않습니다. 타미홍이 실제 결말은 이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듯, 꿈과 현실의 모호함 속에서 그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가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과 일은 별개가 아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세경의 다짐처럼 그녀의 사랑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그녀가 청담동에 입성해 윤주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 아닌, 청담동을 통해 청담동을 바꿔놓는 진정한 앨리스가 되는 세경의 모습이 바로 <청담동 앨리스>가 보여주고 싶었던 핵심입니다. 그들의 해피엔딩이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꿈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시청자들은 꿈에서 깨어난 앨리스의 심정을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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