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마스크걸'은 7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드라마치고는 짧다는 점에서 몰입도는 더욱 높아집니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외모가 문제인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하드보일드하게 다룬 이 드라마는 분명 흥미로웠습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이 드라마는 집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게 어떤 유형인지 여부와 상관은 없습니다.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집착에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죠. 외모에 대한 집착이 강한 김모미(이한별/나나/고현정)를 중심으로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의 서사들이 정교하게 엮여 흥미롭게 흘러갑니다.
일곱 개의 에피소드를 모두 출연진의 이름을 서브타이틀로 걸었다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방식은 아닙니다. 자칫 서사가 뭉개지며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출연진의 이름이 에피소드 제목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모미는 어렸을 때 가수가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커가면서 외모가 걸림돌이 되었고 가수는 고사하고 조롱만 받는 신세가 되었죠. 꿈을 접고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회사에 취직한 그에게 일상은 지루함 그 자체였죠. 그런 모미를 뒤흔든 것은 팀장 기훈(최다니엘)이었습니다.
유부남이었지만 뛰어난 외모에 팀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매력은 모미를 흔들었죠. 낮과 밤이 다른 모미의 퇴근 후 삶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춤을 추고 그들에게 사랑받는 느낌은 가면을 벗은 일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기훈에게는 사내 연인이 따로 있었죠. 아름(박정화)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기훈은 이 사실이 드러나며 회사를 관두게 되었습니다. 모미가 목격하기도 했지만, 기훈이 회사를 그만둘 정도가 된 것은 마스크걸의 정체를 알고 있던 주오남(안재홍)이었습니다.
오남의 삶도 처연할 정도였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던 오남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억척같이 홀로 자신을 키우는 어머니의 뜻에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만 막연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오남이 빠져든 것이 일본의 성인 만화였고, 자연스럽게 그는 오타쿠가 되었죠. 의사가 되기를 바란 어머니의 바람은 이뤄주지 못했지만, 인서울은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취직한 오남이지만 남들처럼 평범한 생활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타인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오남이 회사를 다닌다고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죠. 그런 오남이 유일하게 탐닉하며 별풍선을 쏘는 대상이 바로 마스크걸이었습니다. 화면이지만 그를 매일 저녁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마스크걸은 오남에게는 TV에 나오는 그 어떤 연예인보다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런 마스크걸이 회사 동료인 모미(이한별)라는 사실은 우연한 상황에서였습니다. 결재 서류를 가져온 모미의 손에 있는 점에 대한 기시감을 느낀 오남은 집에 돌아와 방송을 보다 마스크걸의 손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동경하는 마스크걸이 모미라는 사실에 오남은 쾌재를 불렀죠. 미녀는 아니지만 그래서 내 마음을 잘 이해해줄 것이란 확신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다가서지만 모미에게 오남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만취한 기훈을 데리고 호텔로 가서 하룻밤을 보낸 모미를 그저 지켜볼 뿐이었죠.
이런 두 사람에게 큰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기훈이 모미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후 마신 술이 문제였습니다. 취한 상태에서 방송을 켠 모미는 올누드로 춤을 추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BJ 정지까지 당하며 자괴감에 빠진 모미와 마스크걸의 방송을 볼 수 없어 당황한 오남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못생긴 모미는 자신을 사랑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오남의 착각은 집착을 불러왔습니다. 올누드 참사 후 모미는 '전생에 원빈'이란 닉네임의 팬과 소통을 하다 만나자는 말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자와 제대로 만나본적도 없던 오남이 망설이는 사이, 핸섬스님의 만남 요청에 모미는 용기를 냈습니다.
외국에 살다 왔다는 어눌한 한국어의 핸섬스님이 싫지 않았습니다. 마스크를 벗은 자신의 얼굴에 대해 못생겼다고 하지 않는 이 남자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곳에서 술을 마시자는 핸섬스님의 제안이 불안을 불러왔고, 끝내 벌어져서는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핸섬스님과 술을 마신다는 모미의 말을 듣고 오남은 당황하며, 이 자가 누군지 서치하기 시작하죠. 그렇게 그의 정체와 그가 모미를 어떻게 하려는지 확인한 오남은 핸섬스님이 남긴 기록들을 추적해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오남은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미에게 오남은 자신의 몸이나 탐하는 한심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탐욕들은 비슷한 지점을 향하지만 그들이 마주 보는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 어긋난 탐욕의 결과는 지독한 죽음 외에는 없었습니다.
경자(염혜란)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지만 자격증이 있다는 말에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바람을 피우던 남편과는 이내 이혼했죠. 실망하지 않았던 것은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어머니의 힘은 강했습니다.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의대에 입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 것이 큰 자랑이었죠. 아들은 대학에 들어갔고 취직도 했습니다. 그리곤 왕복 4시간 걸리는 시간을 문제 삼더니, 집을 나갔고 아들 집에 가는 것도 힘들어졌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는 아들이 걱정되어 집을 찾은 경자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이 출동한 그 현장에는 토막난 사체가 존재했습니다. 남자라는 사실에 경자는 아들 오남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심장이 철렁 주저앉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남의 집에서 발견된 수많은 음란물과 성인돌이 문제였지만, 경자는 그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습니다. 아들이 살아만 있다면 그가 살인자라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런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는 아들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컴퓨터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던 경자는 오직 아들을 찾고자 하는 마음에 공부했고, 그렇게 아들이 집착했던 마스크걸의 실체를 찾기 시작했죠. 살인자로 손가락질받던 아들 누명은 그가 죽음으로 발견되며 풀렸지만, 어머니 경자의 분노와 복수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한별이라는 배우가 주는 파격은 K드라마가 한 뼘 더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예쁘게 나오는 것이 아닌, 최대한 미워야 하는 배역을 맡아서 연기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이한별은 최선을 다해서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마스크걸'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염혜란과 안재홍이었습니다. 안재홍의 오타쿠 연기는 보는 이들을 기겁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안재홍이 은퇴작을 찍었다고 할 정도로 파격적인 그의 연기는 안재홍이라는 배우가 아니라면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완벽함이었습니다.
정말 안재홍이 실제 오타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망가져버린 연기는 섬뜩하고 더러웠지만, 그래서 환상적이었습니다. 안재홍이라는 배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스크걸'은 충분히 의미 있는 시청이었습니다.
안재홍 못지않은 광기의 연기를 선보인 것은 염혜란이었습니다.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무게감 있는 조연을 해왔던 염혜란의 연기는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삐뚤어진 모성을 가진 한 여성을 이렇게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과연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자식에만 집착하는 어머니의 삐뚤어진 모정은 현실에서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기도 합니다. 최근 벌어진 교사에 대한 갑질도 이에 해당하니 말이죠. 여기에 종교에 대한 집착 역시 이 광기를 만드는 윤활유이기도 했습니다.
일곱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전개된다는 점에서 이를 복잡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 인물들의 서사에 집중하며 이들을 정교하게 엮어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처음엔 복잡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드라마가 끝난 후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면 더욱 재미있을 듯합니다.
외모지상주의와 여성 주인공들을 내세운 서사 등 최근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점도 반가웠습니다. 외모지상주의는 여자만이 아닌 남자에게도 적용되고 있음을 모미와 오남을 통해 잘 보여줬습니다. 여기에 광적인 탐욕이 얼마나 무섭고 모두를 망가트릴 수밖에 없는지도 이 드라마는 섬세하게 잘 표현했죠.
더욱 충격적인 것은 모미의 딸 미모 아버지가 오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잠자리에서 모미가 보인 광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마치 사마귀와 같은 모습에 기겁하게 되지만, 주제를 생각해 보면 이런 광기의 서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가 정말 섬뜩했던 것은 지독할 정도로 아들과 손자에 대한 집착을 보였던 경자가 자신의 손녀인지도 모르고 벌이는 끔찍한 범죄입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과 광기나 다름없는 종교에 대한 탐닉은 경자를 완전한 악마로 만들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자신이 당한 고통을 모미도 당해야 한다는 경자의 분노는 요즘 벌어지고 있는 사건사고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글들이기도 합니다. '마스크걸'은 과연 이런 분노가 합당한 것인가 의문을 품기도 합니다.
곱씹어보면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는 '마스크걸'은 회차별 주인공을 달리 하며 서사마저 흥미롭게 만들어냈습니다. 이한별, 나나, 고현정으로 이어지는 3인 1역 역시 각각의 특성을 극대화해서 매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도 반가웠습니다.
K드라마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습니다. 디즈니+ '무빙'이 한국형 마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면, 넷플릭스 '마스크걸'은 장르 드라마의 확장성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섬뜩하고 끔찍하고, 더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놓을 수 없는 '마스크걸'의 마력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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